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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Jun 28. 2024

1억을 놓쳤단다

수업의 첫날이다. 언제나 그렇듯 그림을 배우는 수업은 인기가 많다. 수채화, 유화, 펜드로잉, 어반 스케치 등등 모든 수업은 일찍 감치 정원이 찬다. 이번처럼 지자체에서 무료로 진행하는 수업은 수강 신청 자체도 경쟁이 치열하다. 빈자리를 찾아 앉은 후 주위를 둘러보니 역시 나이 지긋한 분들이 반 이상이다. 이제 겨우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길 때쯤 외면하고 있던 숨은 열정이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함을 느낀다. 어쩜 이 수업이 그들에게 3, 40년 혹은 50년 만에 다시 붓을 기회가 될련 지도 모른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탓에 무지에서 오는 용기일 수도 있지만 사실 난 예술을 그리 거창한 거라 여기지 않는다. 우리 일상 곳곳에 예술이 존재하지 않는 없다. 마음먹기에 따라 누구나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다. 돈과 시간을 따로 들이지 않더라도 예술을 감상하거나 즐길 수 있고 심지어 내 두 손으로 직접 행할 수도 있다. 단지 관심이 없거나 용기가 없거나 귀찮을 뿐이지.



극소수를 제외하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지만 마치 대단한 작가라도 되는 양 깊은 고뇌에 빠져 브런치에 글을 쓴다. 읽기 어려운 악보지만 천천히 피아노 건반을 짚어가며 익숙한 멜로디를 만든 후 혼자 뿌듯해한다. 아울러 라디오를 항상 클래식 채널에 고정시켜 놓고, 잘하든 못하든 흰 종이 위에 색을 더해 무언가를 나타내고, 내 취향에 맞게끔 집과 식탁 위를 가꾸는 이 모든 게 일상에서 가능한 나의 예술 활동이다. 각자의 형편에 맞게끔 예술가가 되기 위해 이 수업에 참여하신 나이 지긋한 모든 분들께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한다.



수강 신청을 하긴 했건만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 어제까지 수강 취소를 고민했다. 내가 사는 곳은 평생학습센터가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잘 활성화되어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성되어 있는 건 물론이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아님 무료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얻어지는 건 이 세상에서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몇 가지 수업을 들은 후 깨달은 인데 이런 무료로 진행되는 수업에 큰 기대를 걸면 안 된다. 강사의 능력과 상관없이 딱 지자체에서 주는 시급만큼만 수업에 임하므로 언제나 왕 초보를 위한 수업일뿐이다.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신청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집에서 혼자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 나를 옭아맬 것도 반드시 해야 할 이유도 없다 보니 조금만 피곤하거나 바빠지면 나름의 합법적인 핑계를 찾아 둘러댄다. 게다가 나이 들어 무언가를 배우게 되면 진득함대신 조급함이 앞서 기본기 습득에 어려움을 겪는다. 중요하다는 건 잘 알지만 다소 지루한 그 시간들을 견뎌내지 못하고 분수도 모른 채 본론으로 직진한다. 결국 기본기가 없는 탓에 한동안 붓을 놓았다 들게 되면 이 하얀 종이를 어떻게 채워 나가야 할지 매번 막막해진다. 손과 머리 그리고 식어버린 열정을 예열시키기 위해 또다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나마 이런 수업에라도 참가하게 되면 그 과정들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수업을 신청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달리 사회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소속된 단체도 없다 보니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알게 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게다가 오래된 인연이라 할지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그 관계가 빛을 바라거나 혹은 끊어지기도 한다. 물론 이런 수업들은 단기간에 마무리되기에 어떤 관계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새로운 이들과 공통된 소재로 대화를 이어가는 건 반복되는 일상에 양념과도 같은 일이다. 또 혹시 모른다. 귀한 인연을 만나게 될지. 그래서 수업에 참석할 때면 주위에 자리한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와 말을 건네는 편이다.



옆에 앉은 이와 눈이 마주치자 습관처럼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마지못해 인사를 받아주는 그녀의 표정은 어딘지 그리 달가워 보이지 않는다. 다음부턴 이 사람 옆 자리는 피해서 앉아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고개가 갸웃해지는 게 어딘가 낯이 익다. 하지만 상대의 냉랭한 태도에 살짝 빈정이 상해 흐릿한 인연은 그냥 덮어 버린다. 게다가 나보다 10살 이상은 훨씬 많아 보이니 어차피 그리 가까워질 일도 없다. 그러나 잠시 후 의도치 않게 또다시 눈이 마주치게 되자 흐릿한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한다.



"혹시 OO아파트에 사시지 않나요?"

"네? 전에 살긴 살았는지만 지금은 이사했는데..."

"혹시 그곳에 사실 때 처음 2년은 전세로 지내지 않았어요?"

"네, 그랬어요"

역시...



20년 전이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무렵 겁도 없이 남들이 다한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생애 첫 부동산 투자에 뛰어들었다. 지금과 달리 당시는 3 주택까지 1 주택과 동일한 양도세가 주어졌다. 게다가 아파트 분양권을 샀기에 그리 큰 투자비용도 들지 않았고 분양사에서 입주 때까지 무이자로 중도금 대출도 다 해줬다. 하지만 나 같은 얼간이도 투자를 한다고 설칠 때쯤이면 이미 부동산 경기는 터지지 일보 직전이다. 결국 정부에서 과열된 부동산을 진정시키기 위해 갑자기 정책을 바꾸었고 모든 부동산 경기는 그야말로 꽁꽁 얼어버렸다.



그때부터 나의 수난시대는 시작되었다. 남편의 허락하에 주도한 것이었으나 최종적으로 내가 계약하고 샀기에 모든 책임은 나에게 주어졌다. 둘째를 임신 중임에도 태교 따위엔 전혀 신경 쓸 여력조차 없었다. 남편은 대놓고 뭐라 하진 않았지만 나를 향한 차가운 시선과 침묵은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단돈 천원도 함부로 쓰지 않는 짠돌이기에 그 속이 어떠할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아파트는 점점 높이 올라가고 입주도 곧 다가올 때쯤 정말 그야말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한밤중에 부른 배를 안고 거실로 나와 달을 보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다. 당시는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웠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웃픈 블랙 코미디 같은 장면이다.



결국 입주 시점이 와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자 남편과 상의하여 전세를 놓기로 했다. 전세금 받은 것과 박박 긁어모은 통장 잔고 그리고 시댁에서 일부를 빌려 잔금을 치렀고 2년이 지나 그 집을 다시 세입자에게 팔았다. 사실 그땐 난 팔고 싶은 맘이 전혀 없었다. 뭔가 묘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시점이었다. 얼어붙었던 부동산 경기가 서서히 녹기 시작하여 손실액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2년만 더 전세를 내놓으면 이익까지는 몰라도 본전은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남편은 완고했다.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데 앞으로 또 무슨 가격이 오를 거냐며 당장 팔라고 했다. 지은 죄가 있기에 더 이상 아무 소리 못하고 그의 말을 따랐다. 총 손실 금액은 2천만 원이었다.



"그때 제가 그 집주인이었어요"

"네? 살이 왜 그리 많이 빠졌어요? 너무 많이 빠져 못 알아봤네"

당시 둘째 임신과 출산으로 지금보다 20k 이상 더 많이 나갔었기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진 그녀의 말이 내 뒷덜미를 잡는다. 아니 망치로 세게 내리친다.

"그 집 사고 1년쯤 있다가 팔아서 1억 조금 넘게 벌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어요"



들어 좋을 것 하나 없는, 묻지도 않은 소릴 들은 후 두 눈이 저절로 동그래진다. 분양권을 사고 전세를 놓은 총 5년 동안 그 아파트 때문에 얼마나 많은 맘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남편 눈치만 보며 그저 숨죽여 지내야 했다. 제대로 된 태교는 고사하고 온갖 스트레스 속에 출산한 둘째는 까칠할 대로 까칠한 아기였다. 그 갓난쟁이가 자그마한 몸뚱이로 온 아파트가 다 떠나가라 자지러질 듯 울어 댈 때면 나도 따라 옆에서 그냥 엉엉 울어버리곤 했다. 그 고생을 해가며 결국 2천만 원이란 손실까지 봤다. 아울러 이후 내 인생에 부동산 투자라는 단어도 사라지게 되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낸 건 불 볼 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게 팔지 말자 했는데 고집을 부려 눈앞에서 큰돈을 놓쳤다며 남편을 향해 버럭 고함을 질러 버렸다. 지금도 1억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닌데 20년 전 1억이라면 엄청 큰돈임이 분명하다. 사실 좀 아쉽긴 하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일이고 당장 돈이 궁한 상황도 아니기에 생각만큼 그리 속이 상하진 않았다. 그러나 당시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남편이 내게 보인 무심함들이 오랜만에 생생히 떠올라 좀 오버해서 화를 냈다. 내 고함 소리에 맘이 상해서인지 아님 자신도 1억 생각에 속이 쓰려서 그런지 남편은 20년 전 그때처럼 입을 굳게 다물어버린다.  



열심히 그림 그리고 사람 구경하러 신청한 수업인데 일이 참 엉뚱하게 돼버렸다. 당장 다음 주부터 그 사람 얼굴보기 불편해 수업에 가는 것도 좀 망설여진다. 손해 보고 판 걸 뻔히 아는데 굳이 그런 얘길 내게 왜 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소릴 들으면 누구나 다 유쾌한 기분이 아닐 텐데 이어지는 말은 더 가관이었다.

"자기가 팔고 한 1년 동안 집값이 많이 올랐어"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도 그 사람에게서 별로 좋은 인상을 갖진 못했다. 다음 수업부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자신의 기쁨을 드러내기 위해 구태여 남의 슬픔을 건드리는 고약한 사람이다. 그리고 사실 그깟 1억 지금 내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다. 이후 허황된 욕심을 갖지 말고 형편에 맞게 아끼고 살자 다짐했었다. 다소 무식하고 비효율적인 재테크이지만 그저 착실히 은행에 저축하여 노후에 대한 별다른 걱정은 없다. 게다가 그동안 아이들도 잘 자라 주었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지내왔다. 그 까칠한 둘째도 어느새 고 3이 되어 의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내년엔 광안대교가 훤히 보이는 아파트로 이사도 갈 예정이다. 더 이상 원한다면 그건 과한 욕심일 뿐이다.



다음날 남편에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대하자 살짝 놀라는 분위기다. 마누라에게 며칠은 들볶일 거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그 일에 대해 일절 언급이 없자 크게 안도하는 듯하다. 어쩐지 좀 고분고분해진 느낌도 든다. 마치 20년 전 내가 남편 앞에서 알아서 기던 것처럼.

 


모든 일엔 꼭 나쁜 일만 있지도 좋은 일만 있지도 않다. 비록 별 유쾌하지 않은 만남이었지만 덕분영어 회화 시간에 영어로 발표할 얘깃거리 브런치에 글을 소재도 생겼다. 사람들은 남의 실패담이나 실수에 재밌어하니 아마 한동안 내 입에서 계속 오르내릴 것이다. 남편도 내게 좀 살가워진 느낌이다. 아울러 관계에서 절대로 해선 안 되는 행동 중 하나를 크게 깨우치게 되었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또 하나, 1억이란 과거에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 대범한 또 다른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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