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플란더스 개와 하이디 소녀 애니메이션을 찾아서
1. 벨기에: 네로와 파트라슈, 그리고 루벤스의 꿈
첫번째 동화 여행지는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이었다. 캔터베리 여류작가 아프라 벤이 갔었던 도시이기도 했던 안트베르펜에 도착했을 때, 처음엔 그저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유럽 도시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이곳이 우리가 오래전에 책에서 만났던 슬프지만 따뜻한 이야기, 《플란더스의 개(A Dog of Flanders)》의 배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난한 소년 네로(Nello)와 그의 충견 파트라슈(Patrasche)의 이야기가 이 도시의 공기 속에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플란더스의 개》는 영국의 작가 위다(Ouida, 본명 Marie Louise de la Ramée)가 1872년에 쓴 소설이다. 19세기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을 배경으로, 가난하지만 순수한 소년 네로와 그의 충직한 개 파트라슈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다. 네로는 화가를 꿈꾸며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싶어 하지만, 가난과 역경 속에서 꿈을 이루지 못하고 파트라슈와 함께 성당에서 얼어 죽는다는 슬픈 결말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특히 일본, 한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필리핀에서 큰 사랑을 받아 여러 편의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성모 마리아 대성당(Onze-Lieve-Vrouwekathedraal) 앞 광장에서 우리는 마침내 그들을 만났다. 넓은 광장 한쪽에 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조각상 안에 네로와 파트라슈는 포근한 돌 담요를 덮고 서로에게 꼭 붙어 잠든 모습이었다. 이 조각상은 벨기에 조각가 바티스트 페르뮐렌(Batist Vermeulen, 예명: 티스트)이 2016년에 제작한 것이다.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조용히 발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아이는 한참 그 조각상을 바라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네로랑 파트라슈는 여기서 자고 있는 거지? 어디 멀리 간 게 아니고." 나는 조용히 아이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 도시는 네로와 파트라슈를 기억하고 있어. 여기가 바로 그들의 집이야."
조각상과의 만남 후, 우리는 대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고딕 양식의 높은 천장 아래, 어두운 조명 속에서 플랑드르 바로크 회화의 거장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걸작'십자가에서 내림(The Descent from the Cross)'이 정면 제단 왼편에 걸려 있었다. 루벤스는 17세기 유럽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극적이고 역동적인 구도, 풍부한 색감, 인체의 생동감 넘치는 표현으로 유명하다. 실제 이야기 속에서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바로 그 그림이었다. 작품 앞에 섰을 때, 아이와 나는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았다. 나는 루벤스의 천재성보다도, 그 그림을 꿈꿨던 한 소년의 간절한 마음이 더 오래 떠올랐다. 아이가 나지막이 물었다. "네로는 진짜 이 그림을 보고 싶었을까?" 나는 대답했다. "응, 네로한테 이 그림은 희망이었을 거야. 어쩌면 마지막 꿈이었는지도 몰라."
안트베르펜에서 우리의 마지막 여정은 중앙역(Antwerpen-Centraal)이었다. 유럽의 많은 기차역을 다녀봤지만, 이곳은 마치 하나의 궁전 같았다. 웅장한 돔 천장과 대리석 계단, 섬세한 아치형 창문들이 어우러진 모습은 감탄을 자아냈다. '철도의 성당'이라 불리는 이 역은 1905년에 완공된 후 지금까지도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이와 나는 말없이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슬며시 눈을 마주치며 우리가 지금 동화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만나고 있음을 느꼈다.
안트베르펜은 한 도시가 오랜 세월 동안 소년과 개의 꿈을 지켜온 따뜻한 기억 속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날 우리가 만난 건, 책 속 이야기를 현실에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자, 희망과 아픔을 간직한 이야기가 어떻게 살아남아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머물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울림이었다.
2. 스위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순수한 세상
스위스는 알프스의 웅장한 자연과 순수한 동심이 살아 숨 쉬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한 소녀의 따뜻한 이야기인 《하이디(Heidi)》의 배경으로 더욱 친숙하다. 요한나 슈피리(Johanna Spyri, 1827~1901)는 스위스의 대표적인 아동문학 작가이다. 취리히 근교의 작은 마을 히르첼에서 태어나 평생을 스위스에서 보냈으며, 그녀의 작품에는 고향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슈피리의 가장 유명한 작품 《하이디》는 1880년과 1881년에 각각 두 부분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1부는 《하이디의 수업과 방랑 시절(Heidis Lehr- und Wanderjahre)》(1880), 2부는 《하이디는 배운 것을 활용한다(Heidi kann brauchen, was es gelernt hat)》(1881)로, 이 두 권의 이야기가 합쳐져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하이디》가 되었다.
《하이디》는 고아가 된 어린 소녀 하이디가 스위스 알프스 산속에 사는 할아버지에게 맡겨지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외롭고 고집스러웠던 할아버지는 순수하고 밝은 하이디의 존재로 인해 마음을 열게 되고, 하이디는 웅장한 자연 속에서 목동 피터와 친구가 되어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한다. 그러다 독일의 부잣집으로 보내져 병약한 소녀 클라라의 말동무가 되면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려 노력하지만, 결국 알프스의 품으로 돌아와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
이 이야기는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스위스의 푸른 초원과 설산들을 보며 저절로 하이디가 뛰어놀던 모습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