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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스푼 Jan 27. 2022

2021 올해의 한자 : 顯

골치 아프게 살았던 일년의 느낌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한자는 猫鼠同處 (묘서동처)다. 정치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일본의 올해의 한자는 金(금)이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서 그렇다고 한다.


나도 해마다 올해의 한자를 뽑는다. 십 수년 넘은 나의 연말 세리머니다.

작년엔 潛(잠)이었다. 사회가 그랬고 개인적으로도 그랬고, 모든 것이 가라앉아 버린 작년을 대표하는 글자라 생각했다.


올해는 顯(현, 드러날 현)을 골랐다.


사회적으로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드러났다고 본다. 그동안 숨어서 세상을 쥐락펴락 했던 사람들이 선출된 정치권력이 아닌 관료권력이라는 것도 드러났고 그들의 먹고사는 방식도 어느 정도 드러났다. 그림자만 보이던 의심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어떤 대선 후보는 처음엔 나쁜 놈으로 보였는데, 지금 보니 이상한 놈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이 세상에 대한 顯의 이유다.


개인적으로는 나와 세상 사이에 안개처럼 자리하던 가식이 많이 사라졌다. 내가 드러나 보이게 되었다. 얼굴은 코로나 마스크로 가렸을지언정 세상에 민낯으로 나선 기분이 들었던 해였다. 도덕, 지식, 능력, 교양, 양심, 재산 등으로 나를 가리고 싶었지만 그런 게 다 쨍한 햇볕에 시나브로 안개 사라지듯 없어지고 나니 그냥 오롯이 나만 드러났다.


그런 나체의 모습에서 나안(裸眼)의 시력을 가진 것은 올해 얻은 가장 큰 보물이다.


내 눈앞의 안개를 두고 나를 가리기 위한 위장막이라 생각했는데 타인도 그 건너에 같이 위장되어 보였던 것이다. 사람을 좀 더 나이브하게 볼 수 있는 시력이 생겼다고 하면 위험한 생각일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사람이 보인다.


어찌 보면 내가 민감해졌을 수도 있다. 예민한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고 예전부터 경계하는 부분이긴 하지만 어느덧 어쩔 수 없이 사람에 대한 예민함이 본능의 영역에 자리하게 된 것 같다. 이것을 어느 정도는 긍정해야 할 것 같다.


선입견을 의심할 상식이 있으면 되고, 거짓을 알아차릴 지식이 있으면 되고, 잘못을 끊어낼 양심이 있으면 된다. 그러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상식과 지식과 양심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드러난(顯) 것 중 하나다. 깊은 지식과 수준 있는 양심은 굳이 스스로를 위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엔 위장되지 않은 순수한 사람이고 싶다. 그렇게 드러남으로 인해 즉, 나의 말과 행동이 현창(顯彰)한 사람으로, 또한 현창(顯彰)한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지내고 싶다.


이와 같은 의미와 바람으로 나는 올해의 한자를 현(顯)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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