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인체의 신비

by 비마

엊그제 늦잠을 잤다. 알람을 8시에 맞춰놨는데, 깨어나보니 9시40분이었다. 아마 8시에 울린 알람을 끄고 다시 잤던 것 같다. 머릿 속의 피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날 그런 일이 일어난다. 며칠 전 딸이 귀가가 늦어서 새벽 2시에 잠들었다가, 새벽 3시에 딸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잤다. 그 여파가 며칠 지속됐다. 잠을 충분히 못자면 머리가 무겁다.


오전 11시에 과천에서 당구 레슨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오전 10시에는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전날 밤 샤워를 해서 아침에 샤워를 생략한다고 해도 몸에서 크게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머리를 안 감은 것이 께림칙 했지만, 그것은 골프모자를 쓰는 것으로 어느정도 해결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구레슨을 받는 동안 계속 모자를 쓰고 있었고, 레슨이 끝나고 식당에서 쭈꾸미정식을 먹을 때에도 모자를 쓰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상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밥 먹을 때에는 모자를 벗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워싱턴 특파원 시절 당시 주미 한국대사와 프라이빗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적이 있다. 그때 특파원 세명과 대사가 골프장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직원이 다가와 정중하게 말했다. "식사하실 때에는 모자를 벗어주시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모자를 쓴 채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는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모자를 벗는 것이 격식을 지키는 태도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모자를 쓴 채 다시 피아노 연습실에 가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연습실은 피아노 한 대가 놓여있고, 그 앞에 한 사람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공간이다. 그런 연습실이 15개가 있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한숨을 돌리며 모자를 벗었다. 머리 냄새가 좀 나는 것 같았다. 모자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렇게 불쾌한 냄새는 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냄새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뒤, 샤워를 했다. 다음날 아침 머리를 감을 것이기 때문에 그냥 잘까 하다가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 상쾌함과 다시 깨끗해졌다는 안도감 속에 잠이 들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담임 선생님이 운동장에 학생들을 세워놓고 모자를 검사했다. 그 당시에는 모든 학생이 교복을 입고, 학교 배지가 달린 모자를 쓰고 다녔다. 담임 선생님은 그 학생들의 모자를 벗겨 일일이 냄새를 맡았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선생님은 말했다. "야, 임마. 머리 좀 감고 다녀라."

그때의 일이 왜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걸까. 나는 코가 예민해서 냄새를 잘 맡는다. 내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났고, 선생님이 그것을 지적했다는 일이 내 무의식 속에서는 큰 사건으로 자리잡고 있었나 보다.


머리를 감고 상쾌감을 느끼며 잠든 그날 밤 꿈 속에서 나는 다시 고등학생이었다.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이름도 알 수 없는 동급생 친구가 다가와서 나를 뜷어지게 바라보았다. "왜 그래?" 내가 물었다. 그는 마치 큰 비밀을 얘기해주는 양, 낮은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였다. "너 말야. 머리 냄새가 심하게 나거든. 다른 애들도 다 알고 있어. 참고로 말해주는 거야." 그는 그렇게 말한 뒤 가버렸다. 다른 학생들도 나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샤워실로 갔다. 샤워기가 여러대 서 있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군대의 샤워실 같은 곳이었다. 그중 샤워기 하나를 골라 물을 틀고 머리를 감으려고 했다. 물이 잘 나오지 않았다. 샤워기와 씨름하고 있을 때, 누가 샤워실로 들어왔다. 호리호리한 체형의 예쁘장하게 생긴 여인이었다. 나는 다 벗고 있는 데, 그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샤워장을 돌아다녔다. 나는 그녀가 내 머리 냄새를 맡을 까봐 두려웠다. 그 여자에게 등을 보인 채 물이 잘 안나오는 샤워기와 씨름을 하다가 마침내 잠에서 깼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이란 현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일로 인해 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나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예컨대 자면서 소변이 마려울 때, 꿈은 내가 소변을 보는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이 얼마나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맞는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런데, 어떻게 꿈이 그토록 구체적으로 그런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지 신기하다. 그토록 생생한 현실감을 주면서, 꿈을 꾸는 내가 `이건 분명히 현실이야'라고 믿게 하다니. 오래 전 청소년기에 꿈 속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 적이 있긴 하다. '아,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어. 그런데 빨리 깨어나고 싶어.'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꿈에서 깨기 위해 허공에 마구 주먹질을 해댔다. 그 주먹질에 지칠 즈음 꿈에서 깼다. 그것은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은 그 뒤로는 없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는 동안 자신이 현실세계에 있다고 착각한다. 그것이 또 꿈의 묘미이기도 하다.


어떤 날에는 달콤한 꿈을 꾸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무서운 꿈을 꾸기도 한다. 어떤 날에는 내가 군대에 다시 입대를 해서, 과거에 복무했던 33개월 이라는 기간을 다시한번 군대에서 보내는 꿈을 꾼 적도 있다. 하룻밤 꿈 속에서 33개월이 지나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황당한 꿈도 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흰 수염의 도사가 나타나 마치 무슨 예언가처럼 말했다. "너는 호랑이의 심장을 가졌다." 꿈에서 깨었을 때 기분은 과히 나쁘지 않았다. 심장이 좋다는 거니까. 현실세계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25회 완주했어도 심장은 끄떡없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