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겠다는 결심
나는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 엄마가 나에게 무언가를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그냥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일 뿐이다. 사실은 엄마가 나에게 잘못한 것이 많지만(물론 나도 잘못한 게 많겠지.) 그건 그냥 엄마라면 누구나 잘못하는 것이고 오은영박사도 엄마로서는 자식에게 미안한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재미있는 건, 내가 생각하는 엄마의 잘못과 엄마가 생각하는 엄마의 잘못이 전혀 다른 지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엄마의 사과가 마뜩잖고 엄마는 사과를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 내가 괘씸하다.
나의 모녀관계가 이러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를 낳기를 꿈꿨고 또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다. 내가 엄마보다는 더 좋은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은 있었지만 제일 좋은 엄마는 낳음당하지 않게 해주는 엄마일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이든 출산이든 굳이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어떻게 생겨서 낳게 된다면 좋은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 테지만 또 굳이 낳으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으니까. 세상에 태어나는 게 딱히 축복은 아니니까.
이후 결혼을 하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그건 차치하고 남편은 처음부터 줄곧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하긴 했지만 한번도 강요하거나 채근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낳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건 그것대로 상관없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사실 그저 주변에 애를 키우는 친구들이 별로 없어서 애를 키우는 것에 대한 현실감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길거리에서 아기들을 보면 귀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그 아기들이 뛰거나 소리를 지르는 등의 행동을 하면 어김없이 얼굴이 구겨지는 남편이었다. 남편은 외동아들이었지만 시부모님은 한 번도 나에게 아이를 가지라는 부담을 준 적이 없다. 처음부터 아이를 갖고 말고는 우리 부부의 선택이라며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선언하셨다. 오히려 우리 엄마를 비롯한 나의 외가 식구들이 나를 볼때마다 아이를 낳으라며, 낳아야 한다며 압박을 주곤 했다.
처음부터 나는 '생기면 낳는데 굳이 노력은 하지 말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아이가 없고 나이는 있고 개를 키우는 신혼부부라는 스테레오 타입으로 인해 어딜 가면 항상 애를 낳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심지어 그냥 지나가는 어르신들까지도 우리 부부에게 얘기했다.
"아니, 신혼부부가 애도 없이 개만 키우나?"
개를 키운다고 해서 애를 낳을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개를 키우면 임신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임신이 안 되는데 애는 개처럼 어디 보호소에서 입양할 수도 없는 것인데 말이다. 하지만 남편마저 '그냥 딩크로 이렇게 살면서 강아지나 한마리 더 입양할까?'라고 했으니 우리 사회에서 개와 애가 서로의 대체제인 부분이 있기는 한 것 같다. 아무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안 낳으려는 건 아니예요."
아이를 낳아야 겠다는 생각은 여러번 했었다. 외국에 사는 오빠네가 조카를 낳았을 때, 나는 그 날 엄마아빠가 그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식을 낳는 것이 왜 효도라고 하는 건지도 처음 깨달았다. 그때 처음으로 가급적이면 결혼하고 애도 낳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도 내가 아이를 낳고 싶은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는 게 간절하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는 것 처럼, 나의 결심은 '임신을 하게 되면 굳이 낙태를 하지는 않을 거야.'에 가까웠다.
결혼을 하고 2년이 지났을 무렵부터 나는 조금씩 현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30대 후반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남편과 나는 아이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 안락한 일상에 둘 다 '그냥 이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젖어가고 있었다.
남편과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그 다른 점들 때문에 이 남자를 선택했지만 그 다른 점들이 결혼 반대의 이유가 되기도 했다. 불만을 얘기하기 보다는 속으로 삼키는 스타일인 나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남편. 내 맘에 내키지 않으면 그냥 손해를 보는 게 마음이 편한 나와 싫은 소리도 웃으며 잘하는 남편. 매사 무덤덤한 나와 감정 표현에 거침이 없는 남편. 둘의 관심도 무척이나 달랐는데, '부르릉'하는 배기음만 듣고도 무슨 차인지 맞추는 남편과 오은영, 강형욱, 한문철 등 갈등 상황만 찾아다니는 나는 같이 티비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곤욕인 일이 많았다. 남편이 틀어놓은 유투브는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얘기들 뿐이었고 내가 틀어놓은 방송은 남편에게 소음일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아이가 필요했다.
나는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내가 그저 일반적인 부부관계만으로 애를 가질 수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데 있었다. 결혼할 시점에 나는 생리가 끊긴지 3개월쯤 되었으며 결혼하고 나서도 약 2년 동안 생리를 한 횟수는 다섯손가락 안이었다. 어릴때부터 생리가 규칙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생리를 하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다. 생리를 하지 않는 삶은 정말이지 개꿀이었지만, 어쨌든 임신을 결심했으니 산부인과를 가야만 하는 시점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