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 학교>
개요 대한민국 다큐 131분
개봉 2007년 03월 29일
감독 김명준
1. Opening 오프닝
영화는 전진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완강한 폭설의 힘으로 시작된다. 눈이 점령한 도로는 통제되고 제설차의 분투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눈의 물량 공세 앞에서 서글픈 무기력함을 노출한다. 이 압도적인 백색(白色)의 장벽은 단순한 계절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이 다큐멘터리가 호명할 인물들이 처한 삶의 풍경이자 그들이 딛고 선 역사의 단면이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빙판길의 미끄러움을 염려해야 하고 운 좋은 날에는 엉덩방아로, 운 나쁜 날에는 골절을 각오해야 하는 삶. 그들은 그 불안을 일상의 문법으로 삼아 수십 년을 버텨왔다. 카메라는 이 막막한 눈길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비추며, 곧이어 이 영화의 제목이자 그들의 유일한 안식처인 '우리 학교'의 기원과 연대기를 건조하게 그러나 서늘한 무게감을 담아 써 내려간다. 그것은 눈 치우기를 포기하지 않는 자들이 써 내려간 불굴의 기록이다.
2. 재일조선인
-경계 위에 핀 '우리'라는 이름의 고독한 꽃
6천여 명의 동포가 점처럼 흩어져 사는 홋카이도, 일본 열도 속 가장 큰 섬에 오직 하나뿐인 조선학교. 김명준 감독은 관찰자의 오만을 버리고 3년이라는 시간을 그들과 섞여 살며, 선동적 구호 대신 생활의 결이 느껴지는 담백한 시선을 택한다. 잔설이 남은 교정, 학생들의 종종걸음은 계절의 물리적 추위와 그들이 처한 정치적 냉기를 동시에 환유한다. 새 학기를 맞는 교사들의 인사말에는 '민족', '우리말', '총련' 같은 단어들이 비장하게 얹혀 있다. 이는 단순한 언어적 습관이 아니라 망각에 저항하려는 실존적 안간힘이다. 한 학급이 채 열 명도 되지 않는 단출함, 초중고가 12년을 함께 비비며 자라는 이 농밀한 공동체 속에서 아이들의 얼굴은 투명하게 해맑다. 어른들의 얼굴에 서린 역사의 하중과는 대조적이다.
입학식의 풍경은 우리에게 묘한 이질감을 선사한다.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아이들의 야무진 각오는 수많은 반복이 빚어낸 매끄러운 인공물처럼 들리기도 한다. 여덟 살 아이의 박력 있는 말투에서 느껴지는 '어른스러움'은 기특함과 동시에 서늘한 거부감을 소환한다. 그들의 제스처와 억양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배제해 온 북한의 이미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치마저고리와 꽃봉오리, 그리고 특정 체제를 향한 교육. 그러나 감독은 이 이념적 외피 아래 숨 쉬는 아이들의 생동하는 얼굴을 포착함으로써 관객의 선입견을 무력화한다. 아이들의 웃음은 이념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들며, 정체성이란 논리적 증명이 아니라 함께 시간을 통과하며 맺어지는 관계의 총합임을 영화는 넌지시 웅변한다.
3. 타자(他者)로 산다는 것의 형벌과 찬란한 긍지
"일본에서 민족성을 지키는 것 하고 남조선에서 민족성을 지키는 것은 조금 질이 다르죠. 남조선에서는 내면적인 것을 잘 지키고 있으면 그것을 지키고 있다가 되지만 우리 일본에서 사는 재일동포들은 내면에서만 지키고 있어도 외면에 나오지 않으면 그것이 점점 내면에서도 침투해 가고 결국 일본사람하고 같이 되죠."
일본 학교를 다니다 편입해 온 학생들에게 동무들은 그림자처럼 붙어 '우리말'을 가르친다. 이 치열한 뿌리 찾기는 부모 세대로부터 전수된 투쟁적 유산이다. 일본 사회의 은밀한 차별과 노골적인 멸시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으면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싸운다. 그리하여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결코 안온할 수 없다. 그들의 해맑음 이면에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거대한 비극의 지층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에게 이들은 간첩이라는 공포의 기표이거나, 반공의 논리로 재단해야 할 불온한 타자였다. 그러나 그 섬뜩함의 실체는 인간을 구체적인 개인이 아닌 이념의 대리자로 치부했던 우리 안의 폭력성이 아니었을까? 폐공장에 터를 잡고 학교를 세우며 "빨갱이 교육"이라는 비난을 몸으로 막아낸 1세대 할머니의 증언 앞에서, 이념의 문법은 힘을 잃고 뜨거운 눈물이라는 인간적인 반응만 남는다.
4. 국경이라는 장벽
-귀향하지 못하는 마음들의 거처
운동회 날, 만국기 사이에 북한 인공기를 매다는 아이에게 감독이 묻는다. "이거 어느 나라 깃발?" 아이의 답은 간명하다. "우리나라 깃발." 이 청명한 대답은 분단된 조국의 논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형언할 수 없는 당혹감과 슬픔을 안긴다. 남한도 우리나라!, 북한도 우리나라! 이 담백하고도 명확한 태도 앞에 복잡한 계산을 내려놓고 그저 마음이 울렁이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이러한 일상은 혐오의 시선 속에 때때로 헝클어진다. 학교로 전화한 일본 우익의 폭언은 가차 없다.
"다음 주 중에 죽여버릴 테니까 각오해라. 기억해. 나는 우익인데 너희들 중에 한 마리 죽일 테니까 이런 돼지 같은 조선 놈들아. 너희들은 짐승들이니까 확 죽여버릴 거야."
교사들은 이 살벌한 전화를 일상의 소음처럼 견뎌낸다. 니이가타 항구에서 만경봉호를 가로막는 시위대와 비정한 선택의 기로. 성인이 되면 국적을 선택해야만 하는 법적인 형벌. 조국 방문 여행을 위해 한국 대사관을 찾았다가 "왜 국적을 바꾸지 않느냐"는 추궁을 듣고 발길을 돌리는 학생의 분노는 조국조차 그들에게 온전한 품이 되어주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만경봉호를 타고 떠나는 아이들을 보며 감독은 비로소 깨닫는다. 분단이란 교과서 속의 추상적 명제가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생살이 찢겨나가는 이별의 다른 이름임을.
5. 졸업
-관계의 고동소리를 들으며 세상 밖으로
이 영화의 졸업식은 단순한 이별의 의식이 아니라 한 영혼이 관계라는 이름의 견고한 갑옷을 입고 전장으로 나가는 출정식에 가깝다. 교사 부부의 임신 소식에 아이들이 "아버지!"를 외치며 달려 나가는 풍경은 지식의 전달을 넘어선 정서적 결속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찬란한 감동 뒤에는 졸업생들이 마주할 서늘한 현실이 웅크리고 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들은 다시 국적 없는 이방인이며, 우익의 위협과 제도적 차별이 도사리는 광야로 던져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들의 앞날을 비관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12년간 체득한 '우리'라는 감각의 힘 때문이다.
"존경하는 아버지 어머님들과 여러 선생님들, 우리 학교에서 마음껏 배운 우리 제21기 졸업생들은 오늘 정다운 우리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12년간 집처럼 여겨온 기숙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정말로 섭섭합니다. 지금 우리는 선생님들의 수업도 꾸지람도 듣지 못하는 섭섭한 심정과 12년간 그 모두는 전하지 못할 감사의 마음으로 벅차오르기만 합니다. 여기는 우리들의 영원한 모교입니다."
사회의 차가운 눈보라 속에서도 이 아이들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힘들면 언제든 돌아오라"라고 손을 내미는 스승이 있고, 자신의 이름을 정답게 불러주던 동무들의 온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관계가 남는 교육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차별이 그들을 지우려 할 때,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 당당한 자긍심을 꺼내어 스스로를 지켜낼 것이다. 영화의 시작이었던 그 막막한 폭설 속에서도 제설차는 멈추지 않았듯, 이 아이들 또한 서로의 어깨를 잡고 자신들만의 길을 내며 꿋꿋이 걸어갈 것이다. 그 뒷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목격한 가장 눈부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