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앞두고
정확히 출근할 일수가 18일 남았다.
25개월의 휴직이 3월부터 시작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당연히 육아를 위해 쉬는 것이라서 완벽히 청년의 때처럼 완벽한 휴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 가족.. 와이프와 우리 딸 2명과 함께 지내는 삶은 내 인생에 제일 행복한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25년도는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하고, 26년에는 와이프는 복직하고 나 혼자 두 명에 아기를 돌볼 생각이다.
육아휴직을 함께 함으로써 분명 돈은 더 적게 벌겠지만, 그보다도 우리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들을 택했다. 또한, 첫째가 어린이집을 24개월에 보냈으니 둘째도 비슷한 시기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24개월 정도 되어야지 아이의 의사표현이 원활해서 소통이 그즈음에 보내는 게 아이들 정서상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첫째와 둘째가 어느 정도 컷을 때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제일 중요한 가치를 뒀기에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직장 동의하에 육아휴직이 가능한 것이지만, 우리 가정이 경제적으로 많은 보수를 벌었던 것이 아니기에 결혼하고 나서부터 더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아꼈다. 최소한의 소비를 하고 어떤 소비를 하기에 앞서 이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지 점검했다.
그렇게 21년부터 6월부터 지금까지 그 생활습관을 유지했다.
한마디로 일을 쉬더라도, 보수가 적더라도 충분히 대비한 탓에 육아휴직이 가능했다고 싶다.
신용카드를 쓰더라도 모두 즉시결제로 결제하였고 할부는 절대 하지 않았다. 큰 목돈이 들어갈 것을 대비하여 비상금 통장이 있어서 이것 또한 일시불로 결제했다.
여행은 1년에 몇 번 계획을 하였고 해외여행은 가지 않았다.(코로나 시기에 결혼해서 못 간 것도 있다..)
소비를 아꼈을 뿐이지 가족들과 지인들과 관계는 잘 맺고 있었다.
그리고 경제적인 것뿐만 아니라 아빠가 아이들과 애착관계형성을 위해 밤잠을 책임지고 살림을 도맡아 하였으며, 주양육자를 와이프로 설정하고 와이프가 생각하는 교육관을 전적으로 지지하며 따라왔다.
그 믿음이 있었기에 내가 혼자 26년도에 육아휴직을 하더라도 괜찮겠더라고 와이프가 동의해 주었다.
잘 기르고 키우고 싶은 마음에 주변의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와이프 혼자 24개월 정도 혼자서 키웠고.. 26개월째 출산도 하였다. 와이프의 희생이 없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2월 한 달간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잘 돌아봐야겠다. 나에게도 와이프와 우리 둘 딸에게도 귀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앞으로 펼쳐질 일들이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