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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알았던 영화 열여섯 번째!

굿바이 칠드런

by 달빛바람

개요 드라마 프랑스/서독 104분

개봉 1989년 12월 24일

감독 루이 말 Louis Malle



1. Opening 오프닝

영화는 기차역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시작된다. 아직 앳된 소년 줄리앙은 엄마와 이별을 나눈다. 전쟁의 시대가 지닌 무게보다 이 순간은 오히려 한 아이의 눈에 세상의 모든 짐을 안은 듯 애틋하게 다가온다. 엄마는 아들을 강하게 붙잡지도 쉽게 놓아주지도 못한다. 차창 너머로 멀어지는 엄마의 얼굴, 마지막으로 건네는 시선은 애써 평온을 가장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불안과 두려움은 관객의 가슴에 그대로 번진다. 감독은 이 장면에서 이미 영화 전체를 예고한다. 개인의 삶은 역사라는 커다란 물살 앞에서 얼마나 쉽게 휩쓸리는가. 그러나 동시에 그 역사적 무게가 닿기 전 삶의 가장 투명한 결은 엄마와 아들의 이별이라는 사적인 순간 속에서 가장 깊이 드러난다. 기차가 서서히 떠나고 엄마의 뒷모습은 그 공허한 공간 속에 홀로 남는다. 이 오프닝은 단지 출발이 아니라 이미 끝을 품고 있는 시작이다. 루이 말 감독은 이 작은 장면으로 전쟁의 서사보다 더 큰 인간적 비극을, 즉 관계의 상실과 기억의 상흔을 예감케 한다. 그리하여 관객은 처음부터 이 영화가 전쟁의 기록이 아니라 기억의 상흔, 그리고 한 아이의 시선으로 드러나는 내밀한 고백임을 느끼게 된다.



2. 영화의 배경

― 전쟁이라는 무대, 일상의 틈새

굿바이 칠드런의 배경은 나치 점령하의 프랑스. 그러나 영화의 카메라는 총칼과 폭격보다 교실과 식당, 숲과 기숙사라는 좁은 공간을 오래 응시한다. 전쟁은 그 공간들을 에워싼 보이지 않는 그림자일 뿐이다. 아이들은 숲에서 뛰어놀고 식탁 위에서는 작은 다툼이 일어나며, 교실에서는 라틴어 문장이 울려 퍼진다. 전쟁은 늘 그들의 일상을 침범하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기묘하게도 그 안에서 자라나는 작은 삶의 조각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감독은 바로 이 대비를 통해 전쟁의 진정한 비극을 드러낸다. 포탄의 파괴가 아니라 일상 속에 서서히 스며드는 불안,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을 잠식하는 진짜 폭력임을 말한다. 관객은 아이들의 웃음을 보면서도 그 웃음 뒤에서 들려오는 부츠 소리와 휘파람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배경은 단순한 시대적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삶을 압박하는 보이지 않는 공기이며 아이들의 호흡조차 조율하는 강압적 리듬이다. 루이 말 감독은 이 공기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평범한 나무, 바람, 식탁 위의 수프 그릇마저 전쟁의 그림자를 품게 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배경은 전쟁터가 아니라 그 전쟁이 침묵으로 점령한 일상 그 자체이다.



3. 줄리앙과 보네


이 영화의 중심에는 줄리앙과 보네, 두 소년의 관계가 자리한다. 줄리앙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아직 세상의 잔혹함을 모르는 아이이고, 보네는 낯설고 조용한 전학생으로 영화의 중반부 그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 역할을 맡은 배우는 각각 가스파르 마네스(Gaspard Manesse)라파엘 페이토(Raphaël Fejtö)이다. 가스파르 마네스는 강한 호기심과 감수성을 지닌 줄리앙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했으며 지금은 배우이자 뮤지션,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라파엘 페이토는 유대인 '보네'를 연기하며 고요한 고독과 비극적 숙명을 깊이 있게 그려냈으며 현재는 배우와 감독, 아동문학 작가로도 활약하고 있다. 두 배우 모두 실제 유대인 혈통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작품의 사실성을 더했다.

이 영화에서 줄리앙과 보네의 관계는 단순한 차별의 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처음에는 서먹하고, 경쟁하고, 때로는 다투지만, 서서히 서로에게 끌리고 이해하며 결국 깊은 신뢰와 우정을 나눈다. 이 우정은 단순히 두 아이의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가장 순수한 방식, 즉 조건과 배경을 넘어서는 관계의 가능성이다. 그러나 바로 그 가능성이 무너지는 순간이 이 영화의 비극이다. 보네가 끌려가는 장면에서 줄리앙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단지 그를 바라보며, 그 순간을 평생 기억해야 할 운명을 지닌다. 루이 말 감독은 이 장면을 고통스럽게도 아름답게 그린다. 우정은 단절되었지만 그 단절의 기억은 줄리앙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된다.

감독 루이 말은 이 영화의 각본과 제작, 연출 모두를 담당하며 본인의 실제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성인이 된 줄리앙, 즉 감독 자신의 목소리로 비극의 ‘그날 아침’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임을 고백한다. 줄리앙이 감당해야 할 것은 단절된 우정의 상실뿐 아니라 끝내 지켜내지 못한 기억의 무게이다. 감독은 비극적인 이별의 순간을 고통스럽고도 아름답게 그려내며 잊을 수 없는 여운을 전한다.



4. 스타일 Style

루이 말 감독의 <굿바이 칠드런>은 기억과 침묵의 미학으로 빚어진 작품이다. 그의 연출은 결코 과장되지 않는다. 영화는 화려한 음악이나 격렬한 전투 장면 대신 교실 먼지, 복도의 발자국, 식탁의 수프 김처럼 일상의 작은 소리와 정적을 남긴다. 카메라는 항상 아이들 눈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이는 곧 감독 자신의 시선, 잃어버린 어린 시절을 복원하는 시선이 된다. 루이 말 감독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각본을 쓰고, 제작과 연출 모두를 담당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무거워질 위험이 컸기에 최대한 절제하려고 노력했다. 카메라로 과시하는 것을 흥미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영화에서는 인물과 관객이 직접 연결되는 것이 중요했다. 마지막에서야 ‘이것은 내 이야기’라고 말한다. 구조가 인위적이지 않게 연대기처럼 쌓아가는 방식이 중요했다. 어린아이가 악과 불의, 차별을 발견하는 경험을 관객도 똑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내 목표였다. (출처:/케빈 랠리 인터뷰, 1987년 12월)

라고 밝혔다.


그는 또 다른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연기자로 쓰는 것은 각별하다. 나는 아역 배우를 믿지 않는다. 아이들은 경험을 쌓으면 자연스러움이 사라진다. 연기 기술을 훈련할 나이도 아니고, 아이답지 않은 모습을 요구할 수도 없다. 이번 영화에 등장한 가스파르 마네스(줄리앙 역), 라파엘 페이토(보네 역)는 모두 실제 촬영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카메라 앞에서도 감정적으로 진실했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이 좋다. 본질에 다가갈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와 솔직하게 마주할 수 있다. (출처:/케빈 랠리 인터뷰 1987년 12월)

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의 스타일은 마치 기억의 파편을 모아내듯 장면 하나하나가 다큐멘터리처럼 사실적이면서도 시적 울림을 가진다. 특히 감독은 침묵을 탁월하게 활용한다. 말하지 않는 것, 설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하며 보네가 끌려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남겨진 아이들의 침묵은 깊은 절망과 허무를 전달한다. 루이 말 감독 자신의 육성으로, “시간이 지나도 이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마지막 내레이션은 이 영화가 단순한 시대의 재현이 아니라 잃어버린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조용한 기도임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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