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난한 집에 원치 않게 낳아졌다.
어머니는 외할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만에서 오셨다.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정확히 모르셨지만 태생이 낙천적인 성격이었던 탓에 큰 걱정이 없으셨던 거 같다. 영어를 잘하는 아버지의 믿음직스러운 모습도 어머니의 태평함에 한몫을 더했다. 대만에서 한 번, 한국에서 한 번. 부모님은 1년 간의 연애 후 결혼했다.
딸이 타국으로 떠나는 게 싫었던 외할머니는 끝내 어머니의 결혼식에 오시지 않았지만 외할아버지는 오셨다. 낯선 땅에 오셔서 딸이 살게 될 집을 둘러보셨다. 보증금 100만 원에 지저분한 작은 방 하나와 그보다 더 작은 방이 있는 이상한 구조의 집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다. 결혼식 전 날 밤,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내일 결혼하지 마라. 대만으로 돌아가자'. 효심 깊은 어머니는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눈물을 수십 번 삼켜야 했다.
오십 대에 어머니를 가지셔서 팔십이 넘으신 외할아버지는 깊은 눈을 가지신 분이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동네 공원으로 산책을 가셨는데, '외할머니를 지키기 위해'라 말하시던 다정한 분이셨다. 그분은 결혼식에서 딸의 손을 믿음직스럽지 않던 사위에게 넘겨야만 했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한없이 고통스러웠던 30년이 다가왔다.
아버지는 일을 자주 관두셨다. 어머니는 늘 퇴사를 통보하는 아버지에게 당혹감을 느꼈다. 아무것도 모른 채 해맑게 웃고 서럽게 우는 자식들의 분유 값, 이달 전기 값을 걱정하는 사람은 본인뿐이란 사실이 힘들었을 터. 매달 가지고 오는 100만 원은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적을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큰 누나의 집으로 도망쳤다. 흡연사실도 결혼 전에 몰랐다. 집은 노후화가 심해서 비 오는 날엔 천장에서 물이 샜고 겨울에는 물이 얼었다. 전기세 미납일이 길어지자 한겨울에 보일러도 틀지 못했다. 불러온 배를 이불로 덮었다. 어머니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었고 점점 힘이 빠졌지만 자식의 손을 꽉 잡았다.
딸과 아들, 아버지의 자식 계획은 여기까지였던 거 같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친정으로 갔던 어머니의 전화가. 또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은 무직인 아버지에게 청천벽력이었다. 못하는 술에 잔뜩 취해서 집으로 돌아온 날, 아버지는 선택적 낙태를 권했다. 어머니는 신이 주신 생명을 저버리길 완강히 거부했다. 아버지는 출산일에 병원을 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창이 하는 동네 영어학원에 임시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가난한데 아이만 낳는다고 친구에게 구박받을까 봐 아내의 임신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어머니에겐 그토록 자주 하던 거짓말도 나오지 않았던 거 같다. 외국인인 엄마는 혼자서 나를 낳았고 아버지는 3일 후 퇴원할 때까지 병원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원치 않게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