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수록 선명해진다 서평

탐험하는 글쓰기의 힘 / 엘리슨 존스 지음 진정성 역

by 책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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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라는 외투를 벗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탐험



하얀 침묵이 주는 중압감

책상 앞에 앉아 하얀 종이를 마주할 때면, 가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곤 하죠. "잘 써야 한다"라는 마음이 앞설수록 손가락 끝은 돌덩이처럼 무거워지고, 머릿속은 오히려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예지기 일쑤입니다.



노트북의 커서는 깜빡이며 저를 재촉하는데, 정작 저는 단 한 줄의 문장도 허락받지 못한 채 텅 빈 여백 속에 고립되곤 했습니다. 완벽이라는 이름의 감옥은 늘 그렇게 저를 가두었습니다. 그때 제 시선이 머문 책이 바로 앨리슨 존스의 『쓸수록 선명해진다』였습니다.





녹물을 흘려보낼 용기

저자는 글쓰기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지저분한 생각들을 '녹물'에 비유합니다. 오래된 펌프를 돌릴 때 처음에는 벌건 녹물이 쏟아져 나오듯, 우리 마음도 처음에는 정돈되지 않은 찌꺼기들을 쏟아내야 합니다. 그 과정을 견뎌야 비로소 깊은 곳에 숨겨진 맑은 물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죠.



저는 시계를 맞추고 딱 6분간, '아무 말'이나 적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저녁은 맛이 없었다", "글쓰기가 사실은 너무나 귀찮다" 같은 시시콜콜하고 못난 마음들을 종이 위에 쏟아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엉망진창인 낙서들을 쏟아낼수록 마음의 소란이 가라앉고, 비로소 내면의 질서가 선명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6분, 나를 만나는 시간

사실 제게 글쓰기는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무대였습니다. 근사한 비유와 빈틈없는 논리로 무장해야만 가치 있는 결과물이라 믿었죠. 하지만 이 책은 '탐험 쓰기'를 제안합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오직 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면을 탐험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글쓰기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대신, 문제를 악화시킬 엉망진창인 생각을 써보라"는 역발상은 저를 완벽주의의 늪에서 건져주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다 보면, 내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공지능 시대, 대체 불가능한 기록

AI가 순식간에 정제된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AI는 결코 나의 녹물을 대신 흘려줄 수 없습니다. 서툰 필체로 종이를 긁으며 내뱉는 한숨과, 그 끝에 길어 올린 아주 개인적인 통찰은 오직 직접 쓰는 행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전리품입니다.



나만의 언어로 어지러운 감정의 이름표를 찾아주는 시간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방향이 다시금 선명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6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펜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나를 괴롭히던 복잡한 문제들은 어느덧 내가 충분히 다룰 수 있는 가벼운 과제로 변해 있었습니다.



흔들림 속에서 중심 잡기

우리는 늘 완성된 지도만을 가지고 세상을 걸어가려 합니다. 하지만 삶은 지도보다는 탐험에 가깝습니다.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수풀을 헤치고 진흙탕에 발을 담그는 그 '엉망진창'의 과정 속에서만 우리는 진짜 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 오늘 내 안의 고여 있는 생각들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연습을 합니다. 그렇게 매일 조금씩 나의 진심과 마주할 때마다,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 선명해진다는 기분을 맛보게 됩니다.





비로소 보이는 것들

지금 무언가에 가로막혀 답답한 마음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연필 한 자루와 종이 한 장을 꺼내보세요. 남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고, 맞춤법이 틀려도 괜찮습니다. 그저 6분간 당신의 마음속에 고여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내 보세요.



그 사소하고 엉망인 순간들이 쌓여갈 때, 당신의 세상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고 선명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녹물이 빠진 자리에 고이는 맑은 문장들처럼, 삶의 다음 단계가 비로소 선명해진다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