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절 그림형제와 안데르센 작가를 찾아서
1. 독일: 그림 형제를 찾아서
영국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아이의 방학을 맞아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단순히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보다, 아이가 흥미를 느낄 만한 '주제'가 있는 여행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그림책 속 세상을 실제로 만나는'동화 여행'이었다. 그렇게 동화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영국에서 브레멘 공항으로 가는 직항이 있었다. 독일 북서부 브레멘은 생각보다 역사적이었고, 또 트램이 다니는 현대적인 도시였다. 시청사 광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마치 그림책 한 장면 속에 들어온 듯한 설렘이 밀려왔다. "저기 있어!" 아이의 탄성에 시선을 옮기자, 사람들 틈 사이로 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이 차례로 올라선 동상이 보였다. 바로 그림 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 주인공들이었다. 동상의 당나귀 다리를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당나귀 앞다리가 하얗게 반질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당나귀의 다리를 조심스레 쓰다듬고 있었고,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해 잠시 손을 얹었다.
문득 내가 중얼거렸다. "이 동물들은 결국 브레멘까지 못 갔다던데?" 그러자 아이가 의젓하게 답했다. "그래도 괜찮아. 모험은 도착하는 게 아니라 떠나는 거니까." 도시는 조용했지만, 《브레멘 음악대》의 이야기는 광장 한가운데서 여전히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브레멘에서의 동화 속 만남을 뒤로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하멜른(Hameln)이었다. 이곳은 음산하면서도 매혹적인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이 전해지는 도시였다. 도시 중심가 거리를 걷다 보니 바닥의 돌 사이사이에 작은 금속 쥐 장식들이 박혀 있었다.
"여기 또 있어!" 아이와 나는 보물 찾기를 하듯 바닥을 샅샅이 살폈다. 하나, 둘, 셋… 우리가 찾은 쥐들은 작은 전설의 조각이 되어 현실 속에 새겨져 있었다.
갑자기 사람들이 하나 둘 시청 건물 앞으로 모여들었다. 벽면 시계 아래 설치된 창이 열리고, 피리 부는 사나이와 쥐, 그리고 아이들이 등장하는 인형극이 짧지만 강렬한 울림을 남기며 펼쳐졌다.
"슬프긴 한데… 눈을 뗄 수가 없어." 아이의 말처럼, 하멜른은 단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도시가 아니었다. 이곳은 전설이 고스란히 숨 쉬고, 현실이 그 동화 같은 이야기를 품어내는 법을 알고 있는 신비로운 도시였다.
브레멘과 하멜른의 거리를 걸으며, 우리는 책으로만 읽었던 동화들이 돌길 위에, 조각상 속에, 광장 한복판에 살아 숨 쉬는 것을 눈으로 보고 만지고 느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우리가 걷고 있던 이 여정이 단지 우연한 경로가 아니었다는 것을.
독일 동화의 길의 일부를 '그림 가도(Deutsche Märchenstraße)'라고 불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가도는 그림 형제가 태어난 하나우(Hanau)에서 시작해 음악대로 유명한 브레멘(Bremen)까지 약 600km에 이르는 동화 여행길이었다. 우리가 거쳐온 브레멘과 하멜른을 지나, 마르부르크(Marburg), 카셀(Kassel), 그리고 백설공주, 빨간 망토, 신데렐라 등 유명 동화들의 배경이 된 마을과 성들을 연결하는 길이었다. 그림 형제가 실제로 동화를 집필하고 편찬했던 중심 도시로 그림월트(Grimmwelt) 박물관이 있는 카셀에 있다고 했다.
그림 형제는 단지 옛이야기들을 기록한 사람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을 '살려낸'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독일은 그 이야기들을 지금도 '살려가는' 나라였다. 동화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다시 동화가 되는 마법 같은 여정 속에서, 아이와 나는 독일의 또 다른 매력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
2. 덴마크: 안데르센의 숨결이 깃든 동화의 나라
레고를 워낙 좋아하는 우리 아이에게 덴마크는 정말 특별한 선물이었다. 빌룬드 레고하우스와 레고랜드에서 아이는 마음껏 레고와 함께 신나게 놀았다. 그리고 코펜하겐으로 이동하는 길목에 위치한 오덴세에 들러 안데르센 박물관과 그가 어릴 적 지냈던 생가를 찾아가 보았다. 오덴세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더 많이 보이는,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다가왔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도 우리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기억하며 구석구석 여행해 보았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은 덴마크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동화 작가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성장했지만, 특유의 상상력과 따뜻한 시선으로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 등 수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를 넘어, 삶의 깊은 의미와 인간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어 오늘날까지 전 세계 독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오덴세에는 안데르센이 어릴 적 살았던 '안데르센 유년시절의 집'이 1930년에 복원되어 안데르센 박물관의 분관이 되었다. 구두수선공이었던 아버지의 작업장과 부엌, 3개의 방이 보존되어 있고, 어린 시절의 유품과 그림 등이 전시되어 있다.
코펜하겐 시청 근처에는 안데르센 동상이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고, 코펜하겐 항구에서는 그 유명한 인어공주 동상을 만날 수 있었다. 1913년에 세워진 이 작은 인어 동상은 바위 위에 앉아 바다를 아련하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전 세계 각국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답게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그 동상을 보니,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의 슬픈 이야기가 마음속에 더욱 생생하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