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으로 벌린 일이긴 하나 사실 걱정 반 설렘 반이다.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고 동시에 살짝 흥분되기도 한다. 분명한 건 만약 이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란 사실이다. 내겐 좀체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혹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무엇보다 앞으로 영어 공부에 적잖은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게다가 이 나이엔 그리 쑥스러울 것도 없다. 저 멀리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그녀가 날 알아보고는 반갑게 두 팔을 크게 흔든다.
아파트 단지 내 도서관은 규모면에서 작긴 하나 정기적으로 새 책들이 입고된다. 20년 가까이 이곳에 살면서 참 고맙게 잘 이용하고 있는 시설이다.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는 입주민만 지원 가능하다. 작은 보수임에도 주 5일 하루 3시간 자리만 지키면 되기에 은근 경쟁이 치열하다. 한번 뽑히고 나면 꽤 만족스러운지 어지간해서는 잘 그만두지 않는다. 사서가 바뀌는 일은 매우 드물다. 앞 전 사서가 그만둔 이유도 이사 때문이었다.
같은 입주민이라 그런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사서들은 대체로 다 친절했다. 하지만 지금의 사서는 좀 더 특이한 사람이다. 말이 많은 게 살짝 부담스럽긴 하지만 사람들과 대화하길 좋아해서라 생각된다. 그렇다고 시끄럽거나 나대는 성격은 전혀 아니다. 언제나 생글거리며 도서관을 찾는 모든 이에게 정답게 대한다. 몇 번 말을 나누다 보면 그리 친분이 없는 사람에게도 쉽게 속내를 드러내곤 한다. 8살이나 많은 내게도 언니, 언니 하며 붙임성 있게 먼저 다가왔다. 날카롭고 다소 시니컬한 내 눈엔 순진과 순수 그 중간쯤으로 비친다. 그동안 쭉 지켜봐 온 결과 'negative'한 곳은 정말 1도 찾아볼 수 없는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란 결론을 내렸다. 둘 다 그림 그리기가 취미란 걸 알게 된 이후 반가움은 배가 되었다. 어느새 그림이 완성될 때면 제일 먼저 보여주는 사이가 돼버렸다.
언젠가 미국에 있는 그녀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었다. 아주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되었다 했다. 몇 년 전 입양아 고국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홈스테이를 제공한 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관계가 이어지고 있단다. 다른 입양아들은 홈스테이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연락하는 일이 좀체 없었지만 그녀는 다르단다. 자기를 코리아 맘이라 부르며 매년 찾아온다 했다. 며칠 있으면 한국에 올 거라며 도서관에 들리면 자기랑 같이 있는 그녀를 볼 수 있을 거란다. 그리고 다음 주 새롭게 완성한 그림과 반납할 책을 들고 도서관을 찾았더니 정말 그녀가 와 있었다. 이름이 '에비'라 했다.
아파트 인싸인 도서관 선생님 옆에는 항상 사람들이 앉아 있다. 때로는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한다. 어눌한 인사말을 듣기 전엔 그녀도 그들 중 한 명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 도서관 선생님을 엄마라 부르기엔 다소 민망할 만큼 그리 어려 보이진 않는다. 나이를 물어보니 역시 36살이란다. 보통 미국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냥 이름을 부르면 될 건데 언니뻘밖에 안 되는 사람에게 굳이 왜 엄마라 하는지. 그렇든 말든 내겐 외국인과 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편하게 대화할 수준은 아니지만 용기를 내어 몇 마디 주고받는다. 그러나 곧 실력은 바닥나고 서서히 집중력의 한계까지 느껴진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으려 바짝 긴장하고 있었더니 급기야 살짝 어지럽다. 더 있어봤자 흉한 꼴만 보일 것 같다. 결국 영어 공부의 필요성만 절실히 깨닫고는 바쁜 척 서둘러 도서관 문을 나선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다. 그래도 몇 년을 영어에 시간 투자를 하고 있는데 좀체 입과 귀가 트이지 않으니 울화통만 터진다. 무엇보다 영어는 자신감인데 엉터리라도 뻔뻔하게 옆에서 좀 더 떠들걸 아쉽기만 하다. 아무래도 조만간 다시 도서관에 들러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다다음날 빌린 책중 한 권을 급하게 다 읽은 후 직접 구운 초코 머핀과 그동안 그린 그림 중 꽤 괜찮은 걸로 10장을 골라 도서관을 찾았다.
초코 머핀을 나눠 먹으며 그림 구경도 하고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며칠사이 내 영어 실력이 확 달라질 건 없지만 그래도 두 번째 만남이라 그런지 작정을 하고 와서 그런지 다소 스무스하게 대화가 이어진다. 무슨 말 끝엔가 매일 아침 산에 간다는 내 말에 갑자기 자기도 따라가고 싶단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더니 다시 한번 간절한 눈빛으로 같이 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한다. 이게 무슨 행운 같은 일인지. 하지만 아침마다 가는 산은 동네 뒷 산이라 너무 작다. 결국 장소를 바꿔 집 근처 어린이 대공원의 울창한 숲에 위치한 절로 정했다.
약속한 날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에그마요 샌드위치와 김밥을 만들었다. 전날 우엉을 사서 김밥에 넣을 조림까지 만들었지만 혹시 낯선 우엉 향이 불편할까 살짝 고민되었다. 결국 에비가 먹을 건 애써 만든 우엉조림을 뺐다. 미국 음식은 대체로 짜다는데 혹 싱겁게 느껴질 수 있으니 눈을 질끈 감고 에그마요에 소금도 넉넉히 뿌렸다. 그림 선물도 준비했다. 내 그림 중 에비가 제일 좋다고 한 것을 엽서 크기로 다시 작게 그려 예쁘게 포장했다. 집 근처라 해도 버스를 타고 공원 입구까지 가야 하는데 마침 야근을 마치고 귀가한 남편이 차로 태워 준단다. 그야말로 모든 게 퍼펙트하다.
하지만 각본대로만 움직이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날의 소풍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날 보고 격하게 두 팔을 흔들며 환영하던 그녀의 텐션은 차에 타는 즉시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1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차 안에서 입이 째져라 연신 하품을 해댔다. 들어보니 8시간은 잤다는데 4시간 반밖에 못 잔 나보다 어째 더 피곤해 보이는지. 게다가 가을 날씨 답지 않게 푹푹 찌는 더위는 공원 입구부터 에비를 기진맥진하게 만들었다. 절까지는 한 시간 반 가량 멋진 숲 길을 걷기만 하면 되는데 벌써부터 헐떡이는 숨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키가 175센티나 되는 건장한 체격의 젊은 사람이 왜 이리 힘들어하는지. 게다가 수영을 비롯한 다른 스포츠들도 즐긴다고 분명 자기 입으로 말했었다. 산행이라기도 무안한 숲 길을 걸을 뿐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내 뒤를 힘없이 따라오기만 한다.
"Are you okay?"
"헉헉, No problem! 헉헉"
저리 힘들어하는데 나 좋자고 자꾸 말 시키는 것도 그렇고 결국 조용히 앞서 걷기만 했다. 같이 나란히 서서 영어로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고자 했던 내 계획은 결국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나중에 얘길 들어보니 에비가 힘들어한 것도 다 그럴만했다. 우선 그녀가 사는 곳엔 산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단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어 산도 많을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처음 공원에 도착해 산을 보고는 호들 갑스레 좋아하며 사진 찍던 모습이 이젠 이해가 된다.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나라에 살다 보니 나에겐 비교적 평탄하게 여겨지는 숲 길도 그녀에겐 가파른 오르막이었다. 게다가 가까운 거리도 차를 몰고 다니는 게 일상인 사람이 덥고 습한 날씨에 하이킹을 한다는 건 그야말로 고난의 행진인 셈이었다.
도서관 선생님이 카톡으로 에비의 사진을 보내준지 일주일이 지났다. 공항에서 배낭을 메고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다. 2주간의 짧은 한국 생활을 끝내고 다시 1년 후를 기약하는 그녀의 웃음 뒤로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진다. 나 좋자고 한 일인데 도서관 선생님은 에비를 데리고 절에 같이 가준 것에 대해 내내 고마워했다. 빌린 책을 다 읽지 못했지만 에비의 소식이 궁금해 도서관을 찾았다.
"이렇게 한국에 며칠 있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한동안 기분이 좀 이상해지나 봐요"
요즘 에비의 맘이 좀 뒤숭숭한가 보다. 선생님 말에 의하면 한국에 들어와 사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 중이란다. 그러고 보니 같이 절에 갔을 때 내게 한국어 배우는 거 어렵지 않냐고 물어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아주 어려운 언어라고 말을 해줬는데.
에비를 정말 딸처럼 생각하는 도서관 선생님은 그녀에게 그냥 지금처럼 사는 게 낫지 않겠냐 얘기했단다.
"언니, 솔직히 난 우리 애들도 나중에 미국에서 살았음 좋겠어요. 일단 시급 자체가 다르잖아요. 미국에서 돈 벌고 한국엔 그냥 놀러 오라고 했어요. 그리고 에비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니깐 더 힘들 거예요"
영어 원어민 강사로 일하면 어떻냐는 내 말에 도서관 선생님은 그녀답지 않게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다.
"아유, 요즘 원어민 강사 하려면 얼마나 이것저것 따지는데요. 학벌도 좋아야 하는데 에비는... 게다가 에비 사는 곳이 좀 시골이라 사투리 발음도 있고. 언니도 에비 발음 살짝 알아듣기 힘들다고 했잖아요"
나야 영어를 못해서 못 알아들었던 건데.
운 좋게 도서관 선생님 가족과 인연을 맺게 된 이후 에비의 가슴속 무언가가 꿈틀대는 게 분명하다. 그녀가 미국에서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한국에서 친엄마도 찾기 힘들다 했다. 하지만 이 가족의 단란한 모습은 그녀의 결핍된 부분을 채워주는 것 같았다. 동시에 어떻게든 그 속에 자신도 끼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나이차가 얼마 나지도 않으면서 도서관 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는 것도 한국에 있는 동안 거의 그 뒤만 그렇게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좀 의아했었다. 선생님의 시댁이나 친정 심지어 지인들의 모임에까지 함께였고 도서관에도 늘 붙어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 사는 것에 다소 회의적인 도서관 선생님의 말에 꽤나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도 한국 엄마의 말이 더 설득력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자신을 버린 한국이지만 애정을 가지고 매년 찾아오는 그녀가 고맙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내년에 한국에 오면 이번에 간 곳보다 훨씬 높은 산으로 그녀를 안내하겠다 미리 경고했었다. 믿기진 않지만 날씨만 덥지 않으면 기꺼이 날 따르겠다 그녀도 큰 소릴 쳤다. 내 영어 실력도 1년 후면 더 나아져 있겠지. 어쩜 에비가 한국말을 배워 영어로 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부디 행복하고 건강하길. 문득 한국이 그리울 때가 있을게다. 그럴 땐 내 그림 속 해운대 푸른 바다가 그녀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