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거나, 망하거나
— 새해를 시작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
새해의 공기는 늘 낯설다. 달력의 숫자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사람들의 얼굴에는 괜히 결연한 기색이 깃든다. 더 나아져야 한다는 압박, 작년과는 다른 한 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 SNS에는 ‘진짜 시작’이라는 말들이 넘쳐나지만 그 진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나 역시 오랫동안 그 막연함 속을 떠돌았다. 운동, 공부, 저축 같은 단정한 단어들을 매년 새해의 목록에 올려놓았고, 그 결심들은 어김없이 2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제야 알았다. 새해는 삶을 갈아엎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굴러가고 있는 일상의 궤적 속에서 자신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한때 나는 영화라는 이름의 신기루에 생을 던졌다. 새벽 공기 속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한 번만 더 갑시다!”를 중얼거리던 시절. 그 고단함을 청춘의 훈장이라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남은 것은 훈장이 아니라 만성적인 통증이었다.
영화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You can do it”을 말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나는 해내지 못했다’는 문장이 목을 조였다. 그 모순이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누군가에게는 근거 없는 응원 하나가 하루를 버티는 힘이 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는 그마저도 무너뜨렸다. 교실은 비었고, 나는 배달 가방을 멨다. 비 오는 도로 위에서 헬멧 안에 습기가 차오를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지나가는 장면일 뿐이야.” 하지만 현실은 좀처럼 컷을 외쳐주지 않았다. 사고로 허리를 다쳐 바닥에 누운 채로 나는 꿈도 명예도 다 필요 없으니 제발 몸만 펴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기묘하게도 그 절망의 바닥에서 손에서 펜은 떨어지지 않았다. 배달 대기 중 적어 내려간 문장들. “오늘은 덜 젖었다.” “하늘이 생각보다 낮다.” “이 문장을 누군가 한 명만 읽어준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생존 신고였다. 그때 깨달았다. 다짐은 삶을 바꾸지 못하지만 기록은 삶을 견디는 나를 바꾼다는 것을.
다시 아이들 앞에 선다. 여전히 성과와 효율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예전보다 정직해졌다. '정답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이제는 수사가 아니다. 내 통증과 실패를 통과해 남은 골수 같은 문장이다. 그래서 올해의 첫날, 목표 대신 백지를 펼쳤다. 그리고 단 하나의 단어를 적었다. ‘첫 마음’.
무엇이든 처음은 서툴다. 우리는 그 미숙함이 부끄러워 빨리 능숙해진 척하지만 익숙함은 종종 설렘을 앗아간 자리에 생긴 굳은살일 뿐이다. 그래서 올해는 의도적으로 서툴게 살기로 했다. 덜 완벽해도, 더 뜨겁게. 올해 나 자신과의 약속은 단순하다.
몸을 움직일 것. 나를 지탱하기 위해. 하루에 한 번 고요 속에 머물 것. 지금 여기의 나를 확인하기 위해.
잠들기 전, 하루를 기록할 것. 찬란함보다 흔들린 순간들을.
이것은 목표가 아니라 생존의 규율이다.
문득 두려움이 밀려올 때가 있다.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이미 뒤처진 건 아닐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아직 문을 두드릴 손이 남아 있다면, 충분하다고.
책상 앞에는 이렇게 적어 붙였다.
“미치거나, 망하거나. 그러나 기록할 것.”
글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바꾼다. 배달하던 밤, 젖은 영수증을 기록하는 순간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이 되었다. 인생의 품격은 그 한 끗에서 갈린다. 그래서 나는 다짐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을 쓴다.
“오늘도 기어이 한 줄을 남겼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삶이란 결국, 지우고 다시 써 내려가는 끝없는 퇴고의 과정이니까.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끌어안고도 첫 문장을 쓰는 마음.
그것이 내가 새해를 시작하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