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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일곱 번째

스페이스 카우보이 Space Cowboys

by 달빛바람

개요 SF 미국 124분
개봉 2000년 10월 14일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1. Opening 오프닝

이 영화는 푸른 하늘을 가르며 솟구치는 전투기의 엔진음으로 시작한다. 때는 냉전의 공기가 팽팽했던 1958년. 당시 미국과 소련은 달에 사람을 누가 최초로 보내는 가를 두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그 싸움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한 나라의 자존심과 체제의 우월성을 내건 전쟁이었다. 이 전쟁으로 새로운 우주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고도 10만 피트를 향해 비행기를 몰아붙이는 한 남자! 비행기 동체는 비명을 지르듯 흔들리고 계기판은 붉은 경고등을 번쩍인다. 뒷 동료가 절규하듯 외친다.

그만해. 곧 열 장벽이야!

그러나 앞 좌석의 조종사, 프랭크(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눈에는 오직 한 가지 풍경만이 비친다. 대기권 너머, 저 멀리 달의 은빛이 유혹처럼 걸려 있다. 불가능을 밀어붙이는 자만의 고집스러운 눈빛. 그는 흥얼거리듯 'Fly me to the Moon'을 부르며 하늘 끝을 향한다. 그 순간만큼은 하늘의 주인이 된 듯했으나 곧 무모한 도전의 대가는 추락으로 찾아온다. 기체는 급강하했고 결국 그와 호크(토미 리 존스)는 비상 탈출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공포와 그럼에도 끝까지 한계를 밀어붙인 남자의 욕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프랭크와 호크. 그들은 공군 최고의 정예 비행사였지만 성격은 무척 달라 계속 부딪혔다. 프랭크는 욕망과 자존심을 끝까지 움켜쥐는 사내였고 호크는 그 무모함의 대가를 늘 함께 지불해야 했던 동료였다. 그들은 동료이자 경쟁자였으며 서로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뒤통수! 최초의 우주 비행사라는 영예는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젊음의 열기와 이상은 그대로 얼어붙은 채 시간 속에 봉인되어 버렸다.

이야기는 42년이 흐른 뒤 이들이 다시금 모이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건너뛴 영화의 시선은 단순히 그들의 늙은 몸을 비추지 않고 여전히 가슴속에 꺼지지 않는 불꽃, 언젠가 반드시 달에 닿고 싶었던 내면을 드러낸다. 오프닝은 그렇게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우주 모험담이 아니라 한때 놓쳤던 꿈을 붙잡고자 하는 노년의 마지막 반짝임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을.

여기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우주라는 압도적인 배경을 빌려 사실은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한다. 젊음의 무모한 욕망, 그 욕망이 남긴 상처, 그리고 세월이 쌓여도 지워지지 않는 미완의 한(恨). 오프닝의 추락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이루지 못한 꿈이 남긴 생채기이며 동시에 다시 날아오르기 위한 출발선이다.


2. 마음만은 청춘

지구 궤도를 돌던 구 소련의 통신위성 ‘아이콘’에 치명적인 고장이 발생한다. 더 이상 최신 세대의 엔지니어들은 손댈 수 없는 낡고 거대한 기계. 프랭크가 아니면 이 오래된 기계는 고칠 수 없는 상황. 결국 42년 만에 어렵사리 노병들이 다시 뭉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노인들을 그리는 방식은 단순한 동정이나 희화가 아니다. 그는 이들의 주름을, 늙은 근육을, 버거운 숨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하지만 동시에 카메라는 그 주름 속에 깃든 고집과 빛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노인의 도전은 곧 인간의 존엄으로 확장된다. 청춘이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라는 것을 감독은 우주라는 장대한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순히 노인들의 모험담에 머물지 않는다. 카메라는 우주의 신비와 동시에 그 안에 도사린 파괴의 가능성을 정면으로 담아낸다. 창밖에 펼쳐진 지구의 푸른 곡선은 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다가오지만 그 아름다운 별 위에 인류가 만든 가장 어리석은 발명품인 핵탄두가 숨겨져 있음을 보여준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는 손바닥 위 작은 구슬처럼 연약하고 동시에 단 한 번의 실수로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 전체를 향한 감독의 묵직한 경고이다.

결국 이 영화는 두 개의 축 위에서 흔들린다. 하나는 청춘을 잃었지만 여전히 청춘을 꿈꾸는 인간의 끈질긴 의지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무모한 집착이 불러올 파괴의 그림자이다. 이 양극단을 동시에 잡아내는 것은 감독 특유의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다. 그는 노인의 몸을 조롱하지 않고 동시에 우주의 장엄함을 찬양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인간이라는 존재의 작고 위대한 진실을 포착한다.

결국 제목 그대로 그들은 '우주의 카우보이들'이다. 총 대신 낡은 우주복을 걸치고 말을 대신해 우주선을 타고 광활한 하늘을 배경으로 한 번 더 질주하는 자들. 육체는 이미 노쇠했으나 마음만은 여전히 청춘으로 타오르는 자들. 과연 그들은 이토록 아름다운 별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까?



3. 배우들

이 영화의 진정한 힘은 거대한 우주 장비나 특수효과가 아니라 세월을 온몸에 새긴 네 명의 배우들이다. 그들의 얼굴은 주름과 흰머리로 가득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내면의 빛은 여전히 청춘의 웃음을 간직하고 있다. 영화는 이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드러내며 노인의 연약함과 동시에 삶의 관록에서 피어나는 강인함을 스크린에 새긴다.

무엇보다도 팀의 리더 프랭크 역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Clint Eastwood 카메라 앞에서도, 또 카메라 뒤에서도 영화를 이끌어간다. 그는 한때 세상 누구보다 빠르고 과감하게 하늘을 가르던 조종사였지만 이제는 세월의 무게를 정직하게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쇠락이 결코 비극으로만 비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만은 청춘이라는 말이 그의 존재 자체를 통해 입증된다. 새파란 젊은이가 무례하게 구는 순간, 그는 여전히 주저하지 않고 날 선 눈빛을 날리며 자존심을 지킨다. 하지만 그런 강단 뒤에는 아내 앞에서만 드러나는 유연하고 따뜻한 남자의 얼굴이 숨어 있다. 이 대비야말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가진 가장 인간적인 매력이다.

그는 2000년 당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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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바람입니다. 작은 극장을 품은 마음으로 영화와 일상의 자잘한 조각들을 주워 담습니다. 줄거리보다는 스크린 너머에 잠든 숨소리 같은 것들을 조심스레 건져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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