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내 인생에 미친 영향

그레이엄 그린의 말에 동의한다.

by 비마

그레이엄 그린 (Graham Greene) 이라는 영국의 소설가가 있다. 내가 그의 소설을 읽은 것은 대학때 영미소설이라는 수업에서다. `권력과 영광 (The Power and the Glory).' 멕시코가 배경이다. 농민의 아내와 불륜관계를 맺어 자식까지 낳은 가톨릭 신부가 주인공이다. 그의 별명은 위스키를 좋아한다고 해서 `위스키 신부.' 멕시코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 교회가 불태워지고 모든 성직자들이 체포돼 총살된다. 이 와중에서 위스키 신부는 홀로 미사를 드리고, 주민들의 고해를 들으며 주민들의 존경까지 얻는다. 그러나, 그는 결국 체포돼 총살당한다. 성직자들의 위선을 꼬집고, 인간의 이면을 파헤친 작가의 시선이 새로웠다.


이 작가의 글을 최근에 우연히 접하게 됐다. 그는 독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책들이 우리 인생에서 깊은 영향력을 갖는 것은, 어린 시절뿐일 것이다. 어린 시절 이후 나중에라도 우리는 책을 읽으며 감복하고, 즐거움을 찾고, 우리가 이미 견지하고 있는 견해를 수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때는 책을 읽으며 우리가 이미 마음 속에 갖고 있는 것들을 확인하는데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는 모든 책들은 우리에게 미래를 얘기해주는 예언서들이다. 그리고, 카드에서 긴 여정을 보는 점쟁이들처럼 그 책들은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그의 말은 지금 돌이켜 보면, 거의 맞는 말이다. 대학 이후에 읽은 책들은 내 인생에 그리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은 것 같다. 중고등학교때 많은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재수를 하던 3년간도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 요즘 젊은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지듯, 나는 독서에 빠졌다. 초등학교때에는 만화에 빠졌고, 중학교때에는 무협소설에 빠졌으며, 고등학교때부터 재수까지 합친 6년간은 문학에 빠졌다. 특히 부모님이 사주신 한국문학전집과 세계문학전집은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았다고 생각한다. 하루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자기 전에 이불에 엎드려 고전 소설들을 읽는 시간이었다.


내가 성인이 되어 읽었다면 그저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살았을까"라고 생각하며 지나갔을 이야기들이, 나의 온 세상이 되어, 내가 주인공이 되어, 온 몸에 스며들었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가 롯테에게 남긴 유서를 읽을 때, 눈물 한방울이 책장에 떨어졌다.


백면서생이던 나는 군대에서 33개월을 보낸 뒤, 대학에 들어갔고,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몸으로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엄 그린의 `위스키 신부'를 이미 읽었으므로, 나는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려 애썼다. 보이는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늘 궁금해했다. 인간은 보이는 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단순한 인간은 없다. 나는 항상 판단을 유보했다. 언젠가는 그 판단을 확정하는 상황이 온다. 그 사람의 이면을 엿볼 때다. 물론, 판단을 확정하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더 많긴 하다.


세계문학전집에 나왔던 수많은 여자들. 그들의 일면을 현실에서 보기도 한다. 어떤 미모의 유부녀는 멋진 젊은 군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달려오는 열차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안나 카레니나), 평범한 미모의 여인이 야망있는 청년의 아이를 임신했다가 그 청년과 함께 탄 보트에서 떨어져 익사하기도 (American Tragedy: 젊은이의 양지)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전쟁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죽기도 했고 (서부전선 이상없다), 노인이 되어 힘겨운 돛새치 낚시를 하기도 했고 (노인과 바다), 연상의 유부녀를 절망적으로 짝사랑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하기도 했다. 무기력한 하버드대출신 가장이 되어 동네 은행을 털 계획을 세우기도 했고 (불만의 겨울), 자식들에게 미리 재산과 땅을 다 나눠준 뒤, 황야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리어왕) 해봤다.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을 키워준 왕을 살해하고 권력을 잡았다가, 반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며 인생무상을 경험하기도 (맥베스)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그 고전의 경험을 현실에서 맛보고 확인해왔다. 그것을 지금까지 잘 깨닫지 못했으나, "어린 시절의 독서만이 인생에 깊은 영향을 준다"는 그린의 글을 읽으니 "아, 그랬구나"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없는 형편에 문학전집을 사주신 부모님께 새삼 감사하며, 나는 행운을 타고 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간접 경험들을 못해보고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독서를 통해 많은 감정과 상황과 인간과 철학들을 접해본 사람들은 같은 한정된 시간을 살아도 사실은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긴 인생을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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