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암에 걸려봤다

"내가 철인은 아니었구나"

by 비마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암같은 병에 안걸리고 살 수 있을까. 아니, 암에 걸리고도 멀쩡하게 안 죽을 수 있을까. 그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버지는 노환으로 별세하셨다. 87세를 일기로. 특정한 병명은 없었고, 단지 감기 비슷한 증상으로 약 한달 정도 집에 누워계시다 조용히 돌아가셨다. 정주영 현대그룹회장과 같은 나이에 가신 것이다. 몸에 좋은 것을 수없이 복용했을 정회장과 달리 이북에서 혈혈단신으로 피난 나와 평생 가족들 먹여살리느라 힘들게 일하면서 보약도 많이 못드신 걸 감안하면, 그래도 어느정도는 선전하셨다고 본다. 큰 지병도 없으셨다. 당뇨가 조금 있으셨고, 전립선이 안좋아 부평성모병원에 정기적으로 다니셨다. 체형도 마른 체형으로 고혈압도 없었고, 감기에 걸리기 전까지는 건강하게 다니셨다. 그러다가 갑자기 가신 것이다. 아버지와 열살 차이가 나는 어머니는 나에게 "늬 아부지보다 내가 더 먼저 죽을 거 같애."라고 볼멘 소리를 하시곤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1년여만에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77세. 평소에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그렇게 말씀드려도 "아프면 죽으면 되지."라고 배짱을 부리셨다. 그러다가 대장의 종양이 터진 뒤에야 119로 실려가 수술을 받으셨다. 수술 받으신 뒤 반년 정도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항암치료가 힘에 겨우셨나 보다. 결국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다. 건강검진을 좀 더 강권하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같은 불효자는 없을거야." 뭐 해드린 것도 별로 없고, 마지막 순간에 산소호흡기를 떼는 타이밍도 놓쳤다. 얼마나 답답하고 괴로우셨을까. 문득 드는 생각. "이제는 내 차례구나." 어머님이 대장암으로 수술받고 입원하셨을때 나는 갑상샘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다. 목에 보기 흉한 흉터를 가지고 어머니에게 갔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안하셨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회사에서 매년 하라는 건강검진에서 "갑상샘의 결절이 이상하게 생겼으니, 큰 병원에 가서 확인해보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때가 2008년이었으니, 내가 만 51세때다. 서울대병원 내과에서 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던 딸은 내가 암에 걸렸다는 말을 듣고 나에게 걱정스럽게 말했다. "아빠, 언제 죽어?" 그나마 고3 아들은 관심이 없는 듯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으려고 알아봤지만, 담당 의사가 바빠서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신촌세브란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차라리 모교인 고대병원에서 하자고 생각했다. 어찌어찌해서 알게된 고대안암병원 원무과장에게 물어봤더니, 이비인후과에 갑상선 수술 잘하는 의사가 있다고 했다. 나이를 찾아보니 나보다 한살 아래였다. 그는 목소리를 내는 '성대'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성악 레슨까지 받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는 수술을 위한 마취가 막 나를 잠재우려 할 때 나에게 말했다. "제가 동생입니다." 동생이 형을 수술하는 마음으로 꼼꼼히 하겠다는 말로 해석됐다. 전신마취에서 깨어나보니 목에 조금 통증이 있었다. 왼쪽 갑상선에 결절이 있었기 때문에 왼쪽만 떼어냈다고 했다.


아무튼 며칠 지나니 수술 자국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수술은 내가 느끼기에 완벽하게 된 것 같았다. 단 하나의 문제는 노래를 못하는 것이었다. 가수도 아니니 별 문제는 아니었으나, 노래방에서 고음을 내려고 하면 소리가 이상하게 왜곡되어 나왔다. 이런 현상이 갑상선 수술의 가장 큰 부작용이다. 그러나 이 부작용은 6개월 정도 지나자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예전처럼 고음도 잘 나오기 시작했다.


갑상선 호르몬은 일단 아파트 보일러같은 역할을 한다. 몸의 체온을 높이며, 단백질 동화를 돕고, 간의 글리코겐 분해를 촉진시키며, 지방질 대사에도 관여한다고 돼 있다. 갑상선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으면, 갑상선 항진증이 된다. 몸이 더워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의사는 갑상선의 왼쪽만 떼어냈는데, 남아있는 오른쪽 갑상선이 계속 호르몬을 정상적으로 생산했다. 따라서 약을 먹을 필요는 없었다. 정기적인 검사에서 항상 정상으로 나왔다. 회사에서는 국제국장이니 보도국장이니 하는 중책을 맡게돼서 피로가 누적됐고, 심지어 점심 저녁으로 임원들과 폭탄주를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가 2012년에 다시 검사를 받게됐다. 나머지 갑상선에도 암이 생겨있었다.


첫번째 수술을 받은 지 4년만에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암 부위가 갑상선과 옆의 조직에 걸쳐있었기 때문에 림프절까지 7개를 떼어내야 했다. 이번에는 사방이 납덩어리로 막힌 작은 방에서 방사성 동위원소를 먹고 2박3일을 보내야 했다. 고대병원에 앞서 방문했던 서울대병원의 외과의사는 갑상선 한쪽에만 암이 있어도 양쪽 모두를 떼어낸다고 했다. 그런데, 다른 병원에서는 암이 있는 한쪽만 떼어내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번에 양쪽을 모두 제거했으면, 더 깨끗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결과론적인 얘기다. 만일 다른 한쪽에 암이 생기지 않았다면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할 필요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도 "남부럽지 않게" 암이라는 걸 걸려봤다. 그리고,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것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 병인지를 체득했다. 지금도 암이 생긴 원인이 담배라고 생각한다. 2003년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할 때 담배를 끊었으나, 그때까지 무려 28년간 하루 한갑씩 담배를 피웠었다. 그 후유증이었을 것이다. 두번째 수술까지 죽어라고 마셔댔던 수많은 폭탄주도 한몫 했을 것이다. 결국, 원인은 술담배였다. 이제는 물론 담배도 안피우고 술도 거의 안마신다.


처음에는 6개월마다, 지금은 10개월마다, 고대안암병원 내과를 방문해, 호르몬제를 처방받는다. 죽을때까지 밟아야 하는 절차가 됐다. 아침마다 공복에 호르몬제를 먹어야 하니까. 그것도 호르몬 수치를 측정해서 그에맞게 호르몬제를 처방받는다. 지금까지 보면, 호르몬 수치는 일정하지 않고, 매년 약간씩 오르내리기 때문에 알약의 양을 조금씩 조정해야 했다.


암 수술을 하고 난 뒤에 건강에 대해 더 민감하게 느끼고 있다. 갑상선이 없으니 이상한 일들도 일어난다. 부작용이라고나 할까. 예컨대, 어느날 오랜만에 중국집에서 수정방이라는 독주를 친구들과 조금 마셨더니, 그날 밤 온몸이 뜨거워서 잠을 자지 못했다. 그 뒤부터 술을 마시면 밤에 몸이 뜨거워지고 잠들기 어려워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갑상선항진의 증상과 비슷했다. 결국, 밤에 잠을 잘 자기 위해 자연스럽게 술을 꺼리게 됐다.

인간이란 그런 동물인가 보다. 암에 걸리기 전까지는 자기가 마치 철인이라도 되는 양 폭탄주를 마셔대고 줄담배를 피워댄다. 그러다가 암에 걸리면 그제서야 "아, 내가 철인이 아니었구나"하며 후회를 한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건강에 조심을 하기 시작한다. 아직 때가 늦지 않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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