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같은 눈물 뒤, 무더위 같은 슬픔
원고내용이 '샘터'때와는 달리 거의 수정 없이 실렸어요!
올해의 마지막 선물 같네요❤️
봄비 같은 눈물 뒤, 무더위 같은 슬픔
6년 전 봄, 외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놀랍도록 담담했다. 오래도록 아프셨고, 그 고통의 무게를 옆에서 지켜본 탓에 차라리 편해지셨다는 감각이 마음 한구석에 있었다. 그러나 장례식장을 나서던 발걸음은 이상하게 무거웠다. 차창 밖 풍경이 낯설 만큼 선명해 보였다. 길가의 나무 하나, 흔들리는 바람 한 줄기조차 모두 이별의 그림자로 물들어 있었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아 어머니마저 췌장암으로 떠나셨다. 준비할 겨를도 없이, 감당할 틈도 없이 두 번의 부고가 겹쳐졌다. 나는 그때 알았다. 슬픔은 단 한 번의 파도처럼 몰려오지 않는다는 것을. 겹겹이 쌓여, 시간이 지날수록 무겁게 밀려온다는 것을. 봄비 같은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린 뒤, 무더위 같은 슬픔이 삶을 온전히 덮쳤다. 뜨거운 여름날의 더위처럼, 마음은 사소한 기척에도 숨 막히듯 무너져 내렸다.
그 뒤로 이어진 팬데믹은 내게 또 다른 고통을 더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애도조차 사치로 만들어버렸다. 하루하루 버티기 위해 몸을 움직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한 곳에 주저앉아 있었다. 집 안 공기는 눅눅했고, 벽지는 오래된 종이처럼 갈라졌다. 희망은 그 틈새로 서서히 흩어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연히 찾아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창문을 스치는 새소리, 저녁 노을빛이 벽에 길게 드리울 때의 고요. 그것들은 세상이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라는, 아직도 남아 있는 조용한 틈새가 있다는 신호였다.
무더위가 아무리 길어도 결국은 가을이 오는 것처럼, 가슴속 슬픔도 아주 조금씩 옅어졌다. 어느 날,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을 때 알았다. 더 이상 마음이 그 뜨거운 고통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는 것을. 숨이 쉬어졌다. 하늘은 높아졌고, 구름은 다시 맑아졌다. 그 아래에서 나는 처음으로 ‘평온하다’는 단어를 되뇌었다. 평화란 거창한 기적이 아니었다. 단순히 무사히 하루를 살아내고, 저녁 밥상 앞에 앉아 숨을 고를 수 있는 그 순간에 깃들어 있었다.
외할머니는 생전에 자주 말씀하셨다. “꽃이 지면 열매가 익는단다.” 꽃잎이 흩날리는 허망함 뒤에는 언젠가 손에 쥘 열매가 기다린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말씀을 흘려들었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슬픔은 꽃잎처럼 피었다가 지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조금 더 단단해진 나 자신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또 웃으며 말씀하시곤 했다. “할매는 니가 장가가는 것보구 딱 갈 거 데이.” 그 소원은 끝내 이루어 드리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그 말이 마음 한구석에서 오래 울린다.
어머니의 죽음은 여전히 내 안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일상 속에서 문득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가도, 곧 그 빈자리가 더욱 선명해진다. 부엌에 놓인 빈 의자, 식탁에 빠진 한 사람의 자리. 그것들은 사소하지만 잔인한 방식으로 부재를 각인시킨다. 그 허망함 속에서 나는 오래도록 길을 잃었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다. 꽃이 져야 열매가 맺히듯, 그 상실이 결국 나를 다른 삶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을.
꽃내음 다음에는 흙내음이 맡아진다고 하셨던 할머니의 말이 떠오른다. 화려한 순간이 지나면, 소박한 삶의 냄새가 찾아온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젊은 날의 열정과 눈물이 꽃내음 같았다면, 이제는 그 눈물이 말라버린 자리에서 흙내음이 피어난다. 된장찌개와 김치 한 접시가 놓인 밥상에서 풍겨오는 소소한 만족, 그 앞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 바로 그 단순하고 담담한 순간들이야말로 삶이 맺어낸 열매일 것이다.
나는 이제 고난 뒤의 행복을 기적처럼 바라지 않는다. 대신 평온한 하루를 더 깊이 음미한다. 무너질 듯한 무더위의 계절이 끝나고, 마침내 맞이한 가을 하늘의 맑음 속에서 나는 느낀다. 삶은 결코 영원히 평탄하지 않지만, 그 불안정함 속에서도 끝내 남는 것이 있다는 것을. 봄비 같은 눈물이 있었고, 무더위 같은 슬픔이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놓인 것은 작은 평화와 단단한 숨결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