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절단된 사지에서 피는 목련꽃
봄비는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는 곳이 있습니다. 우정 거기는 가지를 않습니다. 아파트의 북쪽 화단에 있는 목련 나무인대요. 사람들이 창을 가린다고 무지막지하게 가지치기를 해서 평소에는 무슨 막대기 하나 심어놓은 듯이 볼 품이 없었습니다. 누구 하나 눈길을 주지도 않습니다. 여름에는 목련 잎이 본 때 없이 덜렁덜렁 달려 있습니다. 그 나무가 봄에 화려한 꽃을 피우리라 상상조차 하지 않습니다.
응달 진 그 곳의 목련꽃은 나무 토막 위에 하얀 등불을 걸어 놓은 것 같이 달려 있었습니다. 눈부신 하얀 목련꽃은 귀부인처럼 풍요하면서 격조가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기에는 신경이 쓰이는 것입니다. 다른 목련은 피었다가 벌써 져버린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이 음지에서 이제 꽃망울을 맺고는 정물화의 꽃처럼 피려는지 오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봄비는 멀리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하게 밝아왔습니다. 일부러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습니다. 멀리서만 목련의 자태를 보면서 첫사랑에 마음 졸이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멈춰서 그대로 정지하기를 바랐습니다.
찾아갈 때마다 아주 조금씩만 자신을 열었습니다. 보고 싶다고 목련에게 오늘 밤이라도 찾아가면 그는 여지 없이 그의 속내를 다 보이고 이제부터는 이울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게 싫어서 주위를 빙빙 돌기만 하면서 꽃망울이 주는 그 기쁨을 혼자서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와 이별을 해야겠지만 하루라도 이 세상에서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꽃이 언제가 제일 아름다운지는 다 알겠지요. 만개가 아니라 꽃잎이 조금 벌어져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듯이 말 듯이 하는 그 자태를 보면 누구나 다 애간장을 태우는 법입니다. 그걸 못 잊어서 지금도 이렇게 주저하면서 그에게 접근하지 않는 것이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랑(永郞)이 목련이 이우는 날 같이 울겠다고 청승을 떨지만 봄비는 그 정도는 아닙니다. 울기는 왜 울어요. 봄비처럼 목련 꽃잎과 같이 떨어지면 될 것인데 말입니다. 울지는 않을 겁니다. 이 봄에 절단된 목련의 사지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는 것만으로 봄비의 여정은 행복하였으니까요. 봄비의 뇌리에 새긴 그 모습을 보면서 일년을 견딜 것입니다. 쓸쓸할 때면 앨범을 들추듯이 들추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기억의 시간이 이미 말할 수 없는 자양분이 되어서 봄비를 걷게 하고 있으니까요. 사는 것―비라고 목숨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쪽의 오해일 뿐입니다. 봄비는 봄비나름의 형식의 생명이 있는 법이니까요―의 비밀과 풍요는 여기에 달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요.
뭔가 내 세울 것도 없는 흉물스런 몰골에 그 화려한 꽃의 등장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꽃은 벌어지지 않고 고고한 자태를 견지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흠도 없고 점도 없는 그 아름다운 등불이 마음 속에도 켜지기를 바라지만, 아니 이미 켜놓고 기다리고 있지만 이제는 정녕 때가 이른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만 목련의 주위를 배회하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가슴이 쓰리고 아프지만 이것은 또한 어쩔 수 없이 만나고 이별해야 하는 운명이기도 합니다. 오늘 밤은 목련이 모르게 천천히 될 수 있으면 그 시간이 천년 세월의 속도로 목련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만남을 눈치 채지 못 할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목련은 이미 그런 시간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숨을 죽이면서 서서히 다가갔습니다. 까만 밤 하늘에 느낌표처럼 이 세상의 공간을 치고 있는 목련에게 갈 수 있다는 게 기뻤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이 복을 목련과 함께 하면서 저 나락으로 떨어져 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