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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Oct 01. 2024

힙합계 나훈아 보러 갔다가,

RAP BEAT 2024(0921~22, 송도) 관람 후기

힙합은 자유다. 힙합엔 주인 없이 떠도는 비트 위에 랩을 뱉으면 음악이 되는 평등함다. 래퍼는 직접 가사를 써야 한다는 당위적 주체성 있다. 야자하면서 몰래 힙합을 듣곤 했다.


그 시절 좋아했던 국내 래퍼들존경하는 래퍼로 대개 NAS를 뽑았다. 그의 데뷔앨범 『Illmatic』은 힙합 교과서라고 했다. 'NAS가 대체 누구길래'라는 의문을 가지고 『Illmatic』을 들다. 비트 사이사이로 쪼개 넣는 라임이 인상 깊었다. 듣는 맛이 있다. 드렁큰타이거 <짝패>에 나오던 'Jam like a TEC with correct techniques',  'The mic is contacted, I attract clientele' 출처도 『Illmatic』 수록곡 <It Ain’t Hard To Tell>이다. 스네어 앞뒤로 가사를 쪼개 라임을 꽂아 넣는 타블로 영어랩도 NAS의 영향을 받은 거였다. SAN E도 NAS를 거꾸로 한 랩네임이다. NAS는 힙합계 나훈아였다.


동생이 NAS가 출연한다며 <RAP BEAT 2024>에 가자고 했다. 사촌동생까지 셋이서 얼리버드 표를 예매했다. 시끄럽고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지만 NAS가 오는데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송도까지 와준다니 감사합니다.

정화 누님은 D.I.S.C.O 간주 부분에 랩을 했다.

스윙스, 이센스, 비와이, 저스디스, 이센스 등 많은 래퍼들이 RAP BEAT 2024 게스트이자 NAS 공연 관객이었다. 스윙스는 공연 내내 들떠있었다. 자신 역시 NAS의 팬이고 자신의 음악에 큰 영향을 준 NAS 공연을 본다고 생각하니 설렌다고 거듭 강조했다. 자신도 공연을 마치고 VIP석으로 내려가 NAS 공연을 즐길 예정이라고 했다. 게스트가 아니지만 NAS를 보러 온 딥플로우, 허클베리피는 가리온과 함께 무대에 올라 <작두>를 불렀다.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많은 국내 래퍼들이 RAP BEAT를 몰래 관람했을 것이다.


이센스는 한술 더 떴다. 공연 내내 high 상태였고 스스로도 NAS 때문에 지금 평소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센스의 흰자가 인상적이었다. 약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삭발을 고수하는 이유가 탈모때문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저스디스는 라이브를 잘했다. 역시 공연형 래퍼다. 저스디스도 NAS 때문에 신이 났는지 자기 차례가 오기도 전에 작은 무대에 즉흥적으로 올라 한참 공연 했다. 비와이도 역시 라이브를 잘했는데, 매번 공연에 오를 때마다 자신을 처음 보는 관객을 팬으로 만들고 내려오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박재범은 첫날 피날레를 책임졌다. 30여분 배정받은 다른 뮤지션들과는 달리 NAS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1시간이나 배정받았다. 그는 국보급 성대를 가지고 있으며 보컬, 랩, 댄스에 몸매까지 완벽한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둘째 날 NAS 직전에 공연을 한 패기로운 래퍼는 기리보이였다. 나에게 이번 공연은 NAS와 함께 기리보이를 보러 온 것이기도 했다. 기리보이의 라이브가 불안하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3단 고음을 하는 가수도 아닌 래퍼의 라이브가 불안하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기리보이는 롯데리아 같은 래퍼다. 침착맨 말에 따르면 롯데리아는 항상 대중의 기대를 충족한다. 롯데리아가 기상천외한 시도를 거듭할수록 대중들은 롯데리아의 맛에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신제품의 맛이 좋지 않아도 롯데리아는 대중의 기대를 충족한다. 예상외로 맛이 좋으면 좋기 때문에 롯데리아는 대중을 만족시킨다. 옆에 여성 팬은 기리보이가 말만 하면 귀여워>_<...라고 읊조렸다. 기리보이는 그런 래퍼다. 공연장이 셋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기리보이 공연을 보고 NAS 무대를 보려면 앞자리를 포기해야 했다. 럼에도 기리보이 공연에는 사람이 많았다. 예상보다 남자 팬도 많았다. 내가 본 공연 중에 NAS를 언급하지 않은 래퍼는 기리보이가 유일했다.  


기리보이 : 여기 나 같은 찐따들 많을 거 아니에요~ 다들 파이팅!!

나 : 파이팅~~~!!  



NAS는 일요일 밤 아홉 시 십 분이 넘어서야 무대에 올랐다. 무대 효과도 엄청 주고, 비트소리도 키웠다. 『Illmatic』 비트가 송도 밤하늘을 가득 채웠고  NAS는 50살이 넘은 나이에도 에너지 넘치는 무대를 선보였다. 관객들은 떼창을 선물했다. 어디에선가 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을 향한 환호를 만끽하는 쾌락이 마약 다음으로 크다는 연구결과를 본 적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돌들이 큰 공연 다음에 공허함을 느끼고, 쉽게 마약에 빠지는 것인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향한 함성을 무대 위에서 경험한 가수들은 얼마나 벅찰까.

힙합계 나훈아 입장


락커들도 축제에 함께 했다. 체리필터는 낭만고양이로 ROCK NEVER DIE를 과시했으며, 넬은 훌륭한 라이브를 선보였다. 단독으로 큰 공연장을 혼자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밴드답게 넬 무대만 보러 온 팬들도 많았다. <기억을 걷는 시간>은 봄에 들어왔는데 가을에 라이브로 들어도 나쁘지 않았다. 『let's take a walk』앨범 버전 곡들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번 공연NAS보다 큰 소득은 장기하였다. 그는 타고난 딴따라였다. 접신한 듯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 딴따라는 흥이 넘칠수록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신흥 교주 같았다. 그가 예술욕보다 속세욕을 부렸다면 엄청난 사이비 교주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느낌을 준 무대는 드렁큰타이거 이후로 처음이다.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다. NAS를 보러 왔다가 장기하 팬이 될 줄은 몰랐다. 하긴 장기하는 싸구려 커피를 마실 때부터 힙합이었다. 장기하 단독공연을 보러 가야겠다.

"ㅈㄴ 뛰어!!!" 라고 외치는 장기하
박수를 유도하는 장기하
폭죽용 노랑끈을 주워 칭칭 감은 장기하




탁 트인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가을하늘을 마음껏 다. 야외임에도 드럼과 베이가 심장을 바로 때다.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면 일어나 공연을 보고, 중간 정비시간에는 하늘을 보다 책을 봤다. 그러다 잠이 오면 잤다. 실내 공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였다. 전국 곳곳에 비가 왔지만 송도에는 청량한 하늘과 둔탁한 비트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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