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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올 때마다 생각나는 사랑 이야기 첫 번째!

팀 버튼의 가위손

by 달빛바람
개봉 1991.06.29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판타지 멜로
국가 미국
러닝타임 100분


1. 옛날 옛적에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항상 듣는 이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 이야기가 현재 눈앞의 현상과 관련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지금 창밖에는 눈이 오고 할머니는 손녀에게 눈이 어디서 오는지 그 연유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고 한다.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마을은 인공미가 돋보이는 알록달록한 파스텔 톤이며 마치 거대한 무대세트처럼 보인다. 그 마을을 다니는 차마저도 비슷한 디자인에 깔맞춤을 한 듯 집 색깔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겉보기에는 예쁘지만 이 인공적인 통일성은 영화에서 집단적 혐오와 단결력을 상징한다. 파스텔 톤의 알록달록한 마을에 대조적으로 어둡고 음울한 고딕양식이 돋보이는 산꼭대기 위, 성 안에는 오랫동안 인간과의 교류가 없던 존재가 산다.


기형을 안고 태어나 아니 과학자에게 만들어져 미완성인 채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 그는 화장품 외판원인 페그를 만났을 때 “난 완성되지 않았어요.”(I’m not finished).라고 말한다. 과학자의 욕망과 실험으로 태어난 불완전한 존재, 곧바로 프랑켄슈타인이 생각나는 그의 이름은 에드워드(Edward)이다. 페그는 그를 친절히 마을로 데리고 내려온다. 어떤 큰 후폭풍이 몰려올지 모른 체.


미스터리한 존재는 그 자체로 흥미로우며 관심의 대상이 되지만 동시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 생명체가 생전 처음 보는 존재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 존재의 수용은 그 존재 자체의 쓸모와 기존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마음에 드느냐 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에드워드는 곧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방문마다 냉대받던 페그의 집 앞엔 마을 여자들로 북적이게 된다.


2. 쓸모의 증명과 미디어


에드워드는 어수룩한 적응기를 거쳐 그의 재능을 온 마을에 빛내 보인다. 정원을 멋지게 다듬고 이어 온 마을의 여성들의 머리를 아름답게 다듬는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쓸모를 스스로 증명하는 행위로도 읽힌다. 페그의 남편인 빌은 “네가 정원을 가꿔주고 돈을 안 받는다는 얘길 들었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한다. 외모가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그는 온 마을 여자들의 호감을 사고 이것은 곧 소문이 나 에드워드는 티브이 토크 쇼에 출연하게 된다. 티브이 인터뷰에서 한 질문자는 에드워드의 존재에 대해 솔직한 평을 남긴다.


“당신의 손이 정상이었다면 누구든지 좋아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면 당신도 특별하지 않았겠죠.”


남들과 다르기에 사랑받을 수 없는 불행한 존재, 동시에 그렇기에 특별한 주목을 받는 모순적인 존재. 위 티브이 쇼는 일명 ‘괴물(freak)’을 바라보는 사회의 속물성이자 이중성을 드러낸다.



3. 가해의식과 기존사회로부터의 거부


그가 티브이 인터뷰에서 진심 어린 대답을 하려고 마이크에 손을 갖다 대는 순간 파지직 하고 전기가 통하고 그는 뒤로 쓰러진다. 관객은 폭소한다. 이렇듯 그의 진심 어린 시도는 늘 무언가에 방해받고 비웃음을 사거나 분노를 부른다.

그리고 타인과 자신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로 인해 가장 공포에 휩싸이는 건 에드워드 본인이다.

자신의 ‘가위손’으로 누군가를 해칠 수 있다는 공포! 그는 누군가를 껴안을 수 없는 손을 가진 동시에 늘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잠재적 ‘가해의식’ 또한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마치 범죄의 피해자 유가족이 ‘나 때문이야!

내가 신경을 못썼어.’라는 죄의식과 같은 감정. 마치 자신의 존재자채부정하는 듯한 이 감정은 끝내 사랑의 방해물이 된다.


이때 제한된 움직임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눈망울로 에드워드를 연기한 조니 뎁의 연기는 과히 감탄할 만하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라는 존재 자체의 매력으로 가득 차 있는데 무표정한 얼굴, 창백한 피부, 슬픈 듯 순수한 눈빛 그리고 아이 같은 순진함. 관객은 이 존재가 등장하는 순간 공포감이나 거부감이 아니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그가 화장품 외판원인 페그에게 내뱉는 첫 말은 ‘가지 마!’(Don’t go!)이지만 영화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가 경찰에 쫓길 때 관객은 그가 내뱉은 첫말을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된다.


마을 여성들의 머리를 다듬는 과정은 마치 이성관계의 카타르시스처럼 표현되는데 영화 속 먼로부인은 실제로 그와 성적 결합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에드워드에게 거절당했다 느낀 먼로 부인은 거꾸로 그가 그녀를 겁탈하려고 했다고 모함한다. 에드워드는 페그 가족에게 사실 ‘그대로’를 아이처럼 진술하지만, 가족들 모두 불편해할 뿐 별 것 아닌 것으로 넘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에드워드’ 그가 외톨이가 되는 과정이다. 킴 보그스(위노나 라이더)의 남자친구인 짐은 도둑질에 에드워드를 이용한다. 그의 ‘쓸모’는 범죄에 이용당하고 모함은 진실처럼 믿어지고 미디어는 이를 또 놓치지 않는다. 페그는 그를 따뜻함과 친절함으로 대하지만 문제와 갈등 앞에서는 소심하고 겁부터 앞서는 인물일 뿐이다. 어느 누구 하나 에드워드의 진심과 선의를 대변해 주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불행하게 태어나 냉대와 멸시를 받았던 인물들을 자연스레 하나씩 떠올릴 수 있다. 그의 탄생은 프랑켄슈타인과 닮았지만, 영화 속 이야기 구조는

‘노트르담 드 파리(노트르담의 곱추)’와닿아있다. 태어날 때부터 종탑에 갇혀 지내야 했던 인물. 외모로 인해 노골적인 멸시와 차별을 견뎌야 했던 사람.


사실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 괴물들이 존재해 왔다. 우리는 스크린에서도 어렵지 않게 그들을 만나왔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아이(패왕별희),

난치병으로 인한 얼굴변형(엘리펀트맨), 양성을 지닌 사람(부기나이트), 불완전한 신체를 가진 트랜스젠더

(헤드윅) 그리고 퀴어 영화 속 수많은 동성애자들.


그들은 신체적 기형과 성별의 모호함으로 기존사회에 두려움을 주고 어김없이 멸시와 차별을 받는다. 그것을 이겨내려는 그들의 분투는 늘 눈물겹고 비극은 정해진 듯 따라온다.



4. 비극적 결말과 사랑의 낭만성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노트르 담 드 파리와 닿아있다. 추는 집시인 에스메랄다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근위대인 페뷔스와 연인사이가 된다. 에드워드는 킴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그가 보는 것도 모른 체 남자친구인 짐과 입맞춤을 한다. 그리고 노트르담 드 파리 속 곱추는 어떻게 되었던가? 그는 사랑하던 여인을 죽게 한 프롤로를 죽이고 그 또한 자살하고 만다. 이 영화 속 에드워드는 킴의 기지 덕분에 목숨을 부지하지만 영원히 성에서 못 나오게 된다.


에드워드가 킴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굿바이이고, 킴의 대답은 아이러브유이다. 진심은 늦었지만 끝내 닿았고 둘은 키스하고 이별한다. 기이하지만 아름답고 낭만적이지만 슬픈 이 이야기는 사랑의 낭만성이 어떻게 탄생하고 유지되는가에 대해 잘 표현하고 있다. 연인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한 채 이야기는 끝이 나고 낭만성은 이야기 속에서 영원성을 획득한다. 또다시 눈이 내리고 성안의 ‘가위손’은 얼음으로 눈을 만들고 있다. 성 창 밖으로 오늘도 눈발이 날린다.



5. 팀버튼의 자기 반영성


이 영화는 팀 버튼의 가장 개인적이고도 내밀한 고백 같은 영화이다. 기존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에드워드'는 바로 그 자신이며 그가 바라보는 사회는 겉으로는 평화롭고 아름답지만 집단적 혐오를 감춘 곳이다.


유년시절 내내 팀 버튼은 타인과 관계 맺기가 힘들어 늘 외톨이였고 고립감을 느꼈다. 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허약하고 창백한 가위손을 가진 인물을 그렸다고 한다.

이 스케치가 영화의 시작점이 되었다.

눈 올 때마다 생각나는 사랑 이야기 첫 번째!


#설 연휴로 인해 업로드가 늦었습니다. 꾸벅!


https://blog.naver.com/alinbrian/150090511125

조니 뎁이 팀 버튼의 책 서문을 쓴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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