제2장 아이의 눈으로 본 영국 (2)

제4절 섬나라 영국 바다로 나가다

by 백지

1. 엘리자베스 1세의 디치리 초상화(Ditchley Portrait), 해양 강국의 서막

아이는 레고 놀이를 하면서 영국이나 유럽 이야기에 대한 한글 유튜브 채널을 듣거나, 호리드 헨리처럼 짧은 에피소드가 연이어 나오는 영어 오디오 북을 듣는 것을 즐겼다. 처음에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나 팝송을 틀어주거나, 영어 뉴스를 들려주기도 했지만, 아이는 관심 있는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아이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런던은 원래 늪지대였대. 세인트 폴에서 밀레니엄브리지를 건너 셰익스피어 글로브까지 가봐야 된대”라고 듣는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그렇게 전원경 교수님의 영국 편 유튜브 강의를 통해 엘리자베스 1세의 디치리 초상화(Ditchley Portrait)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여왕이 영국 지도가 펼쳐진 양탄자 위에 우뚝 서 있고, 옆에는 지구본이 놓인 이 인상적인 그림을 통해 세계 속의 영국이라는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바다를 넘어 세계를 향해 나아간 영국의 해양 강국으로서의 면모가 여왕의 위엄과 함께 시각적 상징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섬나라 영국은 지리적 이점을 발판으로 바다를 넘어 세계를 호령한 독특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특히 엘리자베스 1세 시대부터 본격화된 해상 탐험과 무역 활동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대영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해양 강국의 상징은 국기'유니언 잭(Union Jack)'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잉글랜드의 성 조지 십자가, 스코틀랜드의 성 앤드류 십자가, 북아일랜드의 성 패트릭 십자가가 합쳐진 이 국기는 처음에는 해군에서 사용하는 선수기(Jack Flag)에서 유래되었고, 점차 영국 해군과 제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유니언 잭'이라는 이름 자체가 바다와 뱃머리의 깃발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웨일스는 당시 이미 잉글랜드에 통합된 상태였기 때문에 국기에 별도로 표현되지 않았다.

바다를 기반으로 세력을 확장한 영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며 광대한 영토를 확보했다. 그 결과 어느 시각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라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영국은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과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이라는 형태로 유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들 국가들은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활발히 하며, 특히 크리켓 경기를 함께 즐기는 등 스포츠를 통해서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2. 트라팔가 광장과 넬슨 제독, 해상 영웅의 상징

런던 내셔널 갤러리 앞 트라팔가 광장 한가운데에는 4마리의 사자상과 함께 높이 솟은 넬슨 기념탑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이 기념탑은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를 격파하고 영국을 위기에서 구한 영웅, 호레이쇼 넬슨 제독(Horatio Nelson, 1758~1805)을 기리기 위해 1840년부터 1843년까지 건설되었다. 기념탑 아래의 4마리 청동 사자상은 1867년에 추가되었으며, 화가이자 조각가인 에드윈 랜드시어 경(Sir Edwin Landseer)이 디자인했다. 기념탑의 받침대는 프랑스군에게서 노획한 대포를 녹여 만든 네 개의 청동 부조 패널로 장식되어 있어 역사적 의미를 더하고 있었다.

넬슨 제독은 트라팔가 전투 이전 이미 코르시카 전투에서 오른쪽 눈을, 테네리페 전투에서 오른쪽 팔을 잃는 큰 부상을 입었다. 트라팔가 해전에서도 그는 프랑스 저격수의 총에 맞아 치명상을 입고 전사했지만, 그의 희생과 뛰어난 리더십으로 영국 해군의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이 승리는 이후 100년 이상 영국이 해상 패권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나폴레옹의 영국 침공 계획을 좌절시켰다.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그의 묘비를 보며, 그가 영국 역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넬슨 제독의 흔적은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에든버러의 칼튼 언덕(Calton Hill)에 자리 잡고 있는 다른 하나의 넬슨 기념탑(Nelson Monument)이 1816년 세워졌다. 이 탑은 바다를 향해 열린 언덕 위에 우뚝 솟아 있어 과거에는 원 오클락 건(One O'Clock Gun)과 함께 항해자들에게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는 넬슨 제독이 단순히 잉글랜드만의 영웅이 아니라 영국 전체의 전쟁 영웅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넬슨 제독은 영국의 해양력이자 해양 강국 영국의 위상을 대변했다.




3. 템스강의 용감한 전함: HMS 벨파스트

런던 타워 앞 템스강 위에는 회색빛 철제 군함 한 척이 위풍당당하게 정박해 있다. 이 배는 북아일랜드의 도시 벨파스트(Belfast)의 이름을 따 HMS 벨파스트(HMS Belfast)라고 명명되었다. 벨파스트는 한때 세계 최대 조선소 중 하나였던 H&W(Harland and Wolff)가 위치한 도시로, 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 호를 건조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HMS 벨파스트의 'HMS'는 ‘His/Her Majesty’s Ship’의 약자로, 국왕(또는 여왕)의 해군 함정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는 영국 해군의 충성 서약과 국가 소속을 나타내며, HMS 벨파스트는 그런 의미에서 영국 해군 기술력과 해상 전력의 상징적인 결정체다.

이 함선은 1939년에 진수되어 제2차 세계대전에 곧바로 투입되었고, 특히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D-Day)에서는 연합군 해상 포격 작전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했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에도 참전하여, 실제 전투 임무를 수행한 몇 안 되는 현존 전함 중 하나가 되었다. 과거 유럽과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가 바다를 통해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현재 HMS 벨파스트는 박물관 선박(museum ship)으로 보존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은 함 내에 들어가 해군 병사들의 생활공간, 전투 지휘 구조, 통신실, 주포 등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다. 9문의 6인치 주포, 복잡한 무선 통신 장비, 좁은 침상과 식당, 그리고 전시용 인형과 해설 자료를 통해 냉전 이전 영국 해군의 일상과 전쟁 환경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함교 위에 올라서면 타워 브리지와 런던의 현대적 스카이라인이 어우러진 전경이 펼쳐지며, 이 함선이 놓인 장소 자체가 과거와 현재, 제국과 민주주의, 해상 패권과 교육적 성찰이 공존하는 공간임을 실감하게 한다.

HMS 벨파스트는 단순한 군함이 아니라, 영국이 바다를 통해 제국을 건설하고, 오늘날까지 그 해상 유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교육 현장이다. 갑판을 걷는 동안, 영국이 범선 시절부터 원양 항해와 해군력을 통해 성장한 해양 강국임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4. 시간과 세계를 만나는 곳

1) 시간과 해양 역사의 중심: 그리니치

런던 남동쪽에 자리한 그리니치는 시간의 시작점이자 영국의 해양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아름다운 언덕 위 공원이기도 한 이곳에 위치한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는 영국의 르네상스 건축을 대표하는 크리스토퍼 렌 경(Sir Christopher Wren, 1632~1723)이 설계한 걸작 중 하나였다. 세인트 폴 대성당을 비롯해 런던의 여러 교회를 설계했던 그는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뛰어난 천문학자였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1675년 찰스 2세의 명령으로 건설되어 해양 탐사와 항해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는 왕립 천문대로 자리 잡았다. 특히 이곳은 본초 자오선 0도가 설정된 곳으로, 전 세계의 시간 기준인 세계 표준시(GMT)의 시작점이었다. 여행자들은 천문대 뜰에 그어진 0도 선을 밟으며 양발로 동반구와 서반구를 동시에 내딛을 수 있는 사진을 찍기 바빴다. 천문대는 템즈강을 내려다보며 런던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감상할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였다.

언덕 아래로 내려오면 영국의 해양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들이 펼쳐졌다. 국립 해양 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은 넬슨 제독의 유니폼, 제임스 쿡 선장의 항해 일지, 정밀한 천문 항해 도구 등 200만 점 이상의 방대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물관은 영국이 해양 과학과 탐험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지배했던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그들의 해양력이 과학적 진보의 결과였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오랜 격언처럼, 영국은 해양 탐험과 무역을 통해 전 세계에 영향력을 펼쳤다.

바로 옆에는 19세기 차 무역에 쓰였던 커티 사크(Cutty Sark)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19세기 중반에 등장한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범선으로, 주로 차, 양모 등 가볍고 부패하기 쉬운 상품을 운송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이 배는 클리퍼선(Clipper Ship)으로 불리었으며 좁고 길며 날렵한 선체와 거대한 돛 면적이 특징이었다. 특히 커티 사크는 중국에서 영국으로 그 해 새로 수확한 '첫 차(First Tea)'를 싣고 오는 경쟁의 상징이었다. 당시 영국에서는 햇차(new season's tea)가 신선하고 품질이 좋다고 여겨져 높은 값이 매겨졌고, 가장 먼저 런던 항구에 도착하는 배에게는 막대한 이윤과 명예가 주어졌다. 커티 사크는 이러한 치열한 속도 경쟁 속에서 해상 무역의 패권을 유지했던 영국의 역사를 담고 있었다. 비록 증기선의 등장과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클리퍼선의 전성기는 짧게 끝났지만, 커티 사크는 영국의 해상 무역과 경제적 번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당시의 치열했던 무역 현장을 상상하게 한다.


2) 대영 제국의 상징: 영국 박물관

영국 박물관은 과거 대영 제국의 광활한 영역과 그 힘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이곳에 소장된 약 800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유물들은 해양을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되고 문화적,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했던 영국의 역사를 묵묵히 증언했다. 이 많은 유물들이 대부분은 배를 타고 이 섬나라까지 건너온 것들이었다. 바다를 건넌 유물 하나하나에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와 제국을 꿈꾸던 영국의 해상력이 함께 실려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집트의 로제타 스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 등 세계 각지에서 온 귀한 유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조각은 '엘긴 마블(Elgin Marbles)'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19세기 초 오스만 제국의 허락을 받아 당시 주영 대사였던 엘긴 백작이 그리스 아테네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이후 영국 박물관에 소장되었고, 현재까지도 그리스 정부가 반환을 요구하며 국제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뉴스를 얼마 전 접했기에 더 유심히 전시물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해양을 통한 교류와 충돌, 그리고 제국주의의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다가왔다.

영국 박물관은 단순히 유물을 넘어 세계사와 문화의 복잡한 면모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이었다. 해양 강국으로서 영국이 전 세계에 미친 영향과 그로 인한 문화적 유산의 복잡한 소유권 문제까지 생각해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3) 자연사 박물관, 생명의 경이로움을 만나다

과학 박물관에서 나와 자연사 박물관(Natural History Museum)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우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특히 우리 아이는'빅 피플 리틀 북(Big People, Little Book)'이라는 책을 통해 이미 메리 애닝(Mary Anning)과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이름을 알고 있었기에, 이곳은 책 속 인물들을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아이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책에서만 보던 메리 애닝이 발굴한 거대한 공룡 뼈대들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메리 애닝(1799~1847)은 영국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부터 영국 남부 해안에서 화석을 발굴하며 독학으로 고생물학 지식을 쌓았다. 당시 학계에서 인정받기 어려웠던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어룡(Ichthyosaur) 완전 화석과 수장룡(Plesiosaur) 화석 등을 발견하며 고생물학 분야에 큰 공헌을 한 선구적인 인물이다. 박물관에서 그녀의 노고가 담긴 공룡의 거대한 크기와 정교함에 감탄하며 한참을 바라보았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의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아이는 자신이 위대한 과학자와 함께 서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했다. 다윈은 영국의 자연주의자이자 생물학자로, 5년간의 비글호 항해를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발표하며 진화론을 정립했다. 그의 이론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인류의 사고방식 자체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류의 진화 과정을 담은 생생한 그림과 모형들을 보면서 아이는"사람이 정말 이렇게 변했어요?"라고 연신 신기해하며 질문을 쏟아냈다. 초기 인류의 모습부터 현대인의 모습까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변화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며 생명의 신비와 진화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연사 박물관은 아이에게 살아있는 과학을 배우는 소중한 경험을 선물했다.


5. 아이와 함께 떠나는 런던 여행

어린이집 친구인 준모 가족이 주말을 이용해 런던으로 여행을 왔다. 우리의 런던 지식을 총동원해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맞춤형 코스를 만들기로 했다.

첫날, 런던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나온 준모 가족과 합류했다. 함께 저녁을 먹은 후, 모두의 기대를 받던 뮤지컬 '라이언 킹'을 보러 갔다. 화려한 무대와 감동적인 음악은 아이들이 즐겁게 볼 만한 뮤지컬로 손꼽히는 이유를 증명하듯 모두를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둘째 날은 사우스 켄싱턴에 위치한 과학 박물관에서 시작했다. 특히 '이상한 실험실(Wonder Lab)'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며 과학의 원리를 배우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실험 후에는 층층이 내려오며 다양한 전시물들을 둘러보았다. 과학 박물관 옆에 자리한 자연사 박물관으로 이동하여 거대한 공룡 뼈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했고, 박물관 내 아름다운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오는 길에는 웅장한 건물 내부의 넓은 공간에서 기념사진도 남겼다. 저녁 식사를 위해 빨간 2층 버스에 몸을 맡기고 하이드 파크와 그린 파크를 지나 레스터 광장으로 향했다. 한국에도 체인점이 있는 중국식 훠궈 식당에서 배를 채우며, 한국에 가면 이 맛집에 다시 가보자고 약속했다.

셋째 날, 우리는 내셔널 갤러리 옆 템스강 변에서 우버 보트를 타고 이동했다. 목적지는 런던의 상징, 타워 브리지였다. 우리가 ‘런던 다리 무너져요’라는 동요로 알고 있던 런던 브리지가 사실은 타워 브리지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 브리지 상층에 오르니, 투명한 바닥 아래로 템스강이 아찔하게 펼쳐졌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은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고, 거울처럼 반사되는 천장을 보기 위해 바닥에 누워보기도 했다. 그 모습은 캔터베리 대성당의 벨 해리 타워 천장을 보기 위해 누웠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이후 우리는 다리의 거대한 구조물을 움직였던 동력실로 향했다.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력과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점심은 서울 시청처럼 둥근 유리 건물로 된 런던 시청 옆, 커다란 통창 너머로 타워 브리지가 액자처럼 걸려 보이는 파이브 가이즈(Five Guys)에서 햄버거로 해결했다. 이곳에서 무한으로 제공되는 땅콩은 그야말로 '심심풀이 땅콩'이라는 말을 실감 나게 했다.

이전에 삼촌 가족이 영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비슷한 코스로 런던을 즐겼다. 다만 그때는 서연이는 학교생활 이야기를 담은 '마틸다' 뮤지컬을 선택했고, 타워 브리지 대신 세인트 폴 대성당의 웅장함 속으로 들어가 런던의 또 다른 매력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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