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귀경 풍경(1)

by 코니

자취를 하고 있는 아들이 추석이라고 집에 왔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그리 막히지 않았나 보다. 평소보다 한 시간 가량만 더 지체되었을 뿐이다. 말이 그렇지 그래도 4시간 반이다. 잠이 많은 아이라 아마 버스 안에서 푹 숙면을 취했을 거다. 듣자 하니 그러려고 지난밤을 꼬박 세운 모양이다. 어느새 대학 3학년이 된 아이는 지방의 한 교대에 재학 중이다. 사실 아이를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앞선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날 하필 그날 오후 2시에 대학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아이에게 그동안 애썼다고 토닥여주며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해야 하는데 뒤숭숭한 마음에 제대로이지 못했다. 지금도 사진 속 내 얼굴을 보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는 근심이 한가득이다. 게다가 합격의 기쁨도 잠시, 불행하게도 코로나의 시작과 아이의 대학 새내기 시절이 딱 맞물리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안타깝게 여기는 바로 코로나 학번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대학생이 되기만을 참고 견뎠을 아이는 11월이 되어서야 겨우 한 달이란 기간 동안만 대면 수업을 할 수 있었다. 그 짧디 짧은 신입생의 상큼한 맛을 본 후 아이는 겨울 방학 내내 더 갑갑해했다. 생긴 것은 꼭 범생이처럼 생겼지만 지 속에 얼마나 많은 끼와 흥이 넘치는 아이인데 그 답답함이 오죽했을까 싶다. 하지만 아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몇 년 만에 아이와 집에 오랫동안 같이 지내다 보니 고3 학부모 때 못지않은 화병이 생기게 되었다.




실시간 비대면 수업이 거의 없는 탓에 밤낮이 완전히 바뀌는 생활이 이어졌다. 밤에는 친구들과 온라인 게임을 한다고 온 집이 떠나가라 시끄럽게 떠들어 됐다. 그러고는 이른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든 후 다음날 점심때 밥 먹어라 깨우면 그제야 겨우 일어났다. 그동안 공부에집중하라고 집안일을 안 시켰더니 버릇이 된 건지 일부러 외면하는 건지 날 좀 도와주기는커녕 자기 방 청소 하나 하지 않았다. 억지로 시키면 마지못해 하긴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다. 나 역시 수험생도 아닌 다 큰 아들의 방을 청소해줄 의향은 전혀 없었다. 결국 그 마구간 같은 방을 보고 있음 속에서 열불이 나 아이의 방앞을 지나칠 때면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어떻게 게을려도 저렇게 게으를 수 있는지.




처음엔 그토록 바라던 교대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 모든 걸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않게 우리의 동거 기간이 점점 길어지자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놈은 집을 그저 하숙집으로 생각할 뿐이었고 나는 하숙집 이모였다.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같이 지내면 심상치 않을 사달이 일어날 때쯤 아이는 학교가 있는 곳으로 자취방을 구해 떠났다. 그게 작년 5월의 이야기이다. 아이가 피난 가듯 한 차 가득 짐을 싣고 남편과 함께 집을 떠나는 순간 두 손이 저절로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졌다. 정말 독립 만세였다. 그렇게 진저리 칠만큼 친 상태에서 서로에게 작별을 고했기에 아이가 한 번씩 집에 온다면 반가운 마음 한편 그렇지 못한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다. 남편은 아이가 집에 온다는데 부모가 왜 그러냐고 하지만 그런 소릴 하는 남편이 더 얄미울 뿐이다.




다른 엄마들과 달리 밑반찬이나 갖은 먹거리들을 아이의 자취방에 택배로 보내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그게 싫고 귀찮아 기숙사 생활을 하길 원했고 아이는 속박이 싫다며 자취방을 구해 달라했다. 이제껏 다른 어느 엄마들보다 더 많이 나 자신을 희생해가며 그놈을 대학에 합격시켰다 자부한다. 더 이상의 간섭과 희생은 아이와 나 둘 모두에게 해롭다. 결국 아이가 원하는 대로 자취방을 구해주고 대신 혼자 알아서 해 먹어라고 간단한 반찬이나 국, 찌개 만드는 법을 가르쳐 보냈다. 그리고 생활비로 매달 딱 50만 원씩 보낸다. 물가가 요즘처럼 아무리 올라도 인상 같은 건 없다. 아이들에게 결핍의 삶도 느끼게 해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연세를 지불했기에 거주 비용은 따로 들지 않지만 빡빡한 생활비로 매번 사 먹을 순 없다. 덕분에 그 게으른 놈이 음식을 제법 하게 되었다.






평소 그냥 귀찮아도 참고하던 일들이 요즘따라 더더욱 하기 싫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게 장을 보고 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간만에 집에 오는 아이를 위해 그동안 먹고 싶었을 엄마표 음식들을 해서 먹여야 하며 그걸 준비하기 위해 또 끊임없이 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처럼 명절과 겹치면 명절 음식과 함께 아이를 위한 먹거리도 함께 장을 봐서 준비해야 하므로 그 피곤함을 곱절이 된다. 여느 때 같으면 별 부담 없이 사는 것들도 명절 앞이라 모두 비싸져 맘껏 준비하지도 못한다. 도움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남편은 그리 활용도가 높지 않다.




아이가 집에서 먹을 끼니의 횟수를 계산해보며 식단을 미리 짜 놓아야 한다. 이럴 땐 냉동실이 큰 냉장고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모든 건 미리 사서 냉동해 둬야 한다. 가격과 상관없이 필요한 걸 그때그때 사서 요리하면 냉장고가 그리 복잡해질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리 넉넉지 못한 이들은 싸고 좋은 게 있을 때 미리 사서 냉동실에 쌓아 두어야 한다. 엄마표 감자탕이 먹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좋은 등뼈가 보이자마자 바로 사서 냉동시켜 두었다. 커다란 빨간 새우구이도 아이가 좋아하는 메뉴다. 지하철을 타고 가 크고 싱싱한 걸로 가격이 오르기 전에 미리 넉넉히 사두었다. 소고기는 마트 할인 행사 때를 기다렸다 구매한 뒤 양념하여 잡채와 전골용으로 장만해둔다. 돼지고기 역시 행사 때 사서 오향장육용과 두루치기용으로 준비한다. 식구들이 껍질이 붙어 있는 약간 도톰한 두께의 두루치기를 좋아하기에 수육용을 사서 적당한 두께로 직접 썰어야 한다. 손이 많이 가는 함박 스테이크도 오랜만에 가족들에게 맛 보여줄 요량으로 재료를 준비하여 냉동시켜둔다. 그리고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민어구이와 탕국을 위한 재료들도 빠짐없이 모두 냉동실 속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택배로 먹거리들을 보내진 않아도 아이가 자취방으로 돌아갈 때 빈 손으론 보낼 수 없다. 고기류는 모두 한 번씩 먹기 좋게 소분해서 냉동시켜야 한다. 2주 전 잠시 집에 들렀을 때 배추를 2포기나 사서 김치를 담아줬는데 너무 맛있게 잘 먹었다 했다. 이번에도 좀 담아주려고 했지만 마트에서 배추 가격을 확인하는 순간 그대로 배추를 내려놓아야 했다. 대신 무 말랭이 김치를 해달라고 해서 준비해두었다. 갖은 해산물을 불에 구운 후 티백에 종류별로 넣어 육수용 티백도 만들었다. 냉동실에 보관해서 두었다 필요할 때 꺼내 쓰면 아마 용이하게 잘 쓸 것이다.




이 모든 걸 준비를 해놨으면 이제 아들을 위한 요리만 하면 된다. 하지만 추석 음식이 더 급하다. 전과 튀김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자기 몫도 좀 챙겨달라고 하니 평소보다 더 많이 해야 된다. 작년까지 나의 특급 조수였던 딸애가 시험공부한다고 독서실로 향한 탓에 새로이 조수를 채용해야 한다. 며칠 전부터 왼쪽 팔꿈치통증이 있어 약을 먹고 추이를 살피는 중이다. 절대 무리하면 안 되기에 아쉬운 나마 남편에게 모든 튀기는 과정을 위임하고 나는 옆에서 그냥 보조를 한다. 아이에겐 꼬지의 총책임을 맡긴다. 두 남자 덕분에 그래도 추석 음식 준비는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집에 있는 동안 내가 차려 주는 밥을 맛있게 먹었다. 본인 말에 의하면 배 고플 틈조차 없었다 한다. 하지만 그래 봤자 겨우 하루 두 끼다. 여전히 아침은 잠 때문에 건너뛰고 점심은 깨워서 눈뜨자마자 먹기에 얼마 먹지도 못한다. 그나마 저녁에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기에 저녁 밥상에 공을 많이 들였다. 옆에서 가만 보면 남편이 더 열심히 잘 먹는 것 같다. 아이 덕에 매끼 밥상이 다채롭고 풍성하니 제일 신났다. 언제나처럼 말 한마디 없이 그저 본인의 욕구만 충족시키기 바쁘다. 식사 중 아이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오롯이 내 몫이다. 이러니 아이가 오면 남편은 좋고 나만 힘들어하지. 나중에 아들이 결혼해서 며느리까지 오면 그 어색한 밥상 분위기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될지 참으로 고민스럽다.






아이가 다시 집을 떠나는 순간 두 손엔 먹거리가 가득이다. 이렇게 보내면 아마 몇 달은 잘 먹을 수 있을 게다. 엘리베이터를 함께 기다리며 아이가 내게 말한다.

"엄마, 내년 추석엔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임용 시험이 얼마 안 남을 건데"

기다리던 반가운 소리다. 재빨리 아이의 말을 거든다.

"오지 마, 오지 마. 그냥 공부해. 뭐하려 오려고. 임용 시험이 더 중요하지"

아이가 엘리베이터에 타자 문이 닫힐 때까지 너무나 환한 미소를 띠며 열심히 손을 흔든다. 집으로 들어서는 내 발걸음이 어찌 이리 가벼울까. 결코 아들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다. 그건 아마 며칠 동안 주어진 내 역할을 충실히 잘한데 대한 스스로의 만족 때문 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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