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방학이나 명절 때 집에 오게 되면 몇 가지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다. 매 끼 챙겨줘야 하는 밥도 돌아갈 때 두 손 가득 쥐어 줄 먹거리 장만도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건 그저 단순한 육체 노동일뿐이다. 정말 피곤한 건 정신노동이다. 그렇다고 뭐 우리 애가 까칠하거나 별 난 아이는 결코 아니다. 내 새끼라서가 아니라 순하고 다정하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아이다. 물론 그게 가족이 아닌 본인의 지인들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남편은 감정의 동요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가끔 싫은 것에 대해서는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만 좋은 것, 감사한 것에 대해서는 표현을 지나치게 아끼는 편이다. 아니, 아예 안 한다. 나를 비롯한 아이들에게도 이제껏 따뜻한 말 한마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으며 그런 걸 하는 자체도 질색을 한다. 부인 눈치를 살펴야 하는 나이가 되다 보니 마지못해 조금씩 노력하는 게 보이긴 하지만 시원찮다. 거기에다 그의 입은 의사소통을 위한 수단보단 음식물 섭취를 위한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남편과 단 둘이 집에 있게 되면 하루 종일 정말 몇 마디 나누지 않는다. 같이 있는 자체가 참 곤욕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본인은 그런 표현을 극도로 싫어하겠지만 딸아이 역시 지 아빠랑 비슷한 성격이다. 그 또래의 수다스러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물론 나와 같이 있음 조잘조잘 말도 잘하고 그 나이대의 여느 여자 아이 같지만 옆에 아빠나 오빠가 있음 상황이 달라진다. 묻는 말에만 단답형으로 답할 뿐 대화에 끼지도 않고 같이 자리하는 걸 어색해한다. 그래도 그동안 5살 터울의 성격 좋은 오빠 덕에 남매 사이에는 별 탈이 없었다. 오빠가 동생의 까칠함을 대부분 포용해졌다. 큰애가 고2 때까지만 해도 동생과 나란히 누워 장난칠 만큼 사이가 좋았다. 문제는 딸아이의 이른 사춘기와 오빠의 고3 수험생 시기가 겹치면서 시작되었다.
딸아이는 자신을 놀리는 듯한 오빠의 장난기 섞인 말이 싫었고 아들은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만한 여유가 당시엔 없었다. 나 역시 초짜 수험생 학부모 역할에 허덕였던지라 둘 사이의 그 냉랭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한참이 지나서야 서로에게 입을 닫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둘 다 함부로 건드릴 수 없던 시기라 나도 그저 방관만 할 뿐 그저 모두의 마음이 좀 더 여유로워질 때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관계를 회복할 시간도 없이 아들은 대학이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되었고 둘 사이는 그냥 그렇게 고착화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아들이 집에 오면 그 모든 접대는 내가 해야 된다. 간만에 집이라고 왔는데 환영받지 못한다는 서운함이 생겨서는 안 된다. 밥 먹을 때 나와 아들이 떠들지 않으면 그야말로 고요 속에 수저 달그닥 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언제부턴가 아들이 손님처럼 느껴진다. 손님이 식사하는 내내 어색해하지 않게 대화에 신경을 쓰다 보면 밥이 목구멍으로 제대로 넘어가는지조차 모르게 된다. 끊임없이 숟가락질만 하지만 뚫린 귓구멍이라 아무런 노력 없이 나와 아이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는 남편이 그저 얄밉기만 하다.
식사 후 소파에 나란히 앉아 얘기를 이어가는 것도 나의 역할이다. 물론 자식이 하는 얘기라 즐겁게 듣긴 하지만 이럴 때 남편이나 딸애가 좀 거들어졌음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의 짙은 눈썹도 날렵하게 다듬어 주고 꽉 막힌 귀지도 파주고 때때로 손발톱도 깎아주며 그동안 어디 상한 곳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본다. 그렇게 자식과 어미와의 유대관계를 이어가러 혼자 애쓴다. 이번 추석처럼 친구들마저 거의 군대에 간 상황이라면 내가 애써야 하는 부분이 더 늘어 난다. 하지만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은 아들만이 아니다. 딸아이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딸아이의 시험기간이다. 아이는 시험기간엔 극도로 예민해진다. 이때는 식욕이 떨어져 식사량도 평소의 절반밖에 안 되며 말수 또한 더 줄어든다.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묵묵히 공부만 할 뿐이다. 성적은 항상 최상이다. 이럴 땐 나도 분위기 봐가며 조용히 지내야 한다. 아이가 필요한 게 있으면 눈치껏 미리미리 챙겨줘 가며 충실한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번에 아들이 집에 오니 상황이 여의치 않다.
아들의 방은 그동안 남편이 점령하여 이젠 거의 남편 방이 되었다. 게다가 야근을 해야 하는 남편은 낮에 잠을 자 둬야 하므로 아들은 자기 방인 듯 아빠방이 된 곳에서 나와 그저 거실을 맴돌 뿐이다. 사실 이점이 아들에게 제일 미안하다. 하지만 추석 연휴 동안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딸아이도 집에 있다. 나와 남편이야 원래 조용히 있지만 오래간만에 집에 온 아들에게까지 침묵을 강요할 순 없다. 아들이 집에 온 첫날 딸아이를 난생처음으로 독서실이란 곳에 보냈다. 그곳에서 늦은 밤까지 공부할 거란 딸아이는 그러나 저녁이 되자 모든 짐을 싸가지고 철수해 왔다.
"엄마, 독서실에서 공부 못하겠어. 너무 어둡고 갑갑하고 코도 함부로 못 풀겠고"
결국 그다음 날부터 내가 아들과 함께 밖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슬슬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체력도 안되고 나 역시 그 무섭다는 갱년기 증상을 보이고 있는데 항상 누굴 챙겨줘야 함이 너무 피곤하다. 그래도 내 새끼들이니깐 남아 있는 힘을 쥐어짜라 가며 애써고 있는 중이다. 이럴 땐 남편을 탓하는 게 제일 속 시원하다. 무심한 남편, 사랑을 줄 주도 받을 주도 모르는 남편...
그러나 남편만 탓하기에는 사실 알고 보면 그 역시 불쌍한 사람이다. 남편의 역할, 아빠의 역할이 뭔지도 모르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나이에 떠밀려 결혼했을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래도 난들... 난들 제대로 된 엄마나 부인의 역할을 배워서 하냐고. 문제는 남편은 그 모든 걸 귀찮아하고 나에게 다 미룬다. 오직 돈에 관련된 것만 눈에 불을 켜고 본인이 다 알아서 하려 한다. 어쩜 그리 시아버지와 똑같은지.
'제발 나에게 애들 얘기 좀 묻지 말고 직접 물어봐라고. 애들은 원래 엄마랑 더 친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릴 지껄이지 말고 노력이란 걸 좀 해라고. 어디서 내가 차린 밥상에 자꾸 숟가락을 슬쩍 올리려고만 하고 있어'
남편을 향한 분노를 이렇게 속으로나마 외치고 나면 속이 좀 시원해진다. 아니, 더 나아가 직접 구박까지 하고 나면 통쾌함마저 느껴진다.
다행히 아들은 지 아빠를 닮지 않았다. 아마 결혼하면 따스하고 재밌는 가정을 이루고 살 것이 확실하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가 빗자루 몽둥이를 들고 때려가면서 야단 칠 것이다. 이놈아, 누구 귀한 집 딸자식 마음고생시키려고 결혼했냐고. 문제는 아이가 결혼 후 식구들을 이끌고 집에 오게 되면 그때가 골치 아프다. 아이에게 미리 선수를 쳤다. 결혼해서 명절에 애써 집에 오려하지 말라고. 차라리 엄마, 아빠가 잠시 너희 집에 다녀갈게 하고. 근데 이놈이 지 부인 고생할까 봐 절대 오지 마란다. 자기네가 잠깐 다니러 온단다. 그래, 다들 그렇게 나만의 희생을 원하는구나. 지 아빠하고 다르긴 뭐가 달라. 똑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