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구찜을 먹고
이전보다 여유가 있었던 하루였다. 흔하지 않던 날이라 우리는 점심으로 아구찜을 먹으러 갔다. 특별한 날, 특별식. 평일 오후 여유 있는 6명의 건장한 30대 청년들. 우리는 계획도 없이 도착한 아구찜 음식점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 조금 춥긴 했지만 이외의 다른 메뉴를 택하지 않을 만한 여유가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음식점 앞으로 나온 우리는 낯선 이에게 2만원을 건내 받았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하셨다.
"여기 앞 마트에서 붕어싸만코가 1,200원이거든요? 이걸로 그거 하나씩 먹어요."
느닷없이 물질적 여유까지 생겼다.
누가 태어나서 처음 본 이에게 돈을 받아본 적 있을까. 어렸을 적, 명절날 모르는 어른들에게 용돈을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도 그건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지. 2만원의 수여자는 철저한 남이었다. 또 한번은 지나가다가 거리에 앉아 계신 노숙자 분들께 돈을 건내 본 적이 있다. 그래도 그분은 확실한 결핍의 상태가 드러나 있었으니 그럴 수 있지. 우리는 양복을 입고 풍성하게 아구찜을 먹고 있었다. 볶음밥까지 비벼 먹었다. 아, 또 생각나는 때가 있다. 학창 시절에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서 정류장에 있는 완벽한 타인에게 버스비가 없으니 천원만 달라고 한 적이 있고, 실제로 받아봤었다. 그래도 그건 구걸이라는 실제적 요구를 했으니 받은거지. 우리는 2만원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다.
우리는 그들과 관계가 없었고, 우리는 부족하지 않았고, 우리는 동냥하지 않았다.
낯선 2만원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단 한 가지, 딱 단 한 가지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목회자였다는 사실이다.
우리 옆 테이블에는 60대 쯤 되어 보이시는 여성 두 분이 식사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라 호칭하기엔 뭔가 죄송스럽다.) 우리 옆 테이블에서 식사 하시며 우리가 그렇게 이뻐보인다고 우리가 다 먹고 떠나는 순간까지 총 3번 정도를 말씀하셨다.
"아까 얘기를 들어보니깐, 애가 있는거 같던데 결혼을 한거야?"
"아이고, 다들 너무 이뻐 보여서 계속 눈이 가더라고."
"20대 인가? 다들 나이가 어떻게 되나 몰라?"
조건 없는 애정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우리를 향한 긍정적인 호감이 예수님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말했다.
"저희들이 다 교회 목회자들이에요."
말씀을 듣자마자 두 분은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악수를 청하시며, 자신들도 교회를 다니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분들이 건낸 2만원은 과부의 두 렙돈과 같았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었고, 조건 없이 그저 드리고픈 예배의 마음이었다.
예배는 드리는 것이다.
순수하게 어떤 방법에서든 하나님께 도움이 되고픈 마음.
목회자들에게 힘이 되고 응원이 되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또다른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
2만원을 건낸 후의 미래와 영향력은 보이지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현재의 최선을 드리는 것.
그것이 낯선 2만원이었고,
그것은 예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