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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YOUHERE Feb 28. 2023

품격은 겹에서 드러나는 것

어떤 공간에 가든 내게 감동을 주는 건 그 공간의 화장실이었다. 카페가 아무리 분위기가 좋아도, 술집 안주가 기깔이 나도, 화장실이 형편없으면 정이 뚝 떨어지는 경험. 나만 해본 건 아니잖아?


깔끔히 마감된 화장실 벽, 엉덩이가 착 감기는 변기 시트, 사방으로 튀지 않고 알맞은 양과 모양으로 물을 부드러이 쏟아내는 수전, 물이 질질 새지 않는 세면대와, 쓰자마자 어떤 브랜드인지 알고 싶어지는 핸드워시. 


축축하지 않고 보송한~

찝찝하지 않고 깔끔한~

쩍쩍 갈라진 비누 말고 향긋한 핸드워시

그리고 도톰~한 두 겹, 세 겹 짜리 화장지.


그런 것들이 그 공간을 참 품격 있어 보이게 한다.

그래서 내게 좋은 공간은 화장실로 기억된다.


오늘은 대망의 첫 출근.

별생각 없이 카카오지도를 보고 따라간 곳엔 8층 짜리 새 건물이 있었다. 요즘 지어진 건물답게 입구를 찾기가 어려웠고, 기가 좀 죽었지만 그래도 하얗고 깨끗한 벽이 나를 안심시켰다. 제일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다. 인테리어야 취향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렇다 치고. 깔끔한 변기와 세면대 정도에 만족하려던 찰나에 손끝으로 느껴지던 부드러운 화장지의 감촉. 두 번 감았을 뿐인데 도톰한 두께감을 만들어 내는. 손가락으로 문질러 세어보니 세 겹이었다. 세 겹? 이 전 직장은 한 겹짜리 화장지를 썼다. 휴게소나 지하철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큰 화장지롤 중 얇은 화장지에 속했다. 엠보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런데 세 겹이라니. 감격스러웠다.


1. 물체의 면과 면 또는 선과 선이 포개진 상태. 또는 그러한 상태로 된 것.

2. 비슷한 사물이나 일이 거듭됨.

3. 면과 면 또는 선과 선이 그 수만큼 거듭됨을 나타내는 말


겹겹이 겹쳐진 세 겹 화장지가 날 울렸다. 눈물도 보드랍게 닦아줄 화장지여- 

잘 포개진 것들은 역시 위로와 안정감을 주는구나.

삼겹살보다 오겹살이 맛있듯이... 쩝..


사람도 그러하다는 걸로 몇 자 더 적고 싶지만 월요일을 이겨낸 직장인은 눈도 허리도 손가락도 뻑뻑하다. 

겹2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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