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아니란다

by 코니

"어때? 먹을 만 해?"

어김없이 식구들 반응 살피기에 바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이 나에겐 백종원이고 안성재다. 사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들의 입만 초조하게 바라보는 내가 식구들에겐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럴 땐 그들도 안대가 필요할지 모른다. 물론 그들이 내 앞치마를 벗기고 대신 지긋지긋한 부엌일을 도맡아 할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은 아니다. 허나 맛있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할 경우 그들도 피곤하다. 적절히 요리사를 채찍질하면서 의욕을 불러일으킬 만한 말을 생각해내야 한다. 가끔 이런 불평을 듣기도 한다.

"아직 목구멍으로 넘어가지도 않았어"



외식을 즐기지 않는 남편 탓에 다른 집에 비해 부엌에 머무르는 시간이 긴 편이다. 남편이 외식을 꺼리는 이유는 바깥 음식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마누라가 만든 음식이 더 맛있어서 그런 건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남편은 내가 만든 비교적 정직한(?) 음식보다 조미료 범벅의 약간 반칙을 사용한 음식을 훨씬 좋아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돈 쓰는 게 싫으니깐.



나는 괜찮지만 다양한 음식을 접할 기회가 적은 아이들이 안쓰러워 정말 별거 별거 다 만들어 먹였다. 순전히 아이들을 위해서였지만 솔직히 제일 득을 본 건 남편이었다. 고맙다 맛있다 그런 소리는 입밖에 낼 줄도 모른 채 그 조그만 아이들을 상대로 경쟁하듯 먹기 바빴다. 형제만 4명인 집안에서 자랐기에 모든 것이 야생의 세계 그 자체였을 거라 한편으론 이해가 됐다. 하지만 눈치 없이 자기 입만 채우던 남편이 참 얄미웠다. 내 잔소리 때문인지 아님 식탐이 줄어서인지 지금은 아이들부터 먼저 챙길 뿐 아니라 맛있다는 소리도 간혹 할 줄 안다.



지난 25년 동안 정말 성실히 밥을 해왔지만 따지고 보면 탁월한 미각이 있거나 적성에 맞아서가 아니다. 묵직한 책임과 피할 수 없는 의무가 날 주방으로 내몰았고 손에 앞치마를 쥐게 했다. 사실 음식이란 많이 경험해 봐야 혀가 기억을 더듬어 손을 움직이게 한다. 그러나 나 역시 그런 기회가 적다 보니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 허다하다. 코나 혀보단 글로 음식을 접해서인지 간혹 요상한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땐 시치미를 뚝 떼고 족보 있는 음식인 척 내놓는 게 상책이다. 예전엔 아이들이 어려 그게 먹혀들었다. 밖에서 먹어 본 적이 없으니 지들이 알 수가 있나. 오히려 집에서 이것저것 뚝딱 만들어 내는 엄마를 뿌듯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함부로 새로운 걸 도전했다가는 이건 아니라는 소릴 듣게 된다.




자식이라고 모두 끼고 살고 싶은 건 아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끔 보는 게 서로에게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언제부턴가 큰애가 집에 오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그리 살갑지 않은 놈이 집에만 오면 매번 손님 대접을 받으려 한다. 어쩜 내가 그리 만들었는지 모른다. 객지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집에 오면 맘 편히 쉬었다 가라 귀한 손님처럼 대해줬다. 머무는 동안 잔소리는 일절 금하고 방청소는 물론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받아 정성껏 대접했더니 이젠 그게 당연한 줄 안다. 내가 힘들어한다는 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군대에 가 있는 요즘 휴가 나온다 하면 또 뭘 해서 먹여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몇 주전부터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1년 전 초등 임용 시험에 떨어진 후 군에 입대하겠단 아이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군에 있더라도 임용 시험에는 응시하라고. 별 기대가 있어서가 아니다. 학교 다니며 공부만 해도 안 됐는데 지가 무슨 수로. 그저 감이라도 잃지 말라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번에 운 좋게 1차에 합격하여 며칠 전 2차 면접 때문에 휴가를 받아 집에 왔다. 아이 말이 커트라인에 걸려 통과했기에 면접으론 뒤집을 수 없는 점수라 했다. 하지만 민간인이었을 때도 넘지 못한 1차의 벽을 군인의 신분으로 통과했기에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저 놈이 군에 가더니 드디어 사람이 되었다며 살짝 감동까지 받았다.



아이가 지 역할을 충실히 했으니 이젠 내 차례다. 면접을 3일 동안 보기에 그동안의 아이 식단에 신경 써야 한다. 게다가 수업 시연이 있는 면접날에는 도시락까지 지참해야 한단다. 뭘 먹고 싶냐 물어보니 딱히 먹고 싶은 게 없단다. 예민한 위장이라 조금만 긴장해도 배앓이를 해 잘 못 먹긴 한다. 그래서 그런 건지 아님 이젠 메뉴 고르는 것도 귀찮아 주방장 특선 요리만 먹겠단 건지 아리송하다.



아이가 집에 온 첫날 돼지고기를 넣어 칼칼하게 끓인 된장찌개와 생선구이, 나물들로 소박하게 집밥을 차렸다. 평소 아이가 잘 먹던 메뉴다. 그런데 뭔가 특별한 걸 원했는지 살짝 실망한 모습이다. 다음날 저녁은 식구들 모두 좋아하는 소고기 전골로 준비했다. 갑자기 매서워진 날씨에 제법 잘 어울리는 듯했다. 자주 만들던 거라 별 부담 없이 평소보다 고기만 좀 더 많이 넣고 끓인 후 냄비째 식탁에 놓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엔 시판용 간장으로 간을 했지만 작년부터는 부지런을 떨어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 그런데 하필 이번에 만든 간장은 단맛이 좀 강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을 반갑게 한 스푼 떠먹은 아이의 표정이 이내 굳어진다.

"국물 맛이 좀 달라졌는데..."



남편과 딸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내 입에도 그리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큰애는 고기만 잔뜩 건져먹고는 평소와 달리 국물엔 거의 손대지 않았다. 아이에게 뭔가 잘못한 기분이 든다. 다른 걸로 점수를 만회해야겠단 생각에 저녁상을 치우자마자 낮에 구워둔 카스텔라로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었다. 다행히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다. 내일 저녁엔 기필코 맛있는 요리로 아이의 입맛을 만족시키겠노라 다짐한다.



제일 좋은 등갈비를 사 와서는 최대한 기름기를 제거하고 핏물제거를 위해 물에 담갔다. 하루가 지난 후 갖가지 향신료를 넣고 끓인 물에 데쳐 불순물을 제거했다. 촉촉한 육질을 위해 삶는 것 대신 번거롭지만 찌는 방법을 택했다. 이때 팔각을 사용해 혹시 모를 누린내 제거에 신경 썼다. 등갈비가 쪄지는 사이 바베큐 소스를 준비한다. 평소 내 맘대로 만들던 소스와 달리 이번엔 욕심을 부려 진짜 제대로 만들어 볼 생각이다. 휴대폰을 뒤져 레시피를 찾는다. 혹시 몰라 남편에게 완성된 소스를 맛보라 하니 OK사인이 떨어졌다. 등갈비에 양념이 잘 스며들도록 소스에 미리 버물려 몇 시간 둔다. 이젠 오븐에 넣고 불 맛만 더하면 나의 야심작 등갈비 바베큐가 완성된다.



"어때? 괜찮아?"

또다시 큰애의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빌트인 오븐이 고장 나서 베이킹용 미니 오븐을 사용했더니 불맛이 시원찮았다. 토치를 사용해 최대한 불맛을 낸다고 냈는데 어쩔는지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오늘 영어 면접을 망쳐 기분이 좋지 않던 아이의 입에선 냉담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소스 맛이 좀 달라졌는데. 한 입 먹는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순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야속한 놈. 얼마나 시간과 품을 많이 들여 만들었는데. 가끔 잘하려고 너무 애를 쓰면 오히려 평소보다 못한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가 보다. 맛있다는 딸아이와 남편의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더 이상은 못 하겠다. 밥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앞치마를 집어던지고 이 자리를 뜨고 싶다.



다음날 속은 부글부글 끓지만 내색 않고 내일 집을 떠나는 아이를 위한 마지막 식사를 준비한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간단하게 만드는 새우 딤섬을 보고 따라 만들었는데 가족들 반응이 좋았다. 내가 먹어봐도 맛있어서 다음에 아이가 휴가 나오면 해 주려고 생각했었다. 저녁엔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늦게 일어난 아이를 위해 아침 겸 점심으로 해주는 수밖에 없다. 아침부터 딤섬 빚는 엄마가 세상엔 그리 흔하지 않을 텐데 이 놈이 알기나 하려나. 그나저나 일어나자마자 이게 과연 넘어갈까 싶었는데 이건 또 입에 맞나 보다. 잘도 먹는다.



아이가 떠나는 날, 기차역에 데려다 주기 전 모처럼 외식을 하고 근처 스타벅스에 들렀다. 좀 전에 먹은 함박 스테이크가 기대 이상 맛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이곳 풍경도 만족스러워 가족 모두 기분 좋아 보인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신났다. 8월이면 아이가 제대하지만 그래도 몇 시간만 참으면 당분간은 또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모처럼 찾아온 평화를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이 놈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해댄다.

"예전엔 나가 사는 게 좋았는데 이젠 집이 좋아졌어. 앞으로 집에서 살래"



"무슨 소리야? 안돼. 방 구해 줄 테니 나가서 살아. 너는 집에 오면 언제나 손님이야. 나는 가족 하고는 살아도 손님 하고는 이틀이상 못 살겠다. 엄마 너무 힘들어"

단칼에 거부하는 내 말에 아이는 다급하게 말을 이어간다.

"아니, 집이 좋다니깐. 이젠 손님처럼 안 굴게. 밥도 나가서 먹고 아침에 일찍 나갔다 밤에 돌아올게"

그 말을 순순히 믿을 내가 아니다. 어림없는 소리다. 그나저나 아이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 묘한 쾌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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