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구입

시러큐스 유학기 (1996)

by 비마

미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차들은 일제차들이다. 기름도 덜 먹고, 고장도 미제차들보다 잦지 않다는 평판이 나 있었다. 그래서 중고차 시장에서는 일제차들이 미제보다 비싸다. 같은 90년식에 같은 3천cc 배기량을 갖고 있어도 일제는 미제보다 비싸다. 한국산은 현대밖에 없었으나, 그것도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았다. 현대차를 타는 사람들은 유심히 보면 흑인들이 많았다.


한 번은 워싱턴 주변을 돌아다니기 위해 시내에 있는 드리프티 (Thrifty)라는 렌터카 업소에서 현대의 엑센트를 빌렸다. 그런데, 30분도 못돼 계기판에 “엔진을 검사해보라 (Check Engine)"는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심 조심 운전을 해서 렌터카업소에 돌아왔더니, 고객상담원이 “그 차는 현대차라서 그렇다”고 조롱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왜 현대차를 고객에게 빌려주느냐고 물었더니 “그건 회사 방침”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면서, “나라면 현대차는 절대로 안산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에 기분이 언쨚았으나,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자위했다. 일본차들도 처음에 미국에 들어올 때에는 다 같은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가 고장도 잘 안나고 튼튼하다는 것이 경험으로 밝혀지면서 지금과 같은 인기를 얻게됐을 것이다. 문제는 얼마나 품질관리를 잘하느냐이다. 계속 좋은 품질의 자동차를 만들어 팔면 언젠가는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게 돼 있는 것이다.


차를 사기 위해 워싱턴의 두 특파원에게 물었을 때 두 사람은 각각 다른 대답을 했다. J부장은 “일제차가 다시 팔 때 높은 값을 받으니까 일제차를 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토요타의 캠리 (Camry)라는 차를 몰고 다녔는데, 그 차는 미국 전역에서 3번째로 인기있는 차종이었다. 경제부에서 오래 근무했던 J부장은 철저하게 경제원칙에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S선배는 “미국에 왔으면 미국차를 타보라”면서 포드의 토러스 (Taurus)라는 차종을 권했다. 자신이 그 차를 구입해서 타고 다니는데,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말썽을 부린 적이 없다고 했다. 토러스는 미국내에서 가장 인기있는 차종이었다.


1996년 12월6일자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일제차들은 10월부터 두 달간의 시장조사 결과, 미국자동차 시장의 23.8%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가장 인기있는 일제 차종은 혼다의 어코드와 토요타의 캠리였다.


미제와 일제의 구분 없이 가장 인기있는 차종은 포드의 토러스로 96년 1월부터 11월까지 363,077대를 팔아서 5년 연속 최고 인기차종이 됐고, 그 다음이 혼다의 어코드로 353,328대, 그 다음이 캠리로 262,974대였다.


그러나, 엔화의 약세와 더불어 일제차들의 가격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고, 토러스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있었다.


뉴욕타임즈의 한 자동차 관련 보도는 일제차들이 미국내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 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었다. “1986년산 토요타 코롤라와 1992년산 포드 토러스를 갖고 있다는 부르스 플라이스쳐라는 44세의 교사는 코롤라보다는 토러스가 더 자주 문제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중고차 시장을 며칠 동안 돌아다녀 본 뒤,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연도에 비슷한 가격으로 팔린 차라도 일제차가 미제보다 훨신 비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제차를 타는 것은 민족감정상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일제차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욕을 하곤 했는데, 내가 미국에 왔다고 해서 일제차를 탄다면 나도 그들과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생각이 짧았다. 지금(2025)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경제논리로 차를 구입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제차를 타는 사람들이 모두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사실 그런 관념도 바뀔 때가 됐다. 국제경제가 세계무역기구 (WTO)의 발족과 더불어 빠른 개방화 추세에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의 제품이냐 보다 얼마나 값싸고 품질이 좋으냐가 구매자의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이제는 국내의 기업이라고 해서 외국기업과의 경쟁에서 보호돼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한국기업들이 외국기업들과의 경쟁을 통해 자생력을 기르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한국기업들이 품질향상 노력은 게을리 하면서 오로지 “국산품 애용”이라는 구호와 “애국심”에만 호소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다. 소비자들은 품질좋은 상품을 보다 싼 값에 사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원칙이며, “애국심”과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이다.


일단 토러스를 사기로 결정하자 남은 문제는 어디에서 차를 살 것인가였다. 연수생 일행중 중고차 시장에서 차를 산 사람들은 모두 시장 딜러 (판매인)가 부르는 값에서 1,500불에서 2,000불 정도씩 깎았다고 했다. 심지어는 3,000불을 깎은 사람도 있었다. 한마디로 중고차 딜러들은 믿을만한 사람들이 못된다는 얘기가 많이 돌았다.


그래서 워싱턴포스트의 광고난을 살펴보았다. 토러스 93년식은 대개 8,000불 이상이었다. 나는 6,000불에서 7,000불 정도를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예산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토러스 93년식을 7,000 달러에 팔겠다는 광고를 발견했다. 돌아다니는데도 역시 차가 필요했으므로 메릴랜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던 회사 기술부의 J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했다.


전화로 물어서 저녁 때 쯤 찾아간 곳은 어느 개인집이었다. 그 집에는 토러스가 3대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차들에는 번호판이 없었다는 것이다. “왜 번호판이 없느냐”고 묻자 그 집 주인은 “이 차들은 은행에 저당잡혔던 차들이며, 나는 은행으로부터 의뢰를 받고 차를 판다”고 설명했다. 차들의 상태는 비교적 좋았다. 그러나, 날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으므로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오기로 하고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광고에 나온 차 값이 너무 싼 것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 집에서는 직접 차값을 물어보지 않았었다. 그래서 혹시 내가 광고를 잘못 본 것이거나 아니면 광고가 잘못 나온 것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다시 전화를 했다.


“그런데, 어제 차값을 물어보지 않았는데, 얼맙니까?” “8,000불이요.” 역시 광고가 잘못된 것이었다. “나는 어제 7,000불 인줄 알고 갔었는데, 가격이 예상보다 비싸니 그 차를 포기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그 말에 화가난 듯 했다. 그는 대뜸 언성을 높였다. “여보시오. 당신들 동양인들은 차를 제대로 사는 법이 없는 것 같소. 당신은 꽤 직접적으로 얘기하는데, 다른 동양사람들은 이것 저것 고르고 뜯어보다가 결국은 안사고 그냥 돌아가는 사람이 많아요”라며 불평을 해댔다. 물론 화가나서 하는 얘기였지만, 그것이 동양인들에 대한 그 사람의 인상이었다.


역시 중고차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차를 고르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가장 탐이 났던 차는 토러스 93년식, 3,800cc 배기량의 차였다. 언뜻 보기에도 새차처럼 보였고, 모든 옵션이 다 붙어있었던 것이다. 엔진소리도 조용했다. 직접 타고 시운전을 해보지도 않은 채 그 차를 6,500불에 달라고 했다. 판매인은 8,900불을 불렀다. 결국, 나는 7,500불까지도 내겠다고 했으나, 그는 8,900불에서 전혀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며칠동안 중고차 시장을 돌아다닌 끝에 7,500불짜리 3,000cc 93년식 토러스를 발견했다. 그러나, 본네트 (hood, bonnet) 색깔이 차의 몸체 색깔과 다른 것 같아 물어보았더니, 판매인도 역시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결국은, 한 번 본네트를 바꿀 정도로 사고가 크게 났던 차인 것이다. 판매인이 그런 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사고가 났던 차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 누가 사겠는가. 나는 그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시운전을 해보니, 엔진상태가 좋은 것 같았고 더 이상 돌아다니기도 피곤했다.


“7천불에 사겠소.” 판매인은 상급자에게 물어보더니, 3백불만 더 낼 수 없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윈도우도 수동식이고 타이어도 알루미늄 휠이 아니어서 그 이상은 더 낼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 결국은 7천불에 그 차를 샀다. 판매인은 “당신은 정말 좋은 차를 샀다. 축하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인사치레인줄 알았으나, 정말로 그 차는 1년동안 단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 특히, 워싱턴에서 시라큐즈까지 8시간 걸리는 거리를 3번이나 왕복했는데도, 전혀 이상이 없었던 것을 보면, 매우 단단하게 잘 만든 차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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