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평]전하고 싶은 마음을 글로

영화 <윤희에게> (2019)

by 아름

<윤희에게>

감독 :임대형


빈 종이에 펜을 쥐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글을 쓴 적은 언제일까. 나는 가끔 문방구를 찾아가 마음에 드는 편지지를 사 와 책상에 앉아 펜을 쥔다. 그렇게 쥐어진 펜은 때론 사랑을 때론 고마움을 때론 미안함을 평소에 전화나 이야기로 하지 못한 이야기를 끄적인다. 그렇게 끄적인 글은 빨간 우체통을 통해 보내질 때도 있고 직접 전달을 할 때도 있다. 편지는 누군가의 소중한 마음을 전한다. 전해지지 않아도 되는 편지가 있을까.


눈이 내리는 지역 오타루에서 한국의 한 가정집으로 편지가 도착한다. 원래라면 전해지지 않았을 편지다. 당사자는 보내지 않을 편지였다. 쥰의 고모는 주소까지 쓰인 편지 한 통을 쥰의 책상에서 발견하고 그것을 우체통에 집어넣는다. 고모는 알고 있었다. 그 편지가 쥰을 통해 직접 전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편지는 윤희의 딸 새봄이 먼저 발견하고 내용을 읽는다. 편지 한 통이 그동안 멈춰있던 시간의 톱니바퀴를 굴려준다.


쥰과 윤희는 어린 시절 서로 사랑한 사이였다. 하지만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좋지 않았다. 그렇게 헤어진 두 사람은 만나지도 연락을 주고받지도 못하고 살았다. 동성애를 정신병으로 바라보는 사회 속에서 받았을 그들의 고통은 어린 소녀들이 견디기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힘들고 괴로운 순간에도 그들은 서로를 그리워했다. 20년의 시간 동안.

영화 <윤희에게> (2019) 과거 앨범을 보는 윤희 스틸컷

윤희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원치 않은 결혼을 했다. 어느 한쪽도 행복하지 않은 결혼. 딸까지 낳았으나 윤희는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고, 남편은 사랑받지 못했다. 모두가 외로운 결혼 생활이었다. 일본으로 간 쥰은 자신이 혼혈인이라는 편견과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부했다. 수의사가 되어 결혼하지 않고 ‘감당하지 못할 고통’을 감추며 살아갔다. 둘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갔다. 마음의 공허함을 가지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서로의 소식도 전하지 않은 채.


전해지지 않아도 되는 편지는 없다. 영화의 서두에 쥰의 편지를 몰래 보내는 쥰의 고모의 모습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생활 침해, 오지랖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착한 쥰의 편지를 당사자인 윤희보다 먼저 읽는 딸 새봄의 모습 또한 마음에 걸렸다. 왜지? 아무리 호기심이라도 읽을 수 있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화의 시작과 끝이 편지로 시작하여 편지로 끝나는 내레이션을 들으며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 ‘편지’는 매우 중요한 매개체이다. 윤희가 일본 오타루로 여행을 가는 행동의 적극성을 가지게 하며 결국 쥰과 윤희가 만나게 되기까지의 변화의 계기가 된다.

영화 <윤희에게> (2019) 쥰과 윤희의 재회 스틸컷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보면 이런 대사가 있다. “모든 편지마다 형태는 달라도 모두 사랑이 깃들어 있다”, “전해지지 않는 편지 같은 건 없다” 편지는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매체이다. 글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지 그 편지에는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그 마음이 사랑이다. 윤희와 쥰의 편지는 단순한 친구의 편지가 아니라 첫사랑을 향한 편지이다. 그럼 더더욱 전달되어야 한다. 직접 어쩌면 쥰의 고모와 새봄은 두 사람의 만남이라는 편지를 전달해준 우편배달부가 아닐까.


우리는 가끔은 말이 아닌 글로 상대에게 글을 전할 필요가 있다. 편지는 글을 쓰는 당사자가 펜을 쥐었다, 썼다, 놓았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오랜 시간에 걸려 쓰여진다. 상대에게 나의 마음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편지를 받는 사람은 편지를 쓴 사람이 얼마나 고민하며 썼을지 알기에 그 편지가 더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손안에 작은 기계로 시답지 않은 말과 글자를 적어 보내는 것보다.


전해지지 않아도 되는 편지는 없다. 영화 말미에 윤희는 쥰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을지 고민이 되고 자신도 용기를 가지고 싶다고 한다. 그 용기의 첫 발을 보여주듯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가는 윤희의 모습은 마치 편지를 들고 우체통 앞에 서있는 것 같이 보인다. 그녀의 첫 용기이다. 언젠가 그녀의 편지가 쥰에게 전해지지 않을까.


단순한 종이 위 글자일지도 모르는 편지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편지로 시작해 편지로 마무리하여 윤희라는 한 인물의 변화를 보여줄 만큼. 어색하겠지만 우리도 편지를 써보자. 그 편지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더라도 그 편지가 변화시킬 당신과 당신의 편지를 받은 사람을 위해 당신의 사랑을 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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