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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경 Apr 09. 2023

어른들의 세상은 이미 갔다.

H.O.T. 헌정글

이게 다 H.O.T. 때문이다.

사람은 감성을 다채롭고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시기가 있다. 때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생 때까지다. 이 시기가 그 사람의 원형을 결정하는 때다. 한 사람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때다. 이 시기에 아름답고 서정적인 시들을 많이 읽게 하고 외우게 하면 아이들의 심성도 맑게 된다. 이 시기에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게임을 한 아이와 아름다운 시 몇 편이라도 외우는 아이는 나중에 확연히 다른 삶의 모습을 걷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감정의 차이 때문이다.

나의 원형은 세기말-세기초에 결정되었고, 당시 한국 10대들의 우상은 H.O.T. 였다. 열한살의 나는 시는 멀리하고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H.O.T. 는 1996년 <We Hate All Kinds of Violence...>라는 앨범으로 데뷔해, 학교 폭력, 반전, 서열화, 씨랜드 참사, 장애인 차별 등 사회 비판적인 노래들을 타이틀곡으로 내세우며 활동했다. 타이틀곡 외에도 독립, 소년소녀 가장, 마약퇴치, 이산가족 등 사회 문제를 주제로 한 수록곡들로 앨범을 채웠다. 다른 가수들의 사랑 노래가 개인감정에서 보편적 정서를 끌어내는 수필이었다면, H.O.T. 의 노래는 10대들을 선동하는 대자보였다. '어떻게 사랑이 변해요' 보다는 '세상은 좀 변해야지'라고 외쳤다. H.O.T. 의 노래들은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비판한 대중문화와달랐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문화산업 거대한 체계로서 우리 삶을 지배한다지적했다. 자극적이고 획일적인 대중문화는 대중이 깊게 사고하는 것을 막는다. 노동 지친 대중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대중문화를 소비하며 재충전뒤 다시 노동을 반복한다. 문화산업거대자본을 토대로 문화를 있는 힘껏 상품화하기 때문에 대중이 문화를 즐긴다는 것은 곧 소비한다는 것이다. 산업이 된 문화는 체제 유지를 위한 선동가로 활동한다. 상업 고는 대중에게 소비가 곧 행복이라고 주문을 건다.  문화산업은 대중의 소비 부추기고, 대중은 철저히 소비로 전락한다. 대중은 소비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비판의식 없이 체제 안에서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체제유지에 기여한다. 시민은 대중이 되고 대중은 소비자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힙합은 안 멋지다는 이찬혁의 말에 공감한다. 허쓸허쓸-플렉쓰-허쓸허쓸-플렉쓰 뫼비우스 띠 안의 래퍼들. 익숙하지 않은가. 대학 새내기 때 쓴 힙합의 대중화에 대 에세이가 무색하게도, 막상 힙합이 대중되니 달갑지 않다.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태어나 명반 Illmatic을 낸 Nas 멋있다. 차별과 편견을 부수고 성공하여 아이들 손에 커피향 대신 꿈을 쥐어* 주기 위해 콩고에 학교를 설립한 Nas가 내겐 힙합스럽다. PDs FUCK YOU, TVs FUCK YOU, 심의s FUCK YOU, FUCK THE WORLD! 라고 외치는 고집쟁이 드렁큰 타이거힙합의 이유다. 물론 내게 힙합은 자유니까 플렉쓰무새도 힙합이다. 다만 멋지지 않을 뿐.

* 타블로의 출처 가사 인용


반면 H.O.T. 의 노래들은 어린 나에게 세상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고 나는 변함없이 그 가사에 공감한다. 특히 기존 가치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역설했던 니체의 문장을 접할 때마다 H.O.T. 의 노래 <We are the future >가 떠오른다. 니체는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버멘쉬(초인)의 삶을 제시했다. 위버멘는 기성질서와 권위에 무조건 순응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데올로기를 세우는 자다. 위버멘쉬는 고난과 고통 통해 성장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고자 저항한다. 


H.O.T. 의 가사들이 이제는 익숙한 SMP*(SM Music Performance)의 시초고, 세기말 분위기와 10대 특유의 반항심을 바탕으로 한 장삿속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영향을 많이 받았다.

* 어둡고 파괴적이며 퇴폐적인 분위기의 사회비판적인 가사이거나 듣는 사람들이 알 수 없을 정도로 매가리 없는 가사를 바탕으로 하는 SM 아이돌의 콘셉트


어른들의 세상은 이미 갔다고 외치던 내가 어른이 된 지금어떤 세상이 되었고 나는 어떤 어른이 되었.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4일 전에 '양호' 판정을 받은 다리가 무너다. 여전히 세상엔 낡아빠진 것,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 난무한다. 세기말 외것과는 다르게 내가 모든 세상의 틀은 바꿔 버리지못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틀은 고리타분해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남에게 똑같은 삶을 강요하지 않는다. 남 인생에 참견하지 않는다. 항상 이런 모습으로 살 수 있을 생각하면서, 내 안에서 꿈틀대는 새로운 세계를 키워나가는 나는 여전히 10대들의 승리를 응원한다.


시 아이들은 시와 함께 커야 하나보다. 



* 위버멘쉬가 되라고 선동하는 음악 : H.O.T. 의 <We are the Future>

https://youtube/jvN8 q1 zrAWc



* 글감을 준 인용글 출처 : 나 세상 떠날 때 태양을 남겨 놓으리

https://brunch.co.kr/@jollylee/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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