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부모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중
게임이라는 엔터테인먼트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대략 80년대부터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렇게 역사가 짧은 놀이이기에 게임에는 젊은이의 놀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도 그런 느낌은 제법 남아있긴 합니다만, 오락실에서 갤러그를 즐겼던 세대는 슬슬 손주를 봐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습니다. 피시방에서 스타크래프트로 밤을 지새웠던 세대도 제법 나이를 먹은 자녀가 있는 경우도 많죠.
그리고 이런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지금도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 비해서 게임도 함께 나이를 먹는달까, 마치 숙성된 와인처럼 어느 정도 경륜이 있어야 그 재미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물건들이 적잖이 나오고 있더군요.
최근 발매되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캡콤의 ‘프래그마타’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바이오 하자드(레지던트 이블) 등등 월드 클래스 히트작을 다수 가진 캡콤에서 선보인 완전신작이죠. 이 게임을 만든 조용희 메인 디렉터가 이름으로 짐작이 가듯 한국 사람이기에 한국의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제법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죠.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월면 기지에서 벌어진 모종의 사건을 해결하는 휴 윌리엄스를 조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휴는 달에서 소녀의 외모를 가진 안드로이드 다이애나와 함께하며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되죠.
게임 자체는 흠잡을 곳이 없이 잘 만들어졌습니다. 세계적인 개발사인 캡콤의 게임답게 훌륭한 그래픽과 탄탄한 액션성, 그리고 빈틈없는 즐거움으로 무장하고 있는 아주 훌륭한 타이틀입니다. 그런데 이 게임에는 또 한 가지 호평받는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딸바보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다이애나라는 안드로이드는 딱 봐도 귀엽게 생긴 소녀입니다. 그리고 행동도 외모에 걸맞은, 호기심 많고 장난기 넘치는 개구쟁이 꼬마 아가씨죠.
여기서 핵심은 ‘개구쟁이 소녀’라는 부분입니다. 다이애나가 보여주는 모습은 육아를 해보신 분이라면 너무나 현실감 있게 느껴질,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아이들의 그것입니다. 실제로 제작진은 육아경험이 있는 동료직원들의 조언과 도움을 많이 받아가며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이애나라는 캐릭터에게서는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억지스럽달까 귀엽게 보이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진짜로 어린아이 같은 모습들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물론 과거의 작품들에서도 귀여운 소년소녀 캐릭터들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생동감 있는, 진짜로 유치원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어린아이의 모습을 게임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것에 저는 말 그대로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과거의 게임들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은 ‘청년’의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에 도전하고, 권위에 맞서고, 위협을 극복하는 그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죠.
하지만 요즘에는 ‘성인’의 느낌을 안겨주는 캐릭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단속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고, 가족(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희생도 불사하는.
저는 이런 흐름이 싫지 않습니다. 젊은 시기의 패기는 물론 아름다운 것이죠. 하지만 나이를 먹은 어른의 책임을 아는 모습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으니까요.
더해서 이런 게임이 더 많이 나온다면 지금과 같이 아이 울음소리가 줄어든 세상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진짜로 이래서 딸바보가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현실적으로 귀엽고 생동감 있는 모습을 게임에서 느껴볼 수가 있었거든요.
아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봄’에 이어서 우리 부부가 만나고 싶었던 ‘가을’의 모습을 게임을 통해 상상해 보는 것도 저에게는 인상적인 경험이기도 하고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