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기사 채택 여덟 번째!

아이들의 눈망울이 민원이 될 때...

by 달빛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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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처스 라운지>가 남긴 지독한 질문


​해마다 3월이 오면 학교 담장 너머의 공기는 묘한 설렘과 팽팽한 긴장감으로 교차한다. 사교육 현장에서 1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지만, '새 학기'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는 여전히 어깨를 짓누른다. 누군가는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대하나, 나는 그 호칭 앞에서 늘 겸허함보다 부끄러움을 먼저 배웠다. 내게 진짜 선생님이란 지식의 단편을 전수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한 아이의 세계가 무너질 때 기꺼이 밑바닥을 받쳐주던 학교라는 거대한 우주의 마지막 보루였기 때문이다.


​최근의 교실 풍경은 그 경외심조차 사치로 느껴질 만큼 처참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마주한 일케르 차탁(İlker Çatak) 감독의 영화 <티처스 라운지>(The Teachers' Lounge)는 스릴러의 문법을 빌려 교육 현장의 실존적 공포를 서늘하게 묘사한다.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관왕을 차지하고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이 작품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영화는 한 여교사가 교내 절도 사건을 해결하려는 선의에서 시작하지만, 그 의도가 어떻게 시스템의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투명해진 교실, 사라진 얼굴들


​영화 속 노바크 선생이 마주한 불신과 감시, '무관용'이라는 차가운 원칙은 비단 독일만의 서사가 아니다. 작금의 한국 교실은 지독한 감정의 내전(內戰)을 겪고 있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실은 성장의 터전이 아닌 거대한 '법정'으로 변모했다. 이제 교사들은 수업보다 산더미처럼 쌓인 행정 업무와 잠재적 가해자로 몰릴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예기치 못한 안전사고의 법적 책임과 악성 민원을 피하기 위해 수학여행과 체험학습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심지어 훗날 범죄에 악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교사들은 졸업앨범에서 자신의 얼굴조차 지우고 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의 눈을 맞추는 대신, 서로의 '증거'를 수집하는 시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귀하려던 오랜 친구가 "아이들의 눈망울보다 학부모의 민원이 먼저 보일 것 같아 무섭다"며 사직서를 던졌을 때, 나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비로소 직감했다.



​기억의 뿌리, 그리고 교육자의 양심


​하지만 이 절망의 끝에서 나는 내 생의 뿌리가 되었던 선생님들을 복기한다. 사춘기 시절, 아무도 묻지 않던 나의 안부를 물어주던 그 눈빛. 정답이 아닌 길을 가더라도 "그 또한 너만의 문장이다"라며 다독여주던 그 온기. 그들이 내어준 정서적 기둥이 없었다면, 나는 15년이라는 시간을 가르치는 업으로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가르친다는 행위는 정보의 전수가 아니라 한 영혼의 곁을 지키는 숭고한 기다림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몸소 보여주었다.
​영화 속 노바크 선생님은 시스템의 함정에 빠져 고립되지만, 그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범인을 잡는 기술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연결'이었다. 학생 오스카가 내민 63유로의 억울함 앞에 그녀가 느낀 감정은, 비정한 시스템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아야 할 교육자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우리 현실도 마찬가지다. 교사가 단순한 행정직원으로 위축되는 지금,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촘촘한 매뉴얼이 아니라 서로의 인간성을 담보하는 '신뢰의 영토'이다.



​다시 시작될 '봄'을 위하여


​이제 갓 시작된 이 새 학기에도 누군가는 여전히 텅 빈 교실에 홀로 앉아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을 것이다. 삭막한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심기 위해 밤잠을 설칠 것이다. 나는 믿고 싶다. 15년 차 강사인 내가 여전히 '진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꿈꾸듯, 이 땅의 수많은 교육자가 여전히 벼랑 끝에서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고 있음을.


​학교는 상처받은 마음들이 모여 서로를 치유하는 마지막 보루여야 한다. 교육이라는 가치가 차가운 법률 용어에 갇히지 않도록, 이제는 사회가 그들의 곁을 지켜주어야 한다. 한 명의 교사를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이 우리의 방관이었다면, 그들을 다시 교단으로 불러 세우는 것 또한 우리의 따뜻한 지지여야 한다.


​새 학기, 교정에 핀 꽃들이 추위를 뚫고 고개를 내밀듯, 무너진 교실의 온도도 다시 뜨겁게 타오르길 소망한다. 모든 노바크 선생들이, 그리고 나의 친구가, 더 이상 두려움 없이 아이들의 눈을 바라볼 수 있는 세상. 그곳에서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봄'은 시작될 것이다. 나는 오늘 강의실의 불을 끄며, 내일 아침 교문을 들어설 수많은 '진짜 선생님'들의 건투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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