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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nkorwriter Oct 26. 2024

사이버 세상

시가 있는 에세이 (23)

2006년 9월 11일 밴쿠버 교민신문 “The plusNEWS" 게재분.


사이버 세상


사이버 세상에 발을 들였다.


그동안 외로웠다.

세상은 나를 외면했고

인심은 떠났다. 또 보자는 

기약도 주지 않았다.


잘 난 사람들 속에서 외로웠다.

한 때는 모두가 못난이 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혼자 못난이였다.


슬픔에 젖어 속세의 뒷골목

유랑하다

숨결 없는 쥐 한 마리 따라

여기로 흘렀다.

얼굴 본 적 없는 손길들이 나를 찾았고

나도 말없이 그들을 방문했다.


이름도, 나이도

사는 곳이 어디이며

무얼 하며 세상을 흐르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내게 미소를 안겨 주었고

환상 속을 안내해 주었으며

나름대로의 색깔로

그들의 삶을 보여 주었다.


나도 내 색깔 보이려

마이더스 왕의 이발사처럼

응어리 진 가슴 열었다.

내 절규함은

나의 갈대 숲 찾는 이들만 들으리니


사이버 세상에 발을 들였다.

더 이상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인터넷 탐색을 시작한 것은 1998년 5월이었다. 그전까지는 인터넷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전혀 몰랐다. 은행 퇴직 후 캐나다의 EI와 비슷한 실직수당을 6개월 간 받으면서 취업노력을 하던지, 아니면 취업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나는 안양대학교에서 “인터넷 비즈니스”과정을 수강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40대가 넘은 사람은 흔치 않았다. 컴퓨터는 주로 게임을 즐기는 10 -20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었다. 30대 조차도 인터넷을 이용하는 숫자가 60%를 조금 넘어서고 있다는 모 신문의 통계치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IMF 이후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퇴직한 중년 세대들이 재취업을 위해서는 컴퓨터를 필히 알아야 한다고 해서 너도나도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당시 인터넷 비즈니스 과정은 항상 만원이었다.  


 교육을 시작할 때는 부팅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젊어야 30대 후반, 대부분이 40대, 그리고 50대도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었다. 그러나 교육을 마칠 때 쯤 모두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고, 인터넷을 통해 정말 희한한 세상을 만났다. 무궁무진한 세계의 정보를 안방에서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컴퓨터를 몰라 젊은 세대들에게 밀린다는 자각심을 가졌던 퇴직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었다.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문학작품도 감상한다. 예전 같으면 한없이 멀게 느껴질 외국에서 지금은 전혀 거리감을 느끼지 않는다. 한국 소식은 어떨 때는 한국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빨리 접할 때가 있다. 예컨대 한국이 한 밤중일 때 올라오는 뉴스들은 밴쿠버에서 먼저 알게 된다. 시각이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과의 대화이다. 40-50대 이상의 인터넷 사용자가 늘면서 살아 온 이야기, 가족 이야기, 건강 이야기, 예술 이야기 등 다양한 화제를 나눌 수 있어 즐겁다. 직접 대면한다면 서먹서먹해 질 수 있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지만 얼굴을 대하지 않으니 스스럼없이 이야기 한다. 또한 익명성이 낮 가림을 덜게 해 준다.


 처음 인터넷을 이용할 때 나는 내 본명을 사용했지만 어쩐지 촌스러운 느낌이 들어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바로 지다이(zedai) 이다. 사실 나는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의 기사를 생각하고 이름 지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제다이는 영어 철자가 "Jedi" 였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내 이름은 수년 동안 zedai로 굳어 버린 것을.

 고심 끝에 나는 억지로 이름에 의미를 부여했다. “혜롭고 정한 웃”으로서의 지다이(zedai)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비단 사이버 세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현실의 세계에서도 항상 지혜롭고 다정한 이웃이 되어야 하겠다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사이버 세상을 돌아다닌다. 거기서 얻은 것을 현실에서 베풀 수 있기에. 정말 사이버 세상은 내 부족함 없는 보물창고이다.    



<되돌아 보니> 

카톡으로 서울 친구와 통화한다. 서울과 밴쿠버가 보이스톡 할 때만은 물리적 차이가 없는 듯하다. 유튜브로 한국 뉴스 다 보고, 브런치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녀노소들의 다양한 생각을 엿본다. 

10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버나비 쉐드볼트센터에서 ‘제6회 BC 다문화 공연예술제’를 내가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인 ‘늘푸른 장년회’에서 개최했다. 파워포인트에 사진과 음악과 동영상을 심어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특히 비 한국인들에게 경복궁의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건축미에 모두들 감탄이다. 비롯은 1998년 5월부터이다. 내 나이에 나만큼 컴퓨터 하는 사람도 밴쿠버 바닥에서 흔치 않다. IMF의 아픔이 세월 지나 이제는 축복으로 되갚아 주는 듯하다. 슬프다고 좌절하지 말고, 기쁘다고 방심하지 말 일이다. 인생은 항상 알 수 없어서 재미가 있다. (2024년 10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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