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양이 리꼬야, 너를 떠나보낸 지 벌써 4개월이 되어가는구나. 계절은 참 변덕스럽고 천천히 바뀌고 있단다. 푹신하고 포근한 곳보다 딱딱하고 냉기가 도는 바닥을 골라 눕던 너. 그런 네가 내내 더워했을 여름을, 마오와 나는 네가 떠나고 없는 집에서 잘 견디었다. 네 빈자리를 오래 바라보고 느끼고 있자니, 벌써 햇살이 쨍하고 간간히 찬 바람이 코를 스치는 가을이 되었구나. 온몸에 볕을 묻히겠다는 듯 햇볕이 예쁘게 쪼이는 곳을 골라 뒹굴던 너를 종종 떠올린단다.
리꼬야, 나는 여전히 너의 마지막을 떠올리면서 눈을 질끈 감는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모든 것들에 마음 졸이고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그것들에서 너를 봐. 그 높은 곳에서 떨어질 때, 너는 두려워했을까, 너답게 용감한 착지를 계획했을까. 영영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고통의 순간은 찰나였길 내내 빈단다.
딱딱하게 굳어가는 너를 무릎에 놓고 화장터로 향하면서 화면에 띄울 네 사진을 고르다가, 그날이 네가 우리 집에 온 지 딱 1년이 되기 하루 전이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너를 1년도 채 보살피지 못했구나. 어찌나 미안하고 서럽던지.
리꼬야, 리꼬야, 넌 정말 특별한 고양이었다. 범상치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 거야. 호기심은 많고 겁은 없는, 용감하고 영민한 고양이. 너의 그 거침없음에 나는 웃고, 놀라고, 결국엔 많이 울게 됐구나. 네가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 케이지를 열자마자 당차게 첫발을 내딛고 이곳저곳 탐색하는 네가 어찌나 기막히고 귀엽던지. 한참 웃었던 것이 기억난다. 수납장 문을 타고 올라 싱크대 선반에 올라가겠다고 암벽 등반하듯 어깨에 힘을 빡 주던 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너와 함께할 날들이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을 예감했지.
애교가 많고 얌전한 마오와는 참 달랐어. 넓지도 않은 집에서 매일매일 바쁘게 돌아다니던 너. 아픈 뒷다리가 허락하는 높이라면 오르고, 다리가 닿는 곳이라면 뻗고, 입에 물리는 것들은 깨물고 뜯으면서 집안 곳곳을 누비던 말썽꾸러기. 성미에 거슬리면 할퀴고 물던 너였지만, 나는 그런 네가 밉지 않았어. 아끼는 책이며, LP 커버, 이어폰을 물어뜯어 망가뜨렸을 때에도 그런 네가 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단다. 그런 내가 신기하게 느껴질 만큼.
용감한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네가 신기하고 또 소중했어. 너도, 너에게 느끼는 내 감정도 참 귀했다. 자라나는 자식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경험하며 함께 자라나는 부모의 마음처럼, 넓고 둥글게 너를 애정 했단다. 마법 같은 감정이었지. 너를 통해 비로소 나도 진짜 엄마가 될 수 있겠다는 용기를 가졌으니까. 내가 유일하게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는 건, 리꼬 네가 말썽을 부려도 야단치지 않았던 거야. 네가 나를 밀어내며 꾸르릉댈 때에도 아낌없이 애정을 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회사일로 바쁘고, 인간관계에 치일 때에도 너희가 있어서 하루하루 살아갈 힘이 났어. 나 하나 건사하기 벅찬 상황에서도, 너희를 잘 보살피고 싶은 마음은 크고 원대했으니까. 누군가는 듣고 웃겠지만, ‘나 정말 엄마구나’라고 생각했단다. 그 책임감이 무겁기보다 기뻤거든. 그런 기쁨 속에 사는 인간은 강해진다는 걸 배웠어. 세상 모든 엄마들이 강한 것처럼.
리꼬야, 우리 아까운 아가.
네가 내게 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떠날 일도 없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너를 괜히 데려왔다는 생각에 여전히 괴롭지만, 그래도 내게 와주어서 고마웠다고, 너무 행복했다고 말해주고 싶구나. 너의 통통한 발의 감촉도, 깊은 쌍꺼풀도, 꼬릿 꼬릿 고소한 냄새와 꾸르릉 거리던 울음소리도 오래오래 기억할게. 사랑해,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고양이, 우리 리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