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영국 초등학생 KS 1 (1)

제1절 영국 초등학교 1학년

by 백지

1. 눈물과 함께 시작된 적응기

영국에서는 만 5세가 되면 초등학교1학년, 즉 Year 1 생활이 시작된다. 제 아이도 마침내 캔터베리의 한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한창 어린이집에서 자유롭게 뛰놀던 아이가 파란색 니트와 회색 바지의 교복을 입고, '학교'라는 공간으로 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견했지만, 한편으로는 '과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낯선 교실, 낯선 선생님, 낯선 친구들. 모든 것이 새롭고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아이는 잔뜩 긴장한 듯 보였다.

그 불안은 입학 첫날 현실이 되었다. 아이는 교실에서 눈물을 터뜨렸고, 결국 점심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학교 가기 싫어!" 아이는 매일 아침 울며 떼를 썼고, 나는 아이를 등에 업기도 하고, "방과 후엔 재미있게 놀자!"며 달래 가며 학교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손글씨로 정성껏 자기소개 카드를 써서 가방에 넣어주기도 했다. "내 이름은 Ji야", "오렌지랑 바나나를 좋아해", "포켓몬을 정말 좋아해!" 선생님께서는 이 카드를 보시고 아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주셨고, 심지어 포켓몬 책을 선물해주시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아주 조금씩, 아이는 학교라는 공간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어!"라고 말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 무렵, 나는 매일 아이가 하원할 때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오늘 친구들 몇 명이랑 이야기했어?" "한 명!", "두 명!", "다섯 명!" 숫자가 늘어날수록, 나는'아, 우리 아이가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구나' 하고 안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진행되는 포레스트 스쿨(Forest School) 수업을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숲 속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수업이니 아이도 잘 어울릴 거라 기대했지만, 내가 마주한 풍경은 전혀 달랐다. 아이만 멀찍이 떨어져 혼자 막대기로 땅을 파거나 실을 꼬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아, 아이는 아직 누구와도 제대로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구나.' 매일 늘어가던 친구와의 대화 횟수는 어쩌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아이 나름의 작은 위로이자 방어였을지도 모른다. 아이도 분명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겠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아직 낯선 교실의 경계가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조급했던 내 마음을 내려놓게 되었다. 무언가를 완전히 익히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1만 시간의 법칙을 떠올렸다. 아이가 이 낯선 환경에'완전히' 스며드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과 꾸준한 기다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성장은 직선처럼 곧게 오르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계단을 한 칸 한 칸 오르듯, 느리지만 확실하게, 반복과 멈춤을 거치며 나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조급해하지 말자.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아이의 곁에서 기다려주자." 그 다짐은 부모로서 내가 배운 가장 큰 교훈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아이가 언젠가 스스로 친구를 만들고, 학교라는 세계에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날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기다림이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큰 힘이 되어줄 거라는 믿음과 함께.




2. 영어 첫걸음

1) 입을 여는 연습: 영국 가기 전, 작은 발버둥

영국으로 떠나기 전, 다섯 살 아이의 영어 노출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놀이 중심으로 진행되던 영어 특별활동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주 2회 40분씩 하원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매일의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영어 유치원은 꿈도 꿀 수 없었고, 영어는 늘'조금은 멀고 낯선 언어'로 남아 있었다.

여름이 지나고 날씨가 서늘해질 무렵, 출국 날짜가 가까워지자 조급한 마음이 밀려왔다. '영어 환경에 조금이라도 익숙해질 수 있다면…' 그 바람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발화 스터디'였다. 런던의'마미 헨리' 선생님과 함께 한 달간 진행된 이 스터디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짧은 영어 문장 3~4개를 대화하듯 익히고, 문장에 맞는 소품을 활용해 영상으로 촬영하여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사이트 워드(Sight Word)를 단어 단위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통째로 입에 붙이도록 반복하는 연습이었다. 이는 영어라는 긴 여정을 앞두고 내디딘 우리의 조심스러운 첫걸음, 작은 발버둥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도 새로운 방식에 흥미를 보였다. 엄마, 아빠와 함께 문장을 따라 하고, 영상을 촬영하며 웃기도 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아이는 점차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영어가 어려운 걸까?", "아니면 반복되는 형식이 지루했던 걸까?"

한글과 영어의 격차가 너무 컸을까?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내뱉던 첫돌이 지난 어느 날 여름, 아이는'에펠탑'이라는 단어를 입에서 뗐다. 옹알이하던 아이에게 자주 이야기를 건넸고, 잠들기 전에는"이건 시계야", "저건 장난감이네, 잘 자" 하면서 사물 하나하나와 인사를 나누고 잠에 들었다. 아이와 서점과 도서관에 가고, 새 책을 사주면서 그림책과 전래동화, 세계 명작 동화책을 꾸준히 읽어주었다. 이른바 책육아를 한 것이다. 영국에 오기 전 만화 형식의 《카카오 프렌즈》 시리즈를 읽고, 《Why》 한글책을 막 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영어책으로 치자면 챕터북은 읽기 전 단계였다.

돌이켜보니, 이 무렵은 아이의 사물과 정보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시기라 영어를 시작하기에도 괜찮은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글과 영어 격차가 제법 있어 영어를 처음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인내가 필요했지만, 한번 내뱉기 시작하면 한글 수준으로 올라가는 데는 상대적으로 덜 걸렸다. 제 아이의 경우, 약 6개월 후 영어를 입에 뗀 후 그로부터 1년 후에는 한글 수준으로 올라온 듯했다.

아이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는 다른 아이들의 연습 영상을 보여주고, 선생님의 칭찬 댓글을 읽어주며 격려했다.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방식의 동기를 만들어내기로 했다. 발화 스터디를 일주일간 성실히 해낸다면, 짧은 애니메이션을 보게 해 주자!

그때 선택한 애니메이션은 영국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인기가 있는 페파 피그(Peppa Pig)였다. 한국의 뽀로로처럼 유쾌하고 익숙한 이야기 속에서, 아이는 조금씩 영어에 즐거운 감정을 더해가기 시작했다.


2) 포닉스는 영어 읽기의 불사조: 기초 다지기

낯선 학교에 적응해 가는 것과 동시에, 제 아이가 1학년(Year 1)이 되면서 새롭게 마주한 핵심 교육 과정이 있었다. 바로 포닉스(Phonics)였다. 알파벳 하나하나가 가진 소리(음가)를 익히고, 이 소리들을 연결해 단어를 읽는 과정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에게는 필수적이지만 가장 큰 도전이기도 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인 비어드(Beard) 선생님은 활기차면서도 차분한 성품을 지니신 분이었다. 영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잘 이해해 주셨고, 어느 날 우리 가족에게 유튜브 채널 하나를 추천해 주셨다. "매일 이걸 10분씩만 꾸준히 보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바로 영국식 발음과 포닉스를 단계별로 배울 수 있도록 구성된 《Letters and Sounds for Home and School》 채널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우리의 포닉스 기초 학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해 10월부터 12월까지, 매일 저녁 8시면 식탁 겸 책상 앞에 앉아 약 20분간 영상을 따라 했다. 막연히'쉬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곧 깨달았다. '기초'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영상 속 선생님의 발음은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영어와 미묘하게 달랐다. 굴리지 않고 길게 끌어내는 영국식 R, 또렷하게 끊어지는 T 발음 등. 아이는 물론, 나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발음이 연속이었다. 하지만 매일 꾸준히 영상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유튜브 재생 바에 빨갛게 표시된 기록들을 보며"우리가 이렇게 많이 봤다고?" 하고 스스로 감탄하기도 했다.

점점 아이는 공책을 꺼내 단어를 쓰고, 작은 칠판에 알파벳을 적으며 익힌 내용을 정리하는 습관도 들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듣고, 말하고, 쓰고, 익히는 과정은 어느새 우리 가족의 저녁 일상이 되었다.

아이의 학교에서는 매일, 각자의 읽기 수준에 맞는 책 한 권씩을 집으로 가져오게 했다. 집에서의 꾸준한 포닉스 학습 덕분인지, 처음에는 더듬거리며 읽던 아이가 어느새 또렷한 발음과 자연스러운 속도로 문장을 읽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붙은 아이는 스스로 "나 오늘은 두 번 읽을래!" 하며 영어 그림책을 들고 오기도 했고, 퀴즈를 통해 정답을 맞힐 때면 뿌듯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기초가 탄탄하게 다져질수록, '읽기'라는 행위는 아이에게 더 이상'과제'가 아닌 즐거운 ‘놀이’가 되어갔다.

이처럼 발화 스터디와 포닉스 학습은 아이가 영어를 입에 담고, 의미를 느끼고, 말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한 문장을 따라 말하는 데에서 시작된 여정이, 결국 한 권의 책을 스스로 읽어내는 감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부족하지만 매일 쌓아 올린 시간들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영어는 공부가 아니라 함께 걷는 일상의 언어'라는 새로운 인식을 남겨주었다.


3) 'Odd one?': 빈칸에서 시작된 학습지 도전

포닉스 학습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후, 나는 아이와 함께 집에서 영국 학습지(Workbooks)를 풀어보기로 했다. 그 결정의 계기는 학교에서 열린 1학년 예배 시간(Year 1 Worship)이었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과목별로 발표하는 학예회 같은 행사였다. 그러고 나서 아이의 공책을 살피고, 선생님과 면담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렇게 학부모가 되었구나 실감할 수 있었고, 부모가 자녀의 학습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살펴볼 수 있는 자리였다. 학교에 딸린 작은 교회 강당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이의 과목별 공책을 펼쳐보게 되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그린 서툰 그림, 뭉툭한 연필로 꾹꾹 눌러쓴 알파벳들이 한 장 한 장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간 글자 하나하나에 아이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났고, 그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국의 교실, 한국인 학생이 단 한 명뿐인 이곳에서 아이가 얼마나 홀로 애썼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릿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한 페이지가 있었다. 공책 한쪽에 적힌 "Odd one?" 문제였다. 하지만 그 문제는 손도 대지 못한 채 백지로 남아 있었다. 다음장도 마찬가지였다. ‘홀수인 것은?’ 이런 질문은 아닐 텐데. 아이는'이 중 다른 하나는?'이라는 간단한 질문조차 읽어내지 못해 아무런 답을 적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빈칸을 바라보며, 틀린 답이라도 써나가기 위해서는 문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 작은 빈칸 하나가 우리가 이곳 학생들이 푸는 학습지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밤이 긴 영국에서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다. 학습지는 학교 수업을 보완하며 아이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되었다. 또래 친구들이 어떤 학습지를 풀까 궁금함도 있었고, 이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조바심도 있었다.

물론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아이가 좀 더 자신감을 얻고, 낯선 문제에도 스스로 도전해 보는 힘을 키워주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 한 장의 연습. 매일 아이와 함께 학습지를 풀면서 문제를 이해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공부 그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이해하고 도전하려는 태도를 기르는 일이었다. 그 작은 반복이 쌓이며 아이는 점차 낯선 영어 질문에도 익숙해져 갔고, "나 혼자 해볼래!"라고 말하는 순간이 점점 늘어갔다. 아이의 작은 도전이 쌓여 큰 성장을 이룬 시간이었다.




3. 학교생활

1) 학교 시간표

오전, 오후 두 번에 걸친 '리제스터(Register)' 시간에 출석 확인을 했다. 오전 출석 확인 시간에는 점심 메뉴도 함께 선택하는데, 두 가지 정도의 메뉴가 제시되고 채식 여부나 알레르기 유무 등을 함께 확인했다. 수업은 영어, 수학, 과학, DT(Design & Technology), PSHE(개인·사회·건강·경제 교육), 컴퓨터, 그리고 포레스트 스쿨(야외 체험 학습) 등이 이루어졌고, 알파벳 읽기 규칙을 배우는 포닉스 수업은 매일 진행되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출석 확인을 한 후에는 '챌린지 타임(Challenge Time)'이라는 놀이 중심의 학습 시간이 주어졌다. 아이들은 컬러링, 축구, 나무 오르기 등 저마다 원하는 활동을 하며 자유롭게 놀고 배웠다.

한 학년에는 모두 여섯 학기로 나뉘어 운영되었다. 각 학기마다 기차, 날씨, 캔터베리, 캔트, 런던 그리고 마지막 학기에는 전 학년 공통주제 프랑스 올림픽 주제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 학기에 배운 내용을 토대로 과제가 주어졌다. 매주 목요일에 과제 공책을 제출하면, 금요일에 다시 되돌려주는 방식이었다.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학부모들이 모였다. 교장 선생님이 철문을 열어 주셨다. 철문을 지나 다시 나무로 된 문을 통과해야 학교 운동장으로 들어가 수 있었다. 방과 후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오후 3시 15분이 되면 부모의 손을 잡고 학교 밖을 나섰다. 등하교 외 학교 출입은 엄격해서 사무실에 출입 기록을 작성하고 용건을 알려야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출석체크 시간에 10번(5일) 빠지면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부모에게 벌금 통보가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부모 각각 책임을 지는 구조로 각각에게 80파운드가량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출석률은 학교 평가와 지원금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출석 관리를 했다. 한 주를 다 출석하면 100% 출석 스티커를 받았다. 한 학기를 빠짐없이 나가면 100% 출석 연필을 선물로 받아왔다.


2) 가족 예배 시간

두 학기가 지나면 학년별로'가족 예배 시간'이라는 행사가 열린다. 아이가 학습지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그 행사이다. 각 학년은 별도로 날짜를 정해 진행된다. 학교와 이어진 교회에서 열리는데, 부모들은 2층으로 올라가고 아래층에서는 전 학년 학생들이 모여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과목별로 발표한다. 아이들은 함께 합창을 하거나 과목별로 나뉘어 배운 내용을 직접 설명하고 시연하기도 한다.

행사는 보통 40여분 진행된다. 이 행사를 마친 후 부모들은 학교 안 작은 강당으로 이동해 아이의 노트를 자유롭게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정해진 교과서 대신, 선생님이 나누어주는 학습 자료를 아이들이 오려 공책에 붙이며 자신만의 교과서를 만들고 있었다.

노트 속에는 아이의 성취도를 확인할 수 있는 표시도 함께 담겨 있었다. 문제를 혼자 풀었는지, 친구나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했는지를 확인하는 공간이 있었고, 문제의 난이도는 mild, hot, spicy와 같이 '맵기'의 정도로 표현되었다. 예를 들어, 주어진 문제를 모두 해결한 아이는'할라피뇨맛' 문제에 도전할 수 있었다.

집에서는 다소 작고 평범하게만 보였던 아이가, 학교에서는 정성스럽게 공책을 채워나가며 한 걸음씩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배움을 즐기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3) 운동회(Sport Day)

마지막 학기에는 전 학년 운동회가 Kent College School의 넓은 운동장을 빌려 열렸다. 아이가 잘 즐기는지 보고 가까이서 응원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곳의 스포츠 데이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자원봉사에 지원했다. 학년별로 강당과 운동장, 수영장을 번갈아가면서 운동을 즐겼다.

휴식 시간도 달리 운영되는데, 그때 맞춰 음료를 적정하게 나누어주는 역할이었다. 음료 배분에 실패하여 혹시 못 마시는 아이가 생길까 봐, 그리고 너무 많이 남아서도 안 되었기에 한 잔 한 잔 정성을 기울여 따랐다. 그렇게 모든 아이들 한 명 한 명 마주할 기회가 있었고, 감사 인사를 나누었다.

오전에는 정글짐 오르기, 공놀이, 수영을 하며 학년별로 시간을 보냈다.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에는 모든 학년이 한데 섞여 초록, 파랑, 노랑, 빨강 티셔츠를 입고 4개의 팀으로 나뉘어 훌라후프 좌우로 뛰기, 하키공 장애물 피하기, 물동이 머리에 이고 뛰기, 축구공 몰고 가기와 같은 여러 작은 경기가 펼쳐졌다.

그리고 대망의 시간은 달리기였다. 달리기는 만국 공통인 듯했다. 학년별로 달리는 거리가 달랐다. 아이가 50미터 달리기에서 막판 뒷심을 발휘하여 머리를 휘날리며 3명 중 첫 번째로 들어왔을 때, 뛸 듯이 기뻐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손목에 도장으로 1, 2 숫자를 찍어줬던 어릴 시절 학교 운동장에 만국기가 달리고 솜사탕, 번데기 가판이 세워졌던 운동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4) '이 주의 스타'

아이의 학교에서는 매주 금요일, 가정 통신문이 이메일로 발송되었다. 그 안에는 한 주간의 학교 소식과 각 학년별 활동, 공지 사항이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도 눈길을 끄는 코너는 각 학년에서 3명의 학생을 선정하는'이 주의 스타(Star of the Week)' 명단이었다.

선정된 아이들은 전교생이 모이는 채플 시간(Chapel Time)에 불려 나가, 이름이 적힌 작은 인증서를 받았다. 아이 역시 그 자리에 한 번 서 보고 싶은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1학년이 끝나기 전에 한 번은 꼭 '이 주의 스타'가 되어보자고 목표를 세웠다.

1학년 아이들이니 돌아가며 한 번쯤은 기회가 오리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기대하며 이메일을 열어보았지만, 아이의 이름은 쉽게 그 명단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기대와 아쉬움을 반복하며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드디어 아이의 이름이 명단에 올랐다.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선정된 아이의 첫 번째 '이 주의 스타' 수상! 상장을 손에 들고 뿌듯해하던 아이의 얼굴은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그리고 아이는 새로운 목표도 세웠다. "2학년이 되면 두 번은 꼭 받아볼래!" 아이의 작은 다짐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5) 성적표'Above'

아이의 첫 성적표는 하얀 봉투에 담겨 집으로 가져왔다. 새로운 환경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한 아이는 쓰기, 읽기, 수학 세 영역에서 평가받았고, 그 결과는 기대 수준(NE; National Expectation)에 따라 분류되었다.

조심스럽게 밀봉된 채 아이 손에 들려온 성적표에는'해당 수준에 아직 도달하지 못함(Working Toward)', '기대 수준보다 약간 부족함(1 Step Below NE)', '기대 수준에 충족함(At NE)', 그리고 '기대 수준을 초과해 뛰어난 성취를 보임(Above)'이라는 평가 기준이 명시되어 있었다.

1학년을 마무리하는 성적표를 펼치자, 모든 영역에 굵게 동그라미 쳐진 'Above'가 눈에 띄었다. 아이의 꾸준한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고, 교사의 평가에는 아이의 실제 수업 참여와 성취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은 성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첫 성적표에 'Working Toward'와 '1 Step Below NE'가 기록된 일부 영역은 아이가 겪어온 도전의 깊이를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에게 쓰기 영역은 큰 도전이었고, 기대 수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그 순간, 아이가 얼마나 애쓰고 있을지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한 노력 끝에 모든 영역에서 기대 이상의 성취를 이루어냈다. 성적표의 'Above' 평가를 보는 순간, 아이가 지나온 시간과 그간의 노력이 떠오르며 가슴이 뭉클했다. 하루하루가 낯설고, 친구 하나 없는 공간에서 아이는 묵묵히 자리를 지켜내며 스스로의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성적표는 아이의 노력에 대한 조용한 박수이자,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격려와 감동이 담긴 선물이 되었다. '이 주의 스타' 상장과 함께 손에 쥔 성적표. 그 둘은 아이의 첫 번째 학년, 1학년을 뜻깊게 마무리해 주는 상징이었다.




4. 방과 후 프로그램

1) 학교 방과 후 특별활동

아이가 점차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면서, 1학년 네 번째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오후 3시 15분 이후 한 시간가량 진행되는 방과 후 프로그램에도 도전했다. 학년에 맞춰 요일별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었다. 비용도 이곳 물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축구의 본고장에서 축구를 배워보기로 했다. 아이는 자랑스럽게 7번 등번호가 달린 토트넘 손흥민 티셔츠를 입고 운동장을 누볐다. 이 외에도 레고와 과학 실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특히, 레고 시간에는 같은 반 친구인 알렉스와 함께했는데, 아이는 알렉스처럼 레고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싶다며 긍정적인 자극을 받기도 했다. 한 번은 곤충 관찰 프로그램이 교육 인원을 충족하지 못해 폐강되어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2) 영국 친구 가족과의 첫 만남

1학년이 끝나갈 무렵, 등굣길에서 자주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던 친구 가족을 처음으로 집에 초대했다. 아이의 학교 친구인 베키의 가족을 초대했다. 베키와 그 부모, 그리고 언니 루비와 애슐리도 함께 초대했다.

저녁 메뉴로는 김밥, 잡채, 불고기 등 한국의 대표 음식을 정성껏 준비했고, 아이에게는 도화지에 영어와 한글로 메뉴판을 작성하게 했다. 이름을 번갈아 쓰는 과정에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두 언어 사이의 연결 고리를 익혀갔다.

첫 만남의 어색함을 덜어줄 활동도 마련했다. 영어 이름과 한글 이름을 각각 적은 책갈피를 만들고, 스티커나 그림으로 꾸미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혹시 한글 쓰기를 어려워하거나 관심이 없을까 걱정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즐겁게 참여하며 흥미를 보였다.

식사 중에는 자연스럽게 문화 이야기가 오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나 BTS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K-POP을 들어봤다고 했고, 어른들은 《오징어 게임》, 《기생충》 같은 한국 콘텐츠를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기생충》 배우에 대한 슬픈 소식을 나누기도 했다. 생각보다 많은 한국 콘텐츠가 영국 사회에 이미 스며들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학교 행사에서는'아기 상어 노래', '강남 스타일'을 들을 수 있었고, 이후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다음 주, 우리는 초대를 받아 베키네 집을 방문해 따뜻한 중국식 샤브샤브인 핫폿(Hot Pot)을 맛봤다. 향신료 가득한 매콤한 국물은 한국에서 그리워하던 마라탕을 떠올리게 했다.

이날 친구 가족은 우리를 위해 특별한 활동도 준비했다. 짧은 시나 좋은 말이 적힌 종이에 말린 꽃과 잎을 배치하고 투명 비닐로 덮어 붙이는 '북 아트(Book Art)'였다. 작은 꽃잎 하나하나를 올리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고, 그 시간을 통해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존중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편, 또 다른 날에는 루카 가족을 초대했다. 한국 음식을 거의 접해본 적이 없었던 탓인지 베키네 가족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 느껴졌다. 이 역시 서로의 다름을 배우는 하나의 경험이었다. 아이의 학교, 캔터베리에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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