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벚꽃의 낙화는 외롭지 않다
벚꽃이 만개했습니다. 그 동안 봄비가 온 것이 벚꽃에게 딱히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봄비는 벚꽃과 같이 있은 그 시간이 생애의 절정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하여서 기뻤던 것만은 확실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봄비만의 생각이고 벚꽃은 자기 힘으로 꽃을 피웠다고 할지도 모르지요.
벚꽃은 사방에 흐드러지게 피어서 가지에 늘어졌습니다. 환한 웃음이 세상을 꽃등처럼 밝히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 모습에서 즐겁고 걱정이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봄비는 꽃 그늘 아래에 벌써 몰려오는 먹구름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세상의 이치란 무심합니다. 달이 찼다고 좋아할 시간도 없이 이미 이울기 시작하는 것이 사는 원리라는 걸 압니다. 세상 아래 피조물이란 다 어리석어서 한치 앞을 못보니까요.
간밤에 내리면서 봄비가 왔을 때는 정말 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그렇게 위로해 주던 꽃망울들이 이제사 낙화하기 시작하므로 봄비가 그 희생타로 오게 되어 있는 운명을 탄식하였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웃고 있는 꽃 위에 내릴 때는 대신 낙화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떨어져서 땅에 쌓인 꽃들 위에 같이 누워야 했습니다. 누워서 벚꽃과 함께 그들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생각보다는 담담했습니다. 생사를 초월한 모습에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봄비는 그들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꽃들이 떨어져야 또 잎이 나오니까 그걸로 변명꺼리를 찾으려면 찾겠지만 온 세상을 낙화로 뒤덮힌 광경을 쳐다보는 심정은 참담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죽는다는 말이 이들을 두고 한 말이란 걸 알았습니다. 죽은 꽃이 그렇게 아름다웠습니다. 가지에 붙어서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들에게는 이 낙화보다 깊이가 없습니다. 철없는 아이처럼 웃기만 한 그 모습에서 깊이를 찾기는 힘이 들지요. 세상의 이치란 오묘하여 비바람 속에서 생의 진수를 볼 때가 있습니다.
벚꽃에게 별리의 인사를 나눌 때가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이 되면 걸어서 어디론가로 떠날 것입니다. 남아 있는 낙화에게 인사도 못하고 가겠지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생애에 있어서 있지 못할 추억이 될 겁니다. 멀리 떠나서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겁니다. 그 만개한 꽃이 떨어진 그 서글픔을 잊지는 못할 것입니다. 아니 반추하면서 그들의 짧은 생애를 몸 곳곳에다가 박아놓을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서가에서 책을 꺼내듯이 꺼내어 그들을 음미할 것입니다. 그들이 봄비를 보낼 때 하얗게 웃던 그 서늘한 이별의 순간이 온몸에 전율로 지나갑니다. 어차피 우리는 같이 있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오면 반기나 싶더니 오히려 그들에게 짐이 되어 낙화가 되었으니 봄비의 심정이야 오죽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신세를 서러워하면서 눈물을 징징거리지는 않습니다. 그러기에는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모든 희노애락을 통달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눈물을 훔치는 것은 싫습니다. 그것은 낙화에 대한 예도 아닙니다. 서로가 다시 만나지 못 할 것을 알면서 할 말은 내뱉지 않고 삼켰습니다. 그것이 봄비에게는 힘이 되고 봄비를 밀고 나갈 것입니다. 어디로 말인가요? 모릅니다. 언제나 홀로 다니지만 홀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줄 겁니다. 쓸쓸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사치입니다. 봄비에겐 얼마나 많은 사연과 인연이 있는 줄 모릅니다. 단지 그것은 눈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봄비는 속에 풍성한 벚꽃의 낙화를 가지고 다닙니다. 그것을 앨범이라고 먼지 나는 것으로 치부하는 게 아니라 걸어가면서도 낙화와 얘기하면서 그들에게로 다가갑니다. 그들은 봄비의 독백을 하얀 미소로 바라보기만 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