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시민의 불복종』 감상문

by 주경
EBS 지식채널e <총장의 변(辯)>

故김준엽 총장의 좌우명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그가 역사에 살면서 좌우명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학도병으로 차출되었다가 탈출해 광복군으로 활동하며 일제에 저항했다. 총장이었던 군사정권 시절에는 학생자율화를 지원하다 사퇴당했다. 훗날 노태우가 총리직을 제안했으나 그는 전두환에게 굽실거릴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는 그날 일을 일기장에 적었다.


..."나는 교육자다. 이 나라 민주주의를 외치다 투옥된 많은 학생이 아직도 감옥에 있다. 제자가 감옥에 있는데, 스승이라는 자가 어떻게 그 정부의 총리가 될 수 있겠는가. ...지식인들이 벼슬이라면 굽실굽실하는 풍토를 고쳐야 한다. 좀 건방진 말이긴 하나, 나 하나만이라도 그렇지 않다는 증명을 보여줘야겠다."...

-『장정』 4권 중에서-

정부는 그에게 총 12번의 공직을 제안했으나 그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모두 거절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입각을 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에 산 사람들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실존주의적 결단을 내린다. 역사에 산다는 것이 현실을 초월하여 주변 압박에 굴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며 쫒은 가치에는 본질이 담긴다. 그렇기에 시공간을 초월해서 전해오는 고전에는 대개 본질적 가치가 담겨있다.


<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도 역사에 산 사람이다. 그는 당시 미국 정부가 일으킨 멕시코 전쟁이나 노예제도에 대한 비폭력 저항으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하고 감옥에 갇혔다. 그러나 타인이 세금을 대신 내주는 바람에 '안타깝게' 출소했다. <시민의 불복종>은 이 투옥사건에 대한 연설문을 다듬은 글이다.


이렇게 보면 소로우는 전형적인 반사회적 인물인 것 같지만 그는 공동체를 사랑했고 좋은 이웃이 되고자 했다. 주민들의 교양을 향상하기 위해 사설 학교를 설립하여 공동체에 기여했다. 물론 그는 주 정부에 속한 교사가 되길 거부하며 직접 학교를 세우고 주정부 지원금이 아닌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생활했다.


그는 왜 인두세 납부를 거부했는가. 그는 자신이 낸 세금이 전쟁터의 총이나 총을 쏠 사람을 사는 것을 악에 동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자신이 세금을 내는 것도 타인이 자신의 세금을 대납해 주는 행위는 공적인 선을 훼방한다고 여겼다. 그는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많은 사람들이 멕시코 전쟁이나 노예제도와 같은 폭력적인 정부정책에 대한 납세거부라는 비폭력적인 저항에 동참할수록, 시민은 자신의 양심에 걸맞는 정부를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왜 감옥에 갇히길 선택했는가. 그는 양심에 반하는 국가 아래서 사는 것보다 차라리 감옥이 자유롭다고 여겼다.

'사람 하나라도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있을 곳은 역시 감옥이다.'...또 현시점에서 가장 떳떳한 장소는 감옥이다. 주는 법령에 의해 그곳에 그 사람들을 몰아 가두었지만,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원칙에 따라 스스로를 추방했던 것이다. 도망 노예나 가석방된 멕시코인 죄수나 자기네 종족이 당하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 온 인디언이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은 감옥이다.'...


그는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정부에 충성하기를 거부하고 실질적으로 물러나 국가를 자신의 양심과 동등하게 놓고 체제를 거부했을 뿐이다. <시민의 불복종> 마지막 문단이 이를 알려준다.

'나는 마침내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할 수 있고 개인을 한 이웃으로 존경할 수 있는 국가를 상상하는 즐거움을 가져본다.'


<시민의 불복종>이 쓰인 19세기 중반에 개인이 국가 체계와 자신의 양심을 동등하게 두었다는 발상부터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다. 책 말미 '헨리 데이빗 소로우 연보'에 따르면, 그는 44세 죽음을 앞둔 시절 친지에게 보내는 편지에 '살아있는 순간들을 최대한 즐기고 있으며 아무런 회한이 없다.'라고 썼다. 본질적 가치를 추구하며 역사에 산 사람은 살아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은 이후의 순간에도 고전이 되고 또 귀감이 되어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긴 역사를 볼 때 현재 나는 멕시코 전쟁이나 노예제도 같은 악에 동조하고 있진 않을까. 역사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현실에 매몰된 내 삶은 얼마나 측은한가.' 자각한다. 자꾸 숲 속 오두막 같은 고전으로 도망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