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생각 2월호 특집 '전국 동네 자랑'

비탈길에 두고 온 말들

by 달빛바람

제가 쓴 글이 좋은 생각 2월호 특집코너에 뽑혔어요!

이번에 '특집'코너라 상금도❤️❤️


내용이 살짝 윤색된 것 같아요!


성북동 비탈에 두고 온 말들

성북동 꼭대기, 내 자취방은 낭만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높이에 있다. 서울 성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풍경이 좋다고 짐짓 너스레를 떨지만, 실상은 보증금에 맞춰 밀려나고 밀려나다 닿은 곳이 이 가파른 언덕이었다. 마을버스가 헐떡이며 토해놓은 정류장에서도 한참을 더 걸어 올라가야 하는 집. 나는 이곳에서의 7년을 '계절의 결을 느끼는 삶'이라 포장해 왔지만, 지방에서 올라온 아버지의 눈에는 그저 '차가 못 들어가는 가난한 동네'일뿐이었다.


지난 주말, 아버지가 처음으로 내 성북동 방을 찾았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거친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서울 산다더니, 뭔 놈의 집이 등산 코스냐."

그 퉁명스러운 한마디에, 며칠을 공들여 청소한 내 마음에도 금이 갔다. 나는 짐짓 태연한 척 물 한 잔을 내밀며 말했다.

"여기가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얼마나 핫한 동네인지 아세요? 아빠 오시면 보여드리려고 코스도 다 짜놨어요."

나는 아버지를 이끌고 집을 나섰다. 나의 '성북동 변명'이 시작된 셈이었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낡은 집들이 빚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 담장 너머로 뻗어 나온 능소화의 붉은 자태,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이 즐비한 문화적인 풍경이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성곽길이었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명당에서 나는 의기양양하게 손가락으로 저 멀리를 가리켰다. 하지만 아버지의 시선은 먼 빌딩 숲이 아니라, 발밑의 갈라진 시멘트 계단에 머물러 있었다.

"길이 이래서야, 눈 오면 꼼짝없이 갇히겠다. 연탄 나르기도 힘들겠어."

아버지에게 성북동의 고요함은 '평화'가 아니라 '불편'이었다. 으리으리한 대저택들의 높은 담장을 지날 때도 아버지는 감탄 대신 혀를 찼다.

"담벼락 높은 거 봐라. 사람 사는 데가 아니라 요새네, 요새. 정 없다."

준비했던 미술관 관람은 입구에서 무산되었다. "다리 아픈데 뭣 하러 남의 집구석 그림을 보러 다니냐"는 아버지의 고집 때문이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발길을 돌렸다. 내가 사랑한 이 동네의 정취가, 평생 흙을 만지며 살아온 아버지에게는 그저 겉멋 든 허울처럼 보이는 것 같아 서운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점심때가 되어 나는 분위기 좋기로 소문난 파스타 가게 대신, 기사들이 자주 찾는 허름한 돼지불백 식당으로 아버지를 이끌었다. 칠이 벗겨진 낡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쌈을 싸던 아버지가 불쑥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래서, 학원강사는 요즘 좀 벌이가 어떠냐?"

성북동의 낭만을 와장창 깨트리는, 지극히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그냥... 입에 풀칠은 해요."

"풀칠만 해서야 원.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 들어가면, 이런 비탈길 말고 평지에서 살 수 있을 거 아니냐."

결국 참았던 말이 튀어나왔다.

"아빠는 오랜만에 와서 꼭 그런 소리를 해야 돼요? 저는 여기가 좋아요. 조용하고, 생각할 틈도 있고."

"생각은 무슨,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식당을 나와 묵묵히 걷다 보니 길상사에 닿았다. 원래는 찻집에 가서 단호박 빙수를 먹으려 했지만, 냉랭해진 분위기 탓에 우리는 말없이 절 마당의 느티나무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 풍경(風磬) 소리가 '뎅그렁, 뎅그렁' 하고 빈 마당을 채웠다. 그 소리가 유난히 맑아서였을까, 아니면 한낮의 볕이 너무 따가워서였을까. 아버지가 굽은 등을 펴며 한숨처럼 말했다.

"좋긴 좋네. 바람 소리도 들리고."

그 뜻밖의 말에 나는 슬그머니 아버지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아버지는 법정 스님의 글귀가 적힌 팻말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

"젊어서는 바빠서 못 보고, 늙어서는 눈이 침침해 못 본다더니... 네가 왜 여기서 산다고 고집부리는지 알 것도 같다."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구겨진 쌈짓돈을 꺼내 내 손에 쥐여주셨다.

"이걸로 그... 빙수인가 뭔가 사 먹어라. 내려갈 때 보니까 빵집도 있던데, 빵도 좀 사 먹고. 밥 굶고 다니지 말고."

투박한 손등 위로 검버섯이 내려앉아 있었다. 7년 전, 내가 짐 가방 하나 들고 서울로 도망치듯 떠나올 때보다 훨씬 늙고 작아진 손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느림의 미학'을 운운하며 감상에 젖어 있을 때, 아버지는 그 속도에 밀려나지 않기 위해 고향의 비탈길을 매일같이 오르내리셨으리라.

아버지에게 성북동은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내 자식이 고생하는 곳'이었다. 미술관의 아름다움보다 내 방의 웃풍을 먼저 걱정했고, 성곽길의 운치보다 가파른 경사를 오를 내 무릎을 먼저 염려했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버지에게 예쁜 풍경만 강요했다. 당신의 삶이 얼마나 가파른지도 모르면서.

우리는 심우장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아버지가 앞서 걸으며 지팡이 삼아 짚은 우산 끝이 보도블록에 닿는 소리가 '탁, 탁'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다음에 오실 땐, 저 아래 평지에 집 얻어 놓을게요."

나의 싱거운 농담에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피식 웃으셨다.

"평지면 어떻고 비탈이면 어떠냐. 사람 냄새나면 사는 거지."

아버지를 터미널로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다시 혼자가 된 성북동 오르막길을 오른다. 숨이 차오르고 종아리가 뻐근하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힘들다고 투덜거렸을 이 길이, 오늘따라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땀을 닦으며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걱정스레 내려다보던 서울의 전경이 붉은 노을 속에 잠겨 있었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헐떡이며 올라와 준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이 동네를 '낭만'이 아닌 '삶'으로 받아들인다. 비탈진 골목 어디쯤에, 아버지가 두고 간 투박한 위로가 묻어 있다. 그 어떤 달콤한 디저트보다 오래 남을, 씁쓸하지만 구수한 그 마음을 되새기며 나는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언덕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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