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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Apr 01. 2023

거져 준다고 함부로 먹으면 안되는 것

"미안합니다."

부딪친 것인지 아닌지 애매한 그 순간, 중절모를 쓴 노신사 나긋하고 정중하게 사과한 후 지나다. 스쳐가는 할아버지를 빤히 봤다. 지하철이든 엘리베이터든 버스든 내가 부딪혔음에도 아님 그 외에 무례한 상황에서 사과하는 어르신은 없었기 때문에. 나긋함과 정중함에서 그간 삶이 보였다.


나이만큼 거저먹는 것은 없다. 숨만 쉬어도 먹으니까. 식은 죽 먹기보다 식은 죽먹기다. 그래서일까. 나이를 아무렇게나 먹는 사람들이 있다. 나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담뱃불 끄라고 하는 상대에게 내 돈 내산 담배인데 무슨 상관이냐면서 억지를 부리는 영상 속 그는 젊어 보였고, 장소는 지하철 열차 안이었다. 내가 내 집에서 피는 담배인데 왜 밖에서 피워야 하냐고, 그깟 담배 냄새가 무슨 피해냐고 되묻는 어느 아파트 주민의 기고만장은 이해하려고 할 수록 머리 아프다.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가정교육을 판타지로라도 받았다면 적어도 말귀는 알아들을 텐데. 아직 배우지 못해 모르는 아이는 가르치면 되는데,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성인은 개선 여지가 없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그들과 등진 행선처럼 살길 바랄 뿐이다.


나이를 개떡같이 먹어도 절대 권력을 손에 쥐는 공간이 있다. 바로 군대다. 입대 시기에 따라 철저하게 서열이 결정되고 고정된다. 특히 전경 조직에서는 일주일 단위로 선 후임을 구분한다고 한다. 나이보다 더 적나라하다. 적나라한 절대복종의 생태계 아래 구타를 포함한 부조리가 만연한 그곳에서, 내 친구 M(김치 굽기 장인)은 본인이 선임들에게 당한 악습을 끊어 냈다. M의 후임들은 본인들이 당하지도 않은 악습들을 부활시켜 M을 경악케 했지만. 여하튼 훗날 M의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 미화해서 말해줄 예정이다. 경색돼 있을 사춘기 아들과 중년의 아버지 관계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군대에서 알량한 생애 첫 권력에 취한 너드들은 사악하지 않은 게 아니라, 사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못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가, 하는 것과 안 하는 것만큼 클 때가 있다. 오히려 너드들이 더 쉽게 취한다. 술을 처음 마신 수학여행처럼 정신을 못 차린다. 하지만 너희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고.  


너드는 사회에도 당연히 있다. 군대는 특수 상황을 가정하고 훈련하는 공간이기에 입대시기로 결정되는 계급에 따라 상명하복이 불가피하다지만 사회에서는 그게 왜 당연한지 의문이다. 필요이상의 권력을 가진 나이가 사회를 경직케 한다고 생각한다. 보호해야 할 미성년이거나 우대해드려야 할 노인이 아니면 상호 존대하는 상황에서 상대 나이가 왜 궁금한가. 타짜 정마담의 말을 허투루 들어선 안된다. 성인 모두는 체험판이 만료된 실전 플레이어다. '너 몇 살이나 먹었어'는 '너 내가 누군지 알아' 못지않게 짜치는 말이다. 대체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건지 이해할 수 없는 너드들을 대우해 주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다. 우대해 줄 순 있어도. 


나이 신중히 먹어야 한다. 한 번뿐인 내 인생을 내주고 먹는 것이 아닌가. 한 살 한 살 제대로 먹어야 한다. 거저 먹여줘도 꼭꼭 잘 씹어 넘겨서 제대로 소화해야 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으니 더욱 똑바로 먹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가는데 이제 위태하다. 나이 어린 사람의 나이 위에 서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난 만큼, 나이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았다. 어려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은 수두룩하다. 경험상 탁월과 통찰 그리고 미덕은 나이에 비례하지 않다. 세상은 넓 나이와 무관한 형, 누님들 많다. 마땅히 존중해야 하고 존경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고백건대 이기심 때문이다. 내가 존중하고 존경하는 타인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모든 편협은 나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심지어 나이에서 오는 편협은 내가 기여한 바도 없어 명분도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 나이에 갇히기 쉽다. 나는 틀릴 수 있고 내 신념은 아집에 불과할 수 있다.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 당연한 것이 합당한 것인지 의심해야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나를 의심하기가 어려워진다. 자기 합리화는 쉬워지아집은 신념 뒤에 웅크린 채 굳어진다. 나이를 먹을수록 남의 나이에도 갇히기 쉽다. 특히 나보다 어린 타인을 나이로 재단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나를  대우해 주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다. 고마워해야 한다. 나를 위해. 벼슬에 올라탄 기고만장은 대개 구리지만, 나이를 포함한 모든 귀속지위 벼슬이 되어서는 더안된다. 비굴하게 조아리지 말고 정당하게 숙여야 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중절모 노신사가 떠오른 것은 지난 수요일 출근길이었다. '미안합니다'를 따라 해 본다. 그때가 대략 몇 년도 인기억안 나지만 억양 생생하다. 편협에 갇혀 나아가지 못한 채, 내세울 게 나이뿐인 사람이 될까 두려워 겁이 나는 나는 '미안합니다'를 몇 번이고 중얼거린다. 진짜 어른의 나긋함과 정중함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 표지 사진 : http://www.digita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9331(꼰대? 문제는 나이가 아니라 '낡은 생각', 디지털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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