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체질 개선 방법 제언
최근 TV나 온라인 뉴스를 통해 한국 영화계가 죽고 있다, 영화관에 고객이 없다, 영화가 개봉을 안 한다, 가격이 비싸다는 내용 등, 영화 업계에 대한 우려의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일부러 때를 맞춘 것도 아닌데, 덩달아 영화관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알리기 위해 썼던 지난 글이 반사이익으로 조회수가 많이 상승했다.
※지난 글: 영화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졌을까?
지난번 글이 영화관의 사업구조의 문제점을 설명했다면, 이번 글부터는 영화관의 사업 구조를 어떤 식으로 바꿔야 소비자와 영화관, 영화 업계가 모두 상생할 수 있을 지에 대해 필자의 생각과 계획을 공유하고자 한다.
공동구매(이하 공구)는 소비자와 판매자 양쪽에게 모두 win-win인 소비 방식이다. 소비자는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동일한 제품/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어 좋고, 판매자는 안정적인 매출을 올릴 수 있어 좋다. 공구는 보통 과일, 채소와 같은 식료품이나 맘카페에서 자녀용 물품 구매 시 많이 활용이 되고 있다.
최근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공동구매 스타트업인 '올웨이즈'는 복잡한 중간상 단계를 모두 제거하고 생산자 ↔ 소비자를 직접 연결시키는데, 공동구매를 통해 시중 최저가보다도 낮은 가격의 구매문화를 만들고 있다.
필자는 이 공동구매 방식을 영화관에 적용시키고 싶다. 이미 영화관은 단체/대관에 대해서 할인을 적용해주고 있다. 최소 20인~30인이 영화관으로 단체 관람을 신청하면, 해당 시간의 정가에서 할인을 적용해 주는 식이다. 주말 기준으로 15,000원인 영화 가격을 최소 6.7%(1,000원)에서 13.3%(2,000원)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인원이 더 많다면 영화 가격과 더불어 매점 할인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영화관 공동구매의 좋은 점은 가격할인뿐만이 아니다. 어느 정도의 인원 수가 모인다면 '원하는 영화'의 상영을 영화관에 요청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데미언 셔젤 감독의 팬이어서 <라라랜드>를 꼭 다시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면, 인원을 모아서 영화관에 <라라랜드>를 보고 싶다고 요청하는 식이다. 배급사에서 판권이 만료되어 극장에서 상영이 불가능한 상황이 아니라면 큰 문제없이 상영이 가능하다.
배급사에게도 이 공동구매 방식은 상당한 이득이 된다. 영화는 영화관에서 판매되어야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개봉 영화는 대형 영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개봉 2주일 안에 극장 상영이 종료되고, 그마저도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는 스크린을 제대로 받지 못해 판매가 이뤄지기가 어렵다. 하지만 공동구매 방식으로 소비자가 모여 상영을 요청한다면, 개봉한 지 시간이 지난 영화도 할인된 가격이지만 영화관에서 매출이 일어날 수 있고, 수요가 적어 상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예술영화나 독립영화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도 충족시킬 수 있다.
영화관 입장에서도 꺼릴 부분이 없다. 기존의 단체/대관 판매 방식을 좀 더 대중에게 오픈하는 정도일 뿐이다. 없던 판매 방식을 도입하는 게 아니기에 별도의 시스템 개발이 들어가지도 않는다. 안정적인 관객 수(=매출)를 확보할 수 있을뿐더러 매점 판매도 덤으로 노릴 수 있다.
즉, 영화관 공동구매는 소비자에게는 영화 가격 할인과 더불어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할 수 있기에 선택의 폭이 늘어나는 효과를 주고, 배급사에게는 보유한 영화 콘텐츠의 수명을 늘리고 매출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주며, 영화관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매출 확보를 가져다줄 수 있는 win-win-win의 방식이다.
영화관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① 콘텐츠 비수기에 관객이 없는 것과 ② 평일 오전, 오후에 관객이 없다는 2가지이다. 현재의 영화관은 개봉작 콘텐츠 의존도가 너무 높다. 대형 흥행작이 없을 때 고객을 유치할 만한 동력이 약하다. 지나간 영화를 기획전이라는 형식으로 할인 판매하기도 하지만 실적이 그리 높지는 못했다. 또 평일 오전, 오후에는 어떤 비즈니스건 마찬가지겠지만 학교나 직장 등 생활로 인해 고객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필자는 이 2가지 고질적인 문제를 공동구매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공급자 위주의 일방향적인 판매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 현재 영화관에서는 영화상영일정표를 프로그램 담당자들이 나름의 분석을 통해 고객 수요를 예측하고 작성한다. 어떤 영화를 어떤 상영관에 어떤 시간에 넣을지를 모두 프로그램 담당자가 공급자의 입장에서 정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영화가 얼마만큼 잘 될지 예측하는 것이 어려워 반대 편성*이 일어나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
※반대편성
예를 들어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자전차왕 엄복동>이 동시에 개봉할 때, 편성 담당자가 <자전차왕 엄복동>이 더 잘 될 줄 알고 회차 비율을 높였다가 실제로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잘 되어 고객이 꽉꽉 들어차 좌석이 부족해지고, <자전차왕 엄복동> 회차에서는 예매가 거의 없어 좌석이 텅텅 비는 식으로 큰 관과 작은 관의 배정을 반대로 해 매출 손해가 나는 경우를 뜻함.
이런 반대편성의 문제 때문에, 영화관은 보통 3일 치 정도의 시간표밖에 오픈을 안 한다. 고객이 어떤 영화를 선호하는지, 개봉하고 나서 반응 변화는 어떤지 등을 관찰하고 주말 회차 및 뒤 회차를 편성해야 반대편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를 관람하는 것은 관객이기에, 수요자가 직접 영화와 시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상영일정표 작성 방식이 변화한다면, 반대편성의 문제도 상당히 개선되고, 좀 더 정확한 수요 예측이 이루어져 매출이 증진되고, 영화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현재의 판매 방식을 한 번에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우므로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1단계는 공동구매를 통한 비활성 시간의 유효수요 창출 단계이다.
이미 판매하고 있는 3일과 개봉작의 최소 상영 보장기간인 2주일은 제외하고, 그동안 판매의 영역이 아니었던 나머지 기간(그림에서의 GRAY ZONE)에 공동구매를 할 수 있도록 상영관과 시간을 열어 선판매를 하는 방식이다. 보통 평일 저녁 19시부터와 주말은 메인타임이니 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비는 시간인 평일 오전/오후에 공동구매를 연다면, 아래 예상 고객 이용 flow처럼 유효수요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상 고객 이용 flow
데미언 셔젤 감독을 좋아하는 A 씨는 <바빌론>을 보고 나서 감동을 먹고 감독의 이전작인 <위플래시>를 영화관에서 관람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A 씨는 <위플래시>를 OTT나 IPTV를 통해 보기에는 그 감동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본인과 유사한 사람이 없을까 생각하던 중 '영화관 공동구매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이 플랫폼에서 A 씨는 본인이 시간이 되는 수요일 오후 2시에 모 영화관에서 <위플래시>를 보자고 공동구매를 올렸다. A 씨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30인이 모여 딜이 달성되었고, 영화관에서는 현재 상영 중이지 않았던 <위플래시>를 수요일 오후 2시 회차에만 열어주었다. 심지어 30인이 모여 원래 14,000원이던 영화 가격이 12,000원으로 2,000원 할인이 되었고, 매점도 2,000원 할인을 받았다. 막상 영화 예매가 오픈되자, 딜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상영일정표에 <위플래시>가 등장한 것을 보고 일반 예매가 추가로 이루어졌다. 최종적으로 수요일 오후 2시에 50명의 관객이 <위플래시>를 감상했고, 영화관은 매출을 얻고 A 씨를 비롯한 고객들은 감동을 얻었다.
2단계는 메인 타임까지의 공동구매 판매 확장 단계이다.
1단계에서 비활성 타임의 유효수요창출이 성공적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면 이제 평일 저녁과 주말까지 공동구매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평일 오전/오후보다 높은 최소 인원 기준을 적용하면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반대편성이나 판매 실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3단계는 개봉작 편성까지의 확장단계이다.
이미 CGV에서는 스피드쿠폰이라는 이름으로 개봉 전이나 초기단계에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예매할 수 있도록 쿠폰을 뿌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관객의 초기 선점을 통해 예매율 1위를 달성하기 위한 마케팅 성격이 강하다. 애초에 사전에 개봉작에 대한 선호 수요를 공동구매 방식으로 풀어버린다면, 해당 영화를 할인 가격에 본인들이 원하는 시간에 관람하고 싶은 관객들의 수요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대형 영화 2개가 동시에 개봉했을 때, 사전에 동 시간을 고객들의 공동구매 대결로 열어두어 더 높은 쪽이 이기게 한다면 경쟁심과 재미 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소비자는 영화관 가격을 비싸게 여기고 있고, 저렴한 OTT에 완전히 밀리고 있는 상황이다. 영화관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판매만 잘 된다면 가격을 내릴 의향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가격을 내렸다고 고객이 많이 올 것이라는 확신과 명분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그 명분을 만들어보자. 고객에게 선택권을 늘려주자. 영화관에 판매가 잘 일어나지 않는 weak time부터 시작해 보자. 영화관과 배급사, 소비자 모두 win-win-win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공동구매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서비스 기획을 진행 중에 있다. 올해 3분기 내로의 런칭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멀티플렉스와 배급사들까지 상생의 방법으로 제안해보고자 한다. 이 글을 보는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좋은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 기탄없이 말씀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