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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이투케이 Mar 13. 2024

첫 아이를 만나는 순간

나는 내 삶이 완성되었다 느꼈다.  

아이를 가지면 호르몬 때문인지 몰라도 불안감이 높아진다. 원래도 불안수치가 높은 나는 첫 아이를 가지고 알 수 없는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곤 했다. "혹시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면 어쩌지. 누구는 미국에서 아이를 낳다고 사망했다던데... 아픈 아이를 낳으면 어쩌지. 아픈걸 초음파나 검사로 알지 못하고 낳아서 갑자기 알게 되면 어쩌지. 내가 잘 보살펴 줄 수 있을까. 아픈 아이는 얼마나 힘들까. 한국 산부인과 어디에선 신생아들이 집단 감염으로 난리라던데 그린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 아이는 역아로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온갖 노력에도 끝끝내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나는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했다. 나 말고도 수술이 여러 차례 잡혀있던 담당의는 오전에 응급수술도 몇 차례나 더 한 채, 예정보다 30분 지난 후에 나는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전에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더랬다. 수술실이 얼마나 추운지를.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면서 간호사의 부축을 받으며 뒤뚱거리며 수술실에 누웠다. 의료진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과 그 얼음 같았던 수술실의 온도와, 굽히기 힘든 몸을 새우등처럼 굽혀 맞은 마취약이 몸을 도는데 느꼈던 어깨통증... 그 모든 게 참말로 현실적이지 않고 인간적이지 않았다. 나는 나와 남편의 피가 섞인 또 다른 작은 인간을 만나기 위해 차가운 병원에서 아무 말 없이 누워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눈을 감은채 빼곡히 난 까만 머리에 말랑하고 긴 손톱에, 등이고 팔이고 보송보송 털 많은 빨간 원숭이 같은 내 첫 아이를 만났다. 마취가 깨기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드디어 회복실에 옮기고 아이를 안았을 때 내가 든 첫 생각은 "아 내가 이 아이를 만나려고 세상에 왔구나. 이제 되었다. 내 인생은 이 아이로 완성되었다." 그전부터 하기 싫은 공부를 하면서, 학창 시절, 대학에 대학원에...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참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언제쯤 내 "진짜" 인생이 시작될까? 그전에 죽어버리면 어떡하지?"라는 딱한 물음표를 달고 살았었다. 그런데 3kg도 안 되는 정말로 작은 그 아이를 품으며 나는 갑. 자. 기. 그런 걱정 따위는 이제 없는 거라, 후회 없이 살았노라 확신하게 되었다.


그 어마어마한 행복감과 함께, 출산 후 일주일 정도는 Baby Blue로 알 수 없는 슬픔과 우울감을 함께 느꼈었다. 너무너무도 행복한데 너무너무도 맨날 가슴이 찢어지게 슬프고 눈물이 났다. 평생 처음 느끼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너무너무 행복했던 시간도 너무너무 처량하던 시간도 지났다.


3kg도 안 된 작은 아이는, 여전히 또래보다는 한참을 작지만, 눈빛이 반짝반짝하고 잘 울고 잘 웃는, 감정에 솔직한, 여리고 따듯한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라고 있다. 그 아이의 여섯 번째 생일이 얼마 전 지났다. 이제는 정말 아기티도 벗었고, 영어도 한국어도 잘하는, 숫자에 관심 많고 정글짐도 무척이나 잘하는 똘똘하고 쾌활한 어린이가 되었다. 처음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던 아줌마 대학원생 언니가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우리 아이들을 낳은 일이야"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나도 이제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뼛속 깊이 공감한다. 나의 첫사랑이자 자랑이 된 큰 아이. 나는 우리 큰 아이와 함께 나는 다시 태어났고 다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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