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보다 온기가 먼저 필요한 날이 있다
그땐 세상이 내 편이라고 믿었다.
외모도 괜찮았고, 말도 제법 잘했고,
운도 따라줬다.
운조차 내가 만든 결과라 생각했다.
작은 성공들이 쌓였다.
수입은 또래의 두 배였고,
그게 실력이라 믿었다.
나는 조금 더 잘난 사람이라 착각했다.
SNS엔 하루도 빠짐없이
‘괜찮아 보이는 나’를 올리기 바빴다.
핫플이라 불리는 카페,
식당, 새 옷, 최신 전자기기까지.
뭐든 남이 하는 나도 해야 했다.
그 안에 나를 가뒀다.
sns 속 나는 그럴듯해 보였고,
나도 그게 진짜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다 경기가 꺾였다.
수입은 조금씩 줄었고,
어느새 반토막이 났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여전히 뭔가를 올렸고,
하루하루 행복한 척을 했다.
댓글 하나에 안도했고,
좋아요 숫자에 숨을 쉬었다.
현실은 무너지고 있었지만
나는 ‘괜찮은 사람’ 역할에 집착했다.
남의 시선 속에서만
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입은 계속 줄었고,
생활은 그대로였다.
그 틈은 대출로 메웠다.
아니,
무너진 걸 덮어놓고
못 본 척했던 거다.
더 이상 대출도 나오지 않는 지경이었다.
현금 서비스, 리볼빙, 사채까지.
끌 수 있는 건 모두 끌었고,
미룰 수 있는 건 전부 미뤘다.
오늘을 버티기 위해,
계속 내일을 팔아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누가 나를 찾는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나가지 않았다.
그냥... 무서웠다.
그게 전부였다.
불도 켜지 않은 채 방 안에 숨어 있었다.
불빛이 나를 정면으로 비출까 봐,
그게 더 두려웠다.
어둠 속에 누워 있는 게,
오히려 덜 무서웠다.
초인종이 몇 번이고 울렸다.
나는 꼼짝하지 않았다.
누군가 찾아와도
나가지 않으면
세상이 멈춰줄 것 같았다.
‘이대로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겁쟁이였기에
끝내겠다는 결심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저절로 끝나길 바랐다.
초인종이 다시 울렸다.
기어가듯 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자,
낯익은 얼굴이 서있었다.
오피스텔 경비원 아저씨였다.
말은 없었지만
그 얼굴엔 어렴풋한 안도감이 비쳤다.
“며칠째 안 보여서요.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자리에 서있었다.
기억 속, 늘 자리에만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그는 나를 신경 썼을까?
그가 말했다.
“제가 초인종을 누르면,
잠깐만 나와 주세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비닐봉지를 든 그가 다시 서 있었다.
어딘지 조심스럽고,
어색한 모습이었다.
그가 내민 봉투 안엔
막 사온 듯한 김밥 한 줄,
우유 한 팩,
작은 과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손보다 따뜻한 김밥 한 줄.
그 온기에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감사... 합니다.”
간신히 나온 한마디였다.
그날 이후,
천천히, 정말 천천히
빚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일했고,
다시 늦지 않았고,
조금씩, 다시 평범해졌다.
그리고 지금,
더는 보이기 위한 나를
연기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