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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여섯 번째!

미스틱 리버 Mystic River

by 달빛바람

개요 범죄스릴러 미국 137분

개봉 2003년 12월 05일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1. Opening 오프닝


이 영화는 어린 시절의 화상 같은 기억에서 출발한다. 미국 보스턴의 어느 낡은 골목, 세 명의 초등학생이 길 한가운데서 하키 놀이를 한다. 거리는 한산하고 아이들은 지루함을 달랠 거리가 필요하다. 악의 없는 철없는 장난. 그날, 그들은 그저 마르지 않은 시멘트 위에 이름을 새기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무도 그것이 경계선을 넘는 행위라고 말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지나가던 형사가 다가왔을 때도 그것은 단지 장난을 멈추라는 신호쯤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한 명이 순식간에 어른들의 세계로 끌려 들어가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 순간이 훗날 서로의 인생을 뒤틀어 놓을 첫 단추가 될 줄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채. 지미와 숀 그리고 이름이 채 다 쓰이지 못한 데이브.
골목의 공기는 어쩐지 싸늘한 금속 내음이 나고 그 냄새는 계절을 건너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마치 시멘트에 박힌 이름들처럼.



2. 살인사건

지미(숀 펜)는 한 때 폭행과 강도짓을 했던 전과자였지만 딸이 태어나고는 잡화점을 운영하며 성실히 살고 있다. 한 번의 아픈 이혼. 이제는 재가하여 아직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도 있다. 큰 딸 케이티는 이제 열아홉. 그녀는 아버지 몰래 남자친구와 밤거리를 누비고, 바에서 음악과 술에 취해 춤을 춘다. 그러나 그 자유로움과 반짝임은 오래가지 않는다. 운명은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에 잔혹하게 칼끝을 들이민다. 그리고 그날 같은 바에 있었던 데이브는 가슴에 피가 묻은 채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자신이 사람을 죽인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은 마치 오래전, 그의 유년을 덮친 어둠이 다시 입을 연 듯 무겁게 떨어졌다. 아내는 그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애써 다독인다. “정당방위였잖아.” 그러나 그 말속에도 두려움이 스며 있었다. 피는 한 번 묻으면 씻기 어려운 것임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형사가 된 숀(케빈 베이컨)은 사건 현장에서 케이티의 시신을 확인한다. 한때 어릴 때부터 봐 온 친구의 딸, 그 멍투성이 얼굴 앞에서 그는 오래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한다.

빌어먹을. 뭐라고 하지? 이봐 지미. 자네를 대신해서 천벌을 받은 거야. 이렇게 말해야 하나?

그 말은 그저 형사로서의 의무가 아닌 어린 시절부터 엉킨 죄책감과 의심의 그림자가 만들어낸 혼잣말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지미는 현장으로 달려온다. 경찰들의 저지를 뚫고 뛰어드는 그의 눈은 이미 광기로 번져 있었다.

내 딸이야!! 내 딸이 거기에 있나?

그 울부짖음은 거리의 공기를 갈라놓았고 주변의 침묵마저 무겁게 눌렀다. 잠시 후, 힘센 쌍둥이 삼촌 세비지 형제들이 그의 곁에 선다. 그들의 거친 숨소리 속에 복수의 기운이 묻어 나온다.

한편, 뉴스 속 사건 보도를 본 데이브의 아내는 눈을 감았다. 그의 귀가 시간, 그 피 묻은 옷, 불안하게 흔들리던 목소리. 모든 것이 맞물려 있었다. 불행한 예감이란, 대개 가장 잔혹하게 적중한다. 이제 25년 전 묻어둔 악몽의 뚜껑이 열렸다. 어릴 적 골목길에서 시작된 균열이 다시 벌어지며 각자의 삶을 지탱하던 얇은 평화는 부서지고 있었다. 강가의 물살처럼, 피와 비밀은 결국 서로를 찾아 흘러가리라. 그리고 그 끝에는 더 큰 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3. 화려한 캐스팅과 조화


이 영화의 심장은 캐릭터들이고 그 캐릭터들의 숨결은 배우들이 불어넣었다.

지미를 연기한 숀 펜(Sean Justin Penn)은 마치 오래된 화상 자국처럼 피부 깊숙이 새겨진 상처를 품은 남자를 연기한다. 그는 딸을 잃은 부성의 절규를 폭발시키면서도 과거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 소년의 불안한 그림자를 드러낸다. 그의 연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의 뜨거움과 동시에 어린 시절의 얼어붙은 강 위를 맴도는 취약함을 담아낸다. 실제로 숀 펜은 《미스틱 리버》 제작 당시

내가 연기한 지미는 한 인간이 슬픔과 분노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나는 그 고통의 진짜 무게를 끝까지 느끼고 싶었다. 감정에 거짓 없이 뛰어드는 게 내 방식이다.(출처: Sean Penn, 인터뷰 with The Guardian, 2003년 10월 23일)

라고 밝혔다. 숀 펜은 이 작품으로 그 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이미 <데드맨 워킹(1995)>, <아이 엠 샘(2001> 등에서 인간 심연을 파고드는 연기로 명성을 쌓아왔다. 그는 단순히 인물을 연기하지 않는다. 그저 그 인물이 되어 관객의 마음을 훔치고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지게 만든다.

형사 숀을 맡은 케빈 베이컨(Kevin Bacon)은 특유의 성실함과 절제된 연기 톤으로 한때 사랑했던 아내와 아이를 떠나보낸 결핍을 가진 남자를 그린다. 그는 사건의 진실을 쫓아가는 동안에도 한밤의 고요 속에서 홀로 전화를 붙잡고 아내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외로운 그림자를 보여준다. 다작 배우로 잘 알려진 그는 <어 퓨 굿 맨(1992)>, <아폴로 13 (1995)>등에서 공무 집행자, 군인, 경찰 같은 역할을 자주 맡아왔다. 케빈 베이컨은 이 영화에 대해

숀 디바인 역은 내게 ‘상실’과 ‘죄책감’의 이중성을 경험하게 한 캐릭터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감정의 절제를 강조했고 실제로 그 절제 안에서 진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출처: Kevin Bacon, 인터뷰 with Entertainment Weekly, 2003년 11월 3일)

라고 말했다. 케빈 베이컨에게 연기는 특별한 영감에 기대는 예술이 아니라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직업인의 태도와도 같다. 그 꾸준함과 책임감 덕에 그는 언제나 현실에 발붙인 인물을 설득력 있게 만든다.

그리고 어릴 적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이자, 이번 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데이브를 연기한 팀 로빈스(Tim Robbins). 그는 이 영화로 그 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팀 로빈스의 데이브는 표정의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평생의 트라우마에 짓눌린 인간의 숨 막히는 내면을 드러낸다. <쇼생크 탈출(1994)>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던 그가 이번엔 절망과 불확실성의 심연에서 허우적거린다. 그의 연기는 마치 탁한 강물 속에서 무엇인가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듯한 불안과 고요를 동시에 지닌다. 팀 로빈스는 인터뷰에서

데이브는 보이는 그 이상으로 복잡한 인물이다. 그의 트라우마, 혼란, 본질적인 외로움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내가 해냈다면 그건 감독의 믿음 덕분이다.(출처: Tim Robbins, 인터뷰 with The New York Times, 2003년 10월 12일)

라고 밝혔다. 관객은 그를 믿어야 할지, 의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끝까지 그의 시선을 쫓게 된다.

세 배우 모두,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해 한 지점에서 충돌하고 마침내 그 여운이 관객의 가슴속에서 오래 진동하게 만든다. 이들의 연기는 단순히 스크린 속에 머물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알고 있는 누군가, 혹은 우리 자신이 되어 극장 문을 나선 뒤에도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4. 우리의 영혼을 좀먹는 것들

지미는 장례식을 앞두고 딸의 시신 앞에 이렇게 다짐한다.

내가 잡으마. 경찰보다 먼저 찾아내서 죽여버리겠어.

그 순간 그의 목소리는 단순한 아버지의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공포와 상실, 그리고 수십 년간 응어리 진 무언가가 결빙에서 깨어나 터져 나오는 소리이다. 복수의 방아쇠는 이미 걸렸고 그 총구가 향하는 곳은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 총성이 울릴 때, 맞는 쪽과 쏘는 쪽 모두 피를 흘릴 것임은 분명하다.

이 영화의 결을 천천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단순한 인과응보의 복수극이 아니다. 오히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우리 귀에 낮게 속삭인다. '무엇이 인간의 영혼을 좀 먹게 하는가?'그 대답은 멀리 있지 않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의 내면의 아이가 숨 쉬고 있다. 그 아이가 병들고 상처 입으면, 그 울음은 25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한순간 우리를 몸만 커져버린 겁에 질려 우는 아이로 탈바꿈시킨다.

데이브는 마침내 아내 앞에서 무너져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이름을 말한다.

헨리와 조지. 놈들은 늑대였고 데이브는 늑대에게서 도망친 꼬마야.

그 이름은 마치 오래된 우물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독처럼, 꺼내는 순간 주변 공기를 다르게 만든다. 치유받지 못한 과거는 현재를 곪게 하고 마침내 영혼을 부식시킨다. 더 무서운 것은 그렇게 부식된 영혼은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들마저 갉아먹는다는 사실이다. 자아의 중심을 잃으면 관계는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참회와 후회, 그리고 용서.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피해자를 위한 것인가? 유족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살아남은 자신의 안식을 위한 것인가? 복수의 칼날은 목표를 정확히 찌르든 빗나가든 상관없이 결국 자기 손을 베고 만다. 그 상처는 피보다 깊은 어둠을 흘린다.

데이브는 무릎을 꿇고, 짙은 어둠 속에서 지미에게 말한다.

예전에 가졌던 꿈이 생각났어.
내가 없었던 유년시절.

그때 네가 그 차를 탔더라면.

이 말은 허공에 던진 질문이 아니라 불가능한 시간을 향한 절규이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구원처럼 보이지만 그 끝은 늘 자책과 원망으로 이어진다. 미움은 그렇게 자라나고 끝내는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미스틱 강 속에 잠긴 것은 시신만이 아니다. 거기에는 말로 표현되지 못한 유년의 비명, 갚을 수 없는 빚, 그리고 끝내 풀지 못한 매듭들이 함께 가라앉아 있다. 물은 모든 것을 덮어주지만 그 깊은 어둠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숀은 이렇게 고백한다

어찌 보면 우리 모두가 그 차를 탄 거야. 이 모든 것이 그저 꿈만 같아. 현실 속의 우린 겁에 질려 갇힌 11살 꼬마야. 탈출해서 다르게 살길 원하는.



5. Style 스타일


데니스 루헤인 Dennis Lehane의 원작 소설은 물살이 잔잔하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처럼 인물들의 내면을 천천히 훑어 내려간다. 페이지마다 그들의 가슴속에서 삐걱이며 돌아가는 톱니바퀴 소리가 들리고, 과거라는 굴레 속에서 발버둥 치는 세 남자의 그림자가 겹쳐진다. 소설 속 묘사는 유년기의 균열과 그 후로 이어지는 인생의 흐릿한 윤곽을 정밀하게 붙잡으며 마치 기억의 심해로 가라앉는 듯한 체험을 준다.

그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Clint Eastwood의 카메라는 다른 호흡을 선택한다. 그는 느릿한 시선 속에서도 단호하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며 인물들의 심연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말끝에 스미는 공기와 배우들의 표정, 그리고 강변을 스치는 바람 같은 장치로 함축적인 의미를 전한다. 한 줄의 대사가 인물의 과거 전체를 함축하고 침묵이 긴 대사보다 더 무겁게 내려앉는다. 원작이 깊이 파고드는 정밀함이라면 영화는 빈 공간을 남겨두는 절제의 미학이다.

감독은 영화적 접근에 대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끌렸던 부분은 복수와 진실의 비극성이 아니라 그 슬픔이 얼마나 오랜 시간 침묵 속에 숙성되는가였다. 캐릭터들이 말하지 않는 대목에서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흐른다. 나는 관객이 직접 그 여백을 채우게 하고 싶었다.(출처: Clint Eastwood, 인터뷰 with Entertainment Weekly, 2003년 10월 17일)

또한 영화는 속도감을 단순한 이야기전개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파동으로 다룬다.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 듯 하지만 관객은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몰린다. 배우들의 연기는 사건의 폭로보다 그 후의 침묵을 더 강하게 부각하고 강물처럼 흐르는 색감과 음악은 이야기의 결을 한층 더 농밀하게 만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자신만의 연출 방식에 대해

나는 인물들이 실제로 그 강가를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겨진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설명을 늘리는 것보다 배우들의 눈빛과 소음 속 정적이 영화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출처: Clint Eastwood, 인터뷰 with The New York Times, 2003년 10월 5일)

감독은 범인의 정체보다 진실이 드러난 후 남겨진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둔다. 그래서 이 영화 속 사실은 사건의 내막을 파헤쳐 후련함을 주지 않는다. 늦어버린 휘슬처럼, 이미 날아간 탄환을 잡아 세울 수 없다. 남는 것은 우둔한 선택과 돌아 킬 수 없는 비극뿐이다. 결국, 감독은 관객을 향해 묻는다. '우리를 참혹한 과거에서 구원하는 건 대체 무엇인가?'라고. 그 물음은 강물처럼 잔잔히 번져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가슴속에서 여전히 일렁인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여섯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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