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의 배신

나는 왜 이렇게 아둔할까

by 비마

내가 손목시계를 처음 찼던 순간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 미군부대에 다니던 아버지가 미군용 손목시계를 나에게 주셨다. 야광이 되고 예쁜 숫자와 시침 분침이 있는 아담한 원형 시계였다. 색깔은 당연히 군복색이었다. 당시는 1971년도. 우리나라 일인당 GDP가 301달러였다. 시계를 찬 친구들은 거의 없었다. 이때부터 손목시계는 나의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었다. 시간을 보는 편리함, 그리고 친구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물건. 특히, 시험시간에는 손목시계가 너무나 요긴하나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한국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하고, 고등학교때에는 이미 많은 친구들이 손목시계를 차고 학교에 다녔다.


그후로 여러개의 시계를 바꿨다. 결혼때 받았던 세이코 예물시계, 결혼 30주년 즈음에 와이프가 사준 태그호이어 등 몇개의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녔다. 그런데, 시대가 변해 이제는 스마트워치가 수면점수를 매겨주고, 운동량을 알려주며, 휴대폰의 전화나 알림을 전해준다. 그래서, 삼년쯤 전에 스마트워치를 구입했다. 아마도, 태그호이어에 밧데리 교체를 맡기고 삼주동안 찰 시계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 뒤로 집에서는 갤럭시워치를 찼다. 밖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갤럭시 워치로 바꿔차고 운동도 하고, 잠도 잔다. 맥박, 수면점수, 운동량 등 여러가지 건강 정보를 너무나 편하게 볼 수 있어서 워치를 애용하게 됐다.


그런데, 지난 여름 내 손목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했다. 실리콘 재질의 스트랩이 손목을 감싸고 있었는데, 그곳에 검은 자국이 생긴 것이었다. 단순히 실리콘의 색깔이 묻은 것이 아니라, 피부 자체가 검게 변하고 있었다. 여름에 워치를 차고 운동하고, 잠도 자다보니, 땀이 차서 피부에 트러블이 생긴 것이었다. 이수역 근처의 피부과에 갔더니 의사가 "접촉성 피부염"이라고 했다. 그는 내가 "아마도 스마트워치를 차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더니, 단번에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스마트워치로 인한 피부염때문에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약을 처방해주면서 "당분간 시계를 차지 말라"고 했다. 그가 처방해준 약은 ■포타스틴오디정 (알러지질환약) ■소론도정 (면역억제 및 항염작용을 통해 내분비장애, 염증질환을 치료) ■록세미신정(세균감염증 치료제) ■ 판크론정 (소화촉진제) ■베타베이트크림 (항염 및 항소양 작용을 통해 각종 피부질환을 치료하는 연고) 등 다섯가지나 됐다. 그저 간단한 피부트러블이 아니라, 염증과 세균감염도 동반된 심각한 피부병이었던 것이다.


의사는 시계줄의 재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그저 "시계를 차지말라"고만 당부했다. 그래도 나는 실리콘이 아닌 금속제의 시계줄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낮에는 금속제 시계줄의 태그호이어를 차고 다녔고, 밤에는 갤럭시워치의 시계줄을 금속제로 바꿔 오른손목에 차고 잠을 잤다. 이미 여름이 지났기 때문에 시계를 찬 손목에 땀도 차지 않았고, 더이상의 피부트러블은 생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애시당초 왜 삼성전자가 갤럭시워치에 실리콘재질의 시계줄을 붙여서 파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들은 접촉성피부염이 발생할 위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 예컨대 제품설명서의 주의사항에 "여름에는 땀으로 손목에 습기가 차서 접촉성피부염이 생길 위험이 있다"고 한줄 넣는다거나, 아니면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때 실리콘대신 피부염을 유발할 위험이 적은 재질의 시계줄을 넣어 판다던가 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간 수십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대기업이 이 정도의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면 그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내가 믿고 내몸에 밀착시켰던 시계줄이 나를 배신했다. 초기에 약간의 가려움증이 생겼을 때 워치로 인한 피부염을 의심하고 병원에 갔어야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계줄만 나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나를 배신한다면 그 타격은 시계줄이나 피부염보다 더 클 것이다. 아무 생각없이 가까이 하던 친구나 선후배들이 어느 순간 나를 배신할 때 나는 "아, 그사람은 가까이 해서는 안될 사람이었구나"라고 뒤늦게 후회를 한다. 왜 그런 사람의 성향을 진작에 파악하지 못했을까. 그러나, 내가 심리적이던 경제적이던 아니면 사회적이던 이미 타격을 받은 뒤라서, 후회를 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아, 나는 왜 이렇게 아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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