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나간, 사랑이 익어가는 포도밭
조선호텔에서 포도주 시음회를 한다며 친구가 초대장을 주었다. 오후 4시부터인데 저녁 식사도 제공된단다. 주최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캐나다에 있는 오카나간 포도주 양조장 협회인가 뭐란다. 캐나다산 포도주가 어련하려고? 20년 전. 은행 지점장 시절이라 갈 곳도 많고 할 것도 부지기인 형편이니 그냥 불참하려 했다. 그랬더니 친구 왈. 너 이거 얼마짜리 초대장인 줄 알아? 20만 원짜리야 20만 원. 최고급 포도주를 무제한 마실 수 있고, 식사는 뷔페가 아니라 호텔 정찬(Full course)이라고, 나 참. 특별히 이 지점장 생각해서 마련한 건데---
사실 포도주에 대한 내 추억은 대부분 1970년대의 것들이었다. 친구나 직장동료들과 마시는 술은 거의 소주였지만, 여자를 만날 때는 포도주였다. 예나 지금이나 헛된 감성만 남아서다. 평생의 반려자를 만날지 모르는 데 닭똥집에 막걸리, 어묵 국물에 소주가 내게는 가당치 않았다. 팝송이 흐르는 다소 어둠침침한 경양식 카페에서 멕시칸 샐러드에 치즈와 스테이크를 먹으며, 한 잔의 붉은 포도주로 건배하는 것이 데이트의 정석이라고 여겼다. 순전히 미국영화의 영향력 때문이었으리라.
그때의 포도주는 그저 육식 요리에 맞는 적포도주, 해물이나 생선요리에 맞는 백포도주만으로 구분했을 뿐 상표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국산 포도주는 뒤끝이 좋지 않아 항상 머리가 아팠다. 경양식 집 종업원은 남녀 간 데이트가 오래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여지없이 외국산 포도주를 권했다. 국산보다 두 배나 더 값이 나갔다. 이성에게 잘 보이려는 남성의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래서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적지 않은 데이트비용을 투자한 것 같다. 특히 알코올분해효소가 체내에 많은 여자를 만나면 그 비싼 포도주를 몇 병이나 마시게 되어 지갑 속 사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아내는 반 잔 정도의 포도주에도 발그레 취하는 체질이라 더욱 호감이 갔었다. '좀 더 일찍 당신을 만났더라면 집 한 채 굳었을 터인데' 하고 나중에 아내와 농담도 했다.
결혼 전 아내와 데이트 시절 즐기던 포도주는 '마주앙'이었다. '마주 앉아서 마신다'는 뜻을 지닌 이 술은 1977년부터 국내기술로 만든 최초의 포도주였다. 1980년대는 80%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는데 뒤끝이 깨끗하여 머리도 아프지 않고, 혀끝에 감기는 순하고 부드러운 맛 때문에 프랑스산 포도주는 뒷전에 밀렸다. 그러니까 내 젊은 날의 추억 속에 남는 포도주는 상표 이름도 모르는 그냥 프랑스 와인, 그리고 마주앙 이었다.
그런데 캐나다 포도주라니. 중년이 되어 건강을 생각하며 소주 대신 마실 때도 프랑스 보르도 산, 브르고뉴 산 정도가 내가 아는 포도주 전부였는데 이름도 생소한 오카나간 포도주 시음회는 그리 내키는 행사가 아니었다. '특별히' 나를 생각해서 초대권을 준 친구의 성의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시음회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너덧 군데 양조회사의 제품설명회가 끝나고 시음시간이었다. 과연 안심스테이크 정찬이 제공되었는데 테이블마다 적, 백포도주가 한 병씩 놓여 있었고, 비었다 싶으면 식당 종업원이 얼른 새 병으로 가져다 놓았다. 상표가 기억나지 않지만, 프랑스산과 비교해도 별 손색이 없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시음장 중앙 테이블에 좁고 긴 병에 담긴 포도주를 진열하고, 빈 잔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에게 그 포도주를 나눠 따라주기 시작했다. 후식용 포도주라고 하는 데 마셔보니 일반 포도주보다 몇 배나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가져간 잔에 가득 좀 부어달라고 했더니 그 포도주 가격은 일반 포도주의 10배 정도 되며, 시음회용으로 들여온 수량이 많지 않아 그러지 못함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아주 정중하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당시는 영어가 그리 익숙하지 못해서 더는 떼를 쓰지 못하고 그냥 오케이, 생큐 하고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게 유명한 오카나간 아이스와인(Ice Wine)이라는 것을 밴쿠버 와서야 알았다.
그 오카나간에 갈 기회가 생겼다. 2015년 9월 밴쿠버 노인회에서 2박 3일간 단체관광으로 쿠트니 로키 에인월스 동굴온천 가는 길에 들렀다. 오카나간이라는 지명은 넓은 뜻으로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 남쪽 내륙 10개 지역 즉, 노스 톰슨, 사우스 톰슨, 수스왑, 골드 칸트리, 니콜라 계곡, 시밀카민, 바운드리, 그리고 북, 중앙, 남 오카나간 등을 포함한 톰슨 오카나간을 말하며, 좁은 뜻으로는 캠룹스, 켈로나, 펜틱턴 등 3개 도시와 주위를 묶어 부르는 오카나간 계곡(Okanagan Valley)을 말한다. 흔히 밴쿠버에서 오카나간에 간다고 하면 계곡을 형성하는 바다처럼 넓은 오카나간 호수(Okanagan Lake) 주변의 계곡도시 어느 한 곳을 가는구나 짐작하게 된다.
노인회 가을 관광 목적지는 동굴온천이었지만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더구나 연로한 회원들의 생리현상 때문에 두 시간 마다 버스를 세워 화장실을 들러야 하니 재촉할 수 있는 여정이 될 수 없었다. 로키 가는 길목에 가을이 찾아들기 시작하니 쉬엄쉬엄 단풍구경이나 하면서 소풍 가듯 하자는 것이 모두의 바람이었다.
여섯 해를 노인회에서 재무이사로 봉사했지만, 함께 관광을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아직 젊다는 것이 매번 관광을 따라 가지 않은 이유였다. 예순 다섯이 되어 비로서 함께 한 관광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모두들 육신의 나이는 거부할 수 없지만, 정신의 나이는 청년이었다. 함께 웃고, 노래하고, 수다 잔치를 하는 그 순간은 세월을 거스르고 있었다. '두만강 푸른 물에' 세대는 슬그머니 '세노야, 세노야' 세대로 바뀌고 있었다. 그럴 것이 열시 간 여 버스여행을 거뜬히 견딜 수 있는 회원들은 예순 중반에서 일흔 중반까지가 고작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7080 시절의 이십 대, 삽십 대였다. 일정 내내 일행은 그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직장 다닐 때 야유회가 생각났다. 봄, 가을철 직원들의 단합을 위해 항상 서울 근교로 버스를 전세해서 놀러 갔다. 은행 지점에서는 50대 지점장이 한 명, 40대 차장이 두어 명, 그리고 대리, 행원들은 모두 30대나 20대였다. 미혼의 청춘남녀들이 한 직장에서 온종일 함께 일하면서 은근히 눈여겨본 이성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야유회 날짜가 잡히면 풍선처럼 마음이 설레고, 그 여자, 그 남자에게 잘 보일 수 있도록 노래연습도 하고, 행사 후 에프터까지 구상들 하였다. 그러다 보면 눈이 맞아 사내연애로 이어지고 결혼으로 골인하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함께 일하면서 상대방의 장단점과 성격을 잘 파악할 수 있어서 사내연애는 선망이었다. 단 결혼하고 나서 상대방의 월급명세서를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딴 주머니 차기 어렵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일행이 처음 방문한 곳은 중앙, 즉 센트랄 오카나간에 있는 켈로나 시의 포도주 양조장이었다. 이름하여 미션힐 양조장(Mission Hill winery).
<미션힐 포도주 양조장 입구>
< 양조장 포도밭>
오카나간 지역의 위치는 북위 50.21도. 37.33도인 서울보다 훨씬 북쪽인데 무슨 포도농사가 되느냐 하는 것이 밴쿠버에 있으면서 내가 가졌던 의문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포도주 주산지인 부르고뉴, 샹파뉴 등의 도시와 같은 위도상에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밴쿠버와 달리 일 년에 300일 정도는 화창한 날씨를 자랑하는 오카나간의 중심도시 켈로나. 겨울에는 최저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내려가지만, 여름에는 최고 기온이 40도를 기록한다는데 그러한 일교차가 오히려 좋은 과일의 재배에 최적조건이라고 한다.
양조장 입구에는 아치형 조형물이 우리 일행을 반겼다. 이맛돌(keystone), 즉 여기서부터 양조장이 시작된다는 것을 표시하는 구조물이다.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다고 여겼는데 내부의 건축물, 조형물들이 예술적으로 만들어지고 배치되어 있다. 오카나간 호수에 접한 포도밭에는 적포도주의 원료인 피노 누아르(Pinot noir)와 백포도주 원료인 샤르도네(Chardonnay) 포도나무가 백만대군의 열병식처럼 질서정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위로 호수와 포도밭을 함께 바라보며 포도주도 마시고 식사도 할 수 있는 '테라스 레스트랑'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황혼녁에 그 레스토랑에 앉아 사랑하는 사람과 한 잔의 포도주를 기울이면 인생은 더 없이 아름다울 것 같다. 아내와 단독여행을 왔다면 한 번 시도해 보겠는데 단체여행이니 다음을 기약해 보는 수밖에 없다.
이맛돌에서 직선거리로 보이는 곳에 12층 높이의 벨 타워(Bell Tower)가 있다. 종탑에는 미션힐의 창업자이자 주인인 앤서니 폰 맨들(Anthony Von Mandl)의 부모와 여동생을 기리는 네 개의 종이 있어 청아하고 아름다운 음률을 방문자들에게 들려준다.
앤서니는 유럽 이민자의 아들로 밴쿠버에서 태어났으나 아홉 살 때 부모와 함께 유럽으로 다시 돌아갔다. 아마도 이민자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아서였으리라 짐작된다. 그의 부모는 어릴때 부터 그가 예술, 음악, 요리하는 법 등을 좋아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 방면으로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북돋워 준다. 대학은 캐나다로 돌아와 UBC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그가 포도주산업에 뛰어든 이유가 눈에 띈다. 서양 요리는 포도주를 곁들이는 것이 필수라서 요리공부와 함께 유럽 포도주에 대한 상식을 익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유럽산 포도주를 수입하다가 오카나간 지역이 포도재배에 적당하다는 것을 알고 포도밭을 경작하여 양조장을 세우게 된다.
그가 유럽에서 열두 살이 되었을 때, 다니던 학교에서 타종당번을 하게 되었다. '학교 종이 땡땡 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초등학생 시절, 열심히 동무들과 함께 부르던 동요를 기억하는가. 공부 시작과 끝나는 시간을 알려 주고, 함께 모여야 할 시간을 알려 주고, 때로는 축하하고 기념할 일이 있을 때 알려주는 타종이 그에게는 무척 감명 깊었던 모양이다. 귓속에서 떠나지 않던 그 아름다운 음률을 캐나다에 가지고 가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포도주 산업으로 성공한 그는 마침내 1796년부터 유럽에 10만여 개의 종을 보급한 명장 파커드 종 제조회사(Paccard Bell Foundry)에 의뢰 수작업으로 1,164파운드의 첫 청동 종을 제작, 1972년에 벨 타워에 설치하게 된다. 이어 두 번째 종은 작고한 아버지를 위해 1994년에, 그리고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해 1999년에 두 개의 종을 더 만들어 벨타워를 완성하였다.
미션힐의 포도주 시음센터에서 포도주를 맛보려고 했더니 예약이 밀려 서너 시간이 지나야 우리 일행에게 차례가 올 것 같았다. 관광안내자는 서둘러 다른 곳을 물색해 보더니 미션 힐 건너편 웨스트 켈로나 지역의 서머힐 양조장이 가능하다고 해서 일행은 그리로 이동하기로 했다.
오카나간 지역 포도주 양조장과 시음센터 순례는 관광상품화가 되어 양조장마다 내외부를 독특하게 꾸며놓았다. 서머힐에서 바로 눈길을 끄는 것은 '잔에 포도주를 따르는 병'이었다. 포도주 시음장 입구에 정원을 조성하고, 한가운데 조형물을 설치해 두었는데 포도주병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이색적이었다.
<포도주 잔과 병의 조형물>
<포도주 시음장 내부>
뭐랄까. 마치 하늘에서 신이 인간에게 '살아가느라 수고 많았으니 한잔하면서 잠시 쉬어라.'라며 포도주병을 기울이는 것 같다. 기록에 의하면 선사시대부터 포도주는 인류와 함께했단다. 원시인들이 먹다 남은 포도를 동굴 속 움푹 팬 바위 위에 넣고 저장했는데 한참 뒤 먹으려니 으깨진 포도 사이로 붉은 액체가 흘러나와 마셨는데 기분이 알딸딸(?)하며 좋아져서 그때부터 포도주를 담그기 시작했다나?
주님의 피로서
잠시 취하게 하소서
주님 뵈올 날까지
힘들고 서러운 세상
무거운 짐 지고 혼자 가야 하니
잠시 쉬는 동안
한 모금의 선혈을 허락하소서
맑은 평안이
내 혈관을 흐르게 하소서 (졸시 '포도주')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나눠주며 말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십자가에서 처형당하리라는 것을 예지하고, 남은 제자들에게 자신과 같이 인류의 죄사함을 위해 고난을 받게 될 것을 위로함이었으리라. 한 달에 한 번 교회 성찬식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작은 플라스틱 잔에 담긴 포도주-사실은 포도 주스를 사용함-를 마실 때 마다 예수를 닮는 생활을 하자고 다짐해 보지만 세속에 들면 곧 미움과 시기와 교만과 아집의 본능이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르니 어쩌랴 이 원죄를. 다만 한 모금의 선혈이 내 더럽혀진 마음을 정화하고 내내 평안을 가져다줄 것을 기도하는 수밖에는.
서머힐의 포도주 저장고는 독특하다. 이집트 피라미드를 축소한 이 저장고에서 숙성되는 포도주는 맛과 향이 다른 포도주보다 독특하고 뛰어나다고 한다. 불가사의한 일이지만 삼각형의 피라미드 구조물이 우주의 에너지를 응집하는 효과가 있고, 이 에너지가 포도주 숙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서머힐 피라미드는 독특한 '융합구조물" 개념을 지닌다. 4개의 지지기반과 4개의 사방교차형 지붕, 그리고 한 개의 단단한 갓돌(capstone)로 구성되어 있다. 외벽 콘크리트의 밀도는 상당히 높고 하중 또한 무거우며 다리나 터널보다 더 강하다. 수중건축물에 쓰이는 섬유유리 봉이 강철 이음새 대신 쓰였다.
<피라미드 저장고 외부> 사진출처; www.summerhill.bc.ca
<동 내부> 사진출처; www.summerhill.bc.ca>
서머힐의 대표이자 소유주인 스테판(Stephen Cipes)은 처음에는 900제곱피트 면적의 소형피라미드를 만들어 포도주를 저장, 3년 동안 그 맛을 감식가들에게 보게 했다. 결과는 대성공. 이어 이집트 피라미드의 8% 크기 모사 건축물을 만들어 30일에서 90일 동안 포도주를 저장해 보았는데 역시 같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생명의 힘이 우주로부터 온다는 경건함에 스테판은 가끔 포도주통 위에 정좌하고 합장하며 기도한다. 고객들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최상의 포도주를 만들게 해 주소서.
스테판의 경영철학은 이렇다. 집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듯 고객을 사랑하며 최상의 포도주를 제공하는 것. 인생철학은 또 이렇다. 무슨 일이든 내 온 힘을 바치자. 평범함 속에서 비범함을 창출하자. 그래서 그는 항상 매장에 와서 직접 고객을 맞이하고 걸려오는 전화도 직접 받는다. 돈보다 사람들의 즐거움을 추구한다. 그것이 그가 존재하는 이유(I'm there for people)이다.
그래서인지. 포도주 시음장의 종업원은 그 비싼 아이스와인을 네 병이나 우리 일행에게 제공했다. 저 비싼 와인을 공짜로 맛보게 하다니. 그냥 보통 와인을 내놔도 되는데. 저 사람들 땅파먹으며 장사하는 거야? 그런 내 생각은 기우였다. 일행은 다투어 와인을 사기 시작했다. 며느리 한 병, 손자 한 병, 친구 한 병, 교회 목사님 한 병--- 역시 '베푸는 상인들에게는 복이 있나니, 매상이 그들의 것이리라'라는 상도 商道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다.
캐나다를 비롯해 서구의 방문풍습은 꽃, 또는 포도주를 들고 가는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친지나 친구 집에 방문하려면 선물 걱정부터 앞섰다. 갈비가 좋을까, 과일바구니가 좋을까, 한과세트가 좋을까, 하는 궁리에 머리가 터진다. 뭐 이런 걸 다 가지고 오셨나? 하는 인사는 '이딴 시시한 선물 왜 가져 와? 귀찮게---' 하는 뜻인지 '무슨 부탁이 있길래 이런 좋은 선물을 가져오셨나? 부담스럽게---'하는 뜻인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밴쿠버에서는 항상 와인 한 병이면 충분했다. 더이상 내게 청탁할 일도, 받을 일도 없는 나이가 되었고, 그저 가져온, 또는 가져간 와인으로 함께 한잔 하면서 좋은 인연을 쌓는 일만 남았기 때문이다.
와인을 나누는 것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연인들과 친구들과 부모자식들과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과 함께 포도주잔을 기울이면 사랑이 더욱 무르익는다. 약간의 취기는 수줍은 사람들이 사랑을 고백하기 알맞다. 더 한 취기가 실수를 가져오더라도 사랑으로 감싸본다. 술 한 모금 못 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얼마나 삭막한가.
지루한 밴쿠버 겨울 장마 사이
햇살 눈부시게 비추이는 날
구세군 자선냄비에
십 불 넣을 여유 있는 날
불치병 걸린 이웃이
차츰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 듣는 날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가
가슴에 따뜻한 감동을 안겨 주는 날
오카나간 적포도주 한 병 사서
아내와 아들과 오붓이 한잔 하는 날
머리 싸매지 않아도
시건 수필이건 술술 써지는 날
할아버지 부를 손주들 기대하며
가는 세월 보다 오는 세월이 기다려지는 날
(졸시 '행복한 날')
생일이라던지 크리스마스라던지 무슨 축하할 일이 있는다던지 하는 날이면 아내와 아들과 함께 포도주잔을 기울였다. 아들의 빈자리가 안쓰러웠는데, 새아기가 채웠다. 몇이 될 지 모르지만, 우리 식구 주변에 하나둘씩 자리가 늘면 포도주 잔도 더 준비해야 할 것이다. 사랑도 더욱 무르익어 갈 것이다.
오카나간 호수에 석양이 진다. 사랑의 열매가 포도밭에서 익어간다. 밤이 지나고 새날이 오고, 춥고 더운 계절을 견딘 후 좋은 포도주가 만들어지듯이 우리들의 사랑도 그렇게 숙성되어 질 것이다. 세월의 흐름이 자꾸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