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어른이 글쓰기로 나를 구출하는 법
내뱉고 싶어도 참고 삭이는 말들이 쌓여 가고,
내 말은 허공에서 사라지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사무실 복도를 걸어가며 습관처럼 메모장에 적었다.
"나는 여기에 없다."
그 문장은 쓰고도 어디에도 붙이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서 글이 쓰고 싶어졌다.
어릴 적엔 상상만으로 충분했다.
나만 아는 세계, 나만의 언어,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는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충만했으니까.
그런데 중년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세상은 여전한데 나만 투명해진 것 같았다.
내가 하는 말, 내가 건네는 웃음,
모두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다 사라지는 느낌.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는 투명인간이 돼 가고 있었다.
그 투명함 속에서 외로움은 더 짙어졌다.
그래서일까.
아무도 듣지 않아도, 아무도 봐주지 않아도,
적어도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절실함이 생겼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지나온 시간을 다시 뒤적여 보고,
어린 시절 두고 온 감정들을 다시 불러와
무겁게 굳어버린 오늘의 나와 마주하기 위해서다.
치유라고 하면 조금 뻔할지 모른다.
뻔해도 굳이 이름 붙이자면
'나를 나로부터 구출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잃어버린 나를,
버티다 지쳐 흐릿해진 나를
글이라는 낡고 그리운 구명보트에 태워
거친 파도를 지나
다시 나만의 섬으로 데려오는 일.
어릴 땐 몰랐다.
상상한다는 게 얼마나 귀한 능력인지.
쓰지 않아도 숨 쉴 수 있었던 시절이
얼마나 호사였는지.
지금은 안다.
글을 쓴다는 건
어른이 된 나를,
상처 많은 나를,
포기했던 나를
잠시라도 껴안아 주는
가장 따뜻한 방식이라는 걸.
그리고 그런 글이
누군가의 오래된 상처를
살짝 따끔하게 문질러
다시 살아나게 할 수도 있다는 걸.
늦었기에 더 절실하다.
늦었기에 오히려 진심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쓴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나는 오늘도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건넨다.
_글로 말하는 투명인간, 담온.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