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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트 이스트우드 두 번째!

어둠 속에 벨이 울릴 때

by 달빛바람

개요 스릴러 미국 98분

개봉 1971년 미국 개봉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1. 오프닝

물결의 사투가 절벽을 부수 듯 이어지는 해안가. 멋진 별장에 바다를 내려다보는 키 큰 젊은 남자가 보인다.

그가 별장안을 돌아보니 그의 초상화인 듯한 그림이 보인다. 단추 달린 하늘색 셔츠에 움푹 파인 그윽한 눈매는 부드럽지만 굳게 다문 입은 그의 고집스러운 면모를 짐작케 한다. 그는 곧 멋진 오픈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린다. 신나는 배경음악이 흐른다. 그가 도착한 곳은 모던한 감각의 라디오 부스. 흑인 DJ가 턴테이블을 돌리며 저음의 목소리로 곡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와 마주 앉은 이가 바로 데이브 가버(클린트이스트우드). 그는 젠틀한 말투와 중저음의 목소리로 캘리포니아 전역에 알려진 인기 라디오 DJ이다. 매일 밤, 라디오 전파를 타고 퍼져나가는 그의 음성은 때론 연인의 귓가처럼 때론 낯선 이의 속삭임처럼 사람들의 고독을 달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매일 밤 어김없이 들어오는 청취자의 요청. "미스티를 틀어주세요(Play Misty for me.)" 이 한 문장이 예고 없이 파고든다. 영화는 그렇게 나른하고 낭만적인 재즈의 음표를 따라 비극의 수로로 진입한다. 이 곡은 어니 윌킨스가 편곡하고 삭스포니스트 어니 왓츠가 연주한 <Misty>다. 이 음악은 이후 내내 영화 속 긴장과 공포의 이면을 감싸는 주제곡으로 반복된다.


2. 데이즈 가버와 에블린

이 작품은 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처음으로 연출을 맡은 영화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청춘의 절정이자 은은한 색채의 성숙미가 감도는 시기이기도 하다. 데이브 가버라는 인물은 그 자체로 이스트우드의 또 다른 얼굴처럼 느껴진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깊은 고독을 품고 있고 연인들과의 가벼운 밀고 당김 속에 진짜 사랑 하나를 가슴에 묻고 살아가는 남자. 그리고 그 사랑의 이름은 토비(Toby)이다. 데이브의 여성 편력에 지쳐 끝내 떠나버렸던 연인이자 그의 유일한 진심이 향해 있던 사람. 우연한 재회와 애절한 설득. 데이브는 토비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쓰며 변화를 시도한다. 하필이면 그런 때에 그에게 매일 '미스티'를 틀어달라던 여인 에블린(Evelyn)과 엮이게 되고 데이브에게는 그저 일상적이었던 가벼운 만남이었지만 에블린에게는 운명의 시작이라도 되었는지 점점 집요하게 굴기 시작한다. 데이브의 일상은 점점 그녀의 집요한 스토킹에 의해 잠식당해 간다.


3. 스토킹

— 사랑의 탈을 쓴 감금의 서사

어쩌면 이 영화는 스토킹이라는 어두운 심연을 스크린에 처음으로 비춘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오랜 세월 ‘사랑’이라는 말로 에둘러 불려 온 그러나 실은 철저히 타인의 경계를 무시하고 무너뜨리는 폭력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낸 채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과 주연을 겸한 이 영화는 겉보기에 평범한 여성 팬과 라디오 DJ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균열을 따라가며 집착이 어떻게 폭력으로 기울고 사랑이 어떻게 감시와 억압이 되는지를 예리하게 해부한다.

이 영화는 <미저리 Misery(1990)>보다 거의 20년이나 앞서 스토킹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냈다. <미저리>가 소설가와 독자의 관계에서 비롯된 광기의 고리를 고립된 산장에서 펼쳐냈다면 이 영화는 일상과 자연 풍경, 재즈 음악 속에서 그 불안을 서서히 스며들게 한다. 에블린은 처음엔 다정하고 약간 집요한 여성으로 등장하지만 곧 그녀의 관심은 감시로, 감시는 위협으로, 위협은 자해와 폭력으로 증폭된다. 그녀의 집착은 ‘사랑받고 싶다’는 갈망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타인의 거절을 인정하지 않는 전능감과 관계를 소유물로 취급하는 왜곡된 감정이 도사리고 있다.

에블린을 연기한 제시카 월터는 차갑게 빛나는 눈빛과 정교하게 조율된 표정으로 흔들리는 심리와 이기적인 감정을 감정적으로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그녀의 연기는 관객에게 단순한 ‘악역’ 이상의 감정을 남긴다. 그것은 동시에 불안하고 슬픈 감정이다. 이 여자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진심은 어디까지였을까? 제시카 월터는 2021년 3월 24일, 향년 80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가 남긴 에블린은 여전히 우리 곁을 어슬렁거리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50여 년 전 만들어졌음에도 지금 우리의 현실과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관심’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스토킹이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한 집착이 결국 살인으로 끝나는 뉴스를 반복해서 마주한다. ‘관계’라는 말은 아직도 가해자에게 무기처럼 휘둘릴 수 있는 도구이고 피해자의 말은 너무 자주 ‘예민하다’는 말로 묵살되곤 한다.

대한민국에서도 2021년 10월 마침내 ‘스토킹처벌법(정식 명칭: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스토킹은 단순 경범죄가 아닌 형사처벌 대상의 범죄로 명확히 자리매김했다. 피해자의 지속적인 불안과 공포를 반영해 스토킹 행위를 ‘반복적·지속적 괴롭힘’으로 규정하고 구속 수사와 접근금지 등의 조치를 통해 실질적인 보호의 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법이 실효성 면에서 완전하다고 보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접근금지 조치가 내려졌음에도 피해자를 다시 찾아간 가해자에게 사후 처벌만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도 ‘명백한 위협’이 가시화되기 전까지는 체포나 구속이 어려운 경우도 존재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미 일상은 침범당하고 공포는 만성화되었는데 법은 그 ‘사건’이 벌어지기를 기다리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DJ 데이브가 처음 에블린을 밀어내지 못했던 이유는 그녀의 감정이 위험하다고 판단되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 감정은 처음엔 호의처럼 보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사회도 비슷하다. 누군가의 ‘호의’를 의심하기란 쉽지 않다. 거절은 죄책감을 낳고 조심스러움은 침묵을 부른다. 그리고 그 사이 누군가는 조용히 경계를 넘어선다.

이 영화는 이 불편한 진실을 침묵 없이 직시하게 만든다. 피해자의 불안은 망상이 아니라 현실이며 스토킹은 사랑의 실패가 아니라 명백한 폭력이라는 점을, 무엇보다 이 영화는 피해자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는다. 감정의 실핏줄 하나하나까지 조명하며 피해자가 끝내 스스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두려움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이, 왜 그토록 쉽게 누군가의 삶을 위협하는 칼로 바뀔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 물음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오래 가슴에 남는다. 마치 스피커를 타고 울리는 재즈처럼 아름답고도 불길한 멀어지지 않는 잔향으로.



4. 스타일

카메라는 종종 멀리서 인물을 포착하다가 점점 가까워진다. 이스트우드는 인물과 사건 사이의 심리적 간극을 시각적으로 설계해 낸다. 줌인과 줌아웃, 천천히 오버랩되는 장면 전환, 그리고 정적을 깨는 음악의 삽입. 모든 것이 유려하면서도 불길하게 얽혀 있다. 그는 당시 기준으로도 대담한 연출을 시도했으며 장면 하나하나가 계산된 감정의 파편처럼 느껴진다.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요소는 바로 ‘모순과 대조’이다. 낮고 착 가라앉은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와 기쁨도 분노도 유리가 깨지는 듯한 하이톤의 여주인공의 대조는 공포심을 더한다. 그리고 공포스럽고 날 선 상황 후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 위 남녀의 에로틱하고 진한 애정 신. 이 장면은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경계처럼 느껴지며 여기서 흐르는 곡은 영화의 대표 OST로 기억되는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이다. 이 노래는 극 중 인물들의 감정선을 완벽하게 감싸 안으며 영화와 함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관객은 이 감미로운 순간에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왜냐하면 앞서 경험한 공포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어딘가에 숨어 있고 그 그림자가 언제 다시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모순적이고 불균질 한 요소는 이 영화를 한층 고급스럽게 만든다.



5. Ending 엔딩


마지막 장면. 절벽 아래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흐르고 있는 곡은 여전히 'Misty'. 에블린이 가장 사랑했던 노래이자 가장 집착했던 사랑의 주제가. 영화는 첫 장면과 수미상관을 이루며 마무리된다. 정적 속에 남은 것은 사랑의 폐허 그리고 고독의 여운뿐이다. 이 영화는 이스트우드의 연출 데뷔작으로 각본은 조 히암스(Jo Heims)가 맡았다. 그와는 오랜 인연이 있었고 이 이야기는 그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이스트우드는 이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죠. 심리적 압박이 숨통을 조이면서도 현실적으로 다가오니까요. 이 영화는 일종의 ‘사이코’적 요소를 지닌 작품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상의 공포를 다루고 있어요. 바로 그 점이 저를 사로잡았죠.

— 클린트 이스트우드, 『거장의 숨결,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음산책, 2018년

음악은 디 브로크(Dee Barton)와 어니 윌킨스(Ernie Wilkins)가 참여했으며 어니 왓츠(Ernie Watts)의 색소폰 연주는 영화의 감정선 전체를 가로지르는 선율을 제공한다. 특히 'Misty'는 1954년 어롤 가너가 작곡한 재즈 피아노 발라드로 에벌린의 집착과 데이브의 고독을 감각적으로 감싸 안는다.

이 영화는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다. 그저 누군가의 집 창문을 두드리고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린다고 해서 스릴러라 이름 붙일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파열되는 인간의 심리 그리고 그 파열음을 묵묵히 바라보는 또 다른 자아의 잔상에 관한 영화이다.
밤마다 울리는 전화벨은 단순한 경고음이 아니다. 그건 사랑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가오는 광기의 숨결이며
또한 외로움이라는 심연에서 길을 잃은 이의 마지막 신호이기도 하다. 에블린의 사랑은 광기와 종이 한 장 차이로 맞닿아 있고 그 광기마저도 누군가의 결핍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첫 연출작부터 그만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는 불안정한 자아와 파편화된 욕망 사이를 유영하는 인간의 마음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그것을 마치 오래된 레코드처럼 쓸쓸하고도 나직한 리듬으로 읊조린다. 음악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지금도 귀를 기울이면
"Play Misty for me"라는 목소리가 불 꺼진 방 한켠에서 낮은 숨결로 되뇌고 있을 것만 같다. 그 한마디에 숨어 있는 애원, 매혹, 두려움, 그리고 파멸의 기운이 영화 전체를 적신다. 이스트우드의 세계는 이 첫 작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총과 폭력, 권위의 상징이 아닌 인간 내면의 뒤틀린 고요를 들여다보는 시선으로. 그는 거친 폭력성 뒤에 숨어 있는 부서지기 쉬운 감정의 얼굴을 보여주는 데에 놀라운 감각을 지녔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난 후에도 우리 마음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벨이 울린다.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무서운 신호음!


스토킹 처벌법 실효성 의문!


반의사불벌 조항 없애고

초범이라고 해도 무조건 기록을 남기고 피해자에게

접근 못하도록 경찰이 적극적 조치! 48시간 경찰서 조사!

필요시 가해자 위치 피해자에게 알려야!


https://times.postech.ac.kr/news/articleView.html?idxno=2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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