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이야기』-12

12 는개와 소낙비 사이

by 현목

12 는개와 소낙비 사이



봄비보다 더 가는 비가 있지요. 는개라고 있습니다. 안개보다는 굵고 봄비보다도 더 가는 비이지요. 는개는 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다 바른다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온몸에 끈적끈적하게 올라붙습니다. 하긴 그런 분위기를 더 좋아하는 자도 있기는 합디다. 봄비는 자기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웬지 는개는 싫어 합니다. 분위기가 뭔가 질척거리는 같아서 얼굴 같은데 와서 달라붙으면 느끼합니다. 거기에 비하면 봄비는 단출하지요. 맞아도 맞는 둥 마는 둥하지만 뭣보다도 봄비의 존재를 의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걸 내세우는 편입니다만 하기야 다 자기 좋아하는 게 있으니 저만 잘났다고 말할 형편은 아니네요.


봄비보다 더 굵은 친구도 있습니다. 여름날 소낙비 같다고나 할까요. 힘 하나는 좋습니다. 그저 누구든지 가서 때리니까 한편으로는 맞으니까 시원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기는 합니다. 그의 보무당당함이 부럽다기보다는 체질적으로 맞지를 않습니다. 있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존재를 은근슬쩍 보이기를 원하는데 저 친구는 뭐가 잘났는지 한번 왔다하면 요란합니다. 특히나 양철지붕에 내릴 때는 그 소리가 무슨 굉장한 심포니라도 연주하는가 하고 착각할지 모르지만 봄비 귀에는 아주 가관입니다. 박자도 안 맞고 그저 소리만 크고 별로 들어줄 게 없습니다. 그 소리 듣고 상념에 잠겨서 무슨 영감을 얻은 사람이 있다면 나와 보라고 한번 해보세요. 모르긴 해도 그저 머리가 멍해져서 빨리 비가 그쳤으면 합니다. 봄비라면 그렇지 않지요. 살금살금 누군가의 기억의 창고 속으로 들어가서 조금만 축축하게 만들어 놓으면 주섬주섬 뭔가 끄집어 내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그야 그 내용은 봄비도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할 수 있는 부분은 누군가로 하여금 기억을 창고에서 가지고 나오게 하는 데까지입니다.


물론 봄라고 왜 관심이 없겠어요. 그와 함께 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추억에 잠기는 것은 오직 혼자만이 해야 됩니다. 거기에 누군가가 끼면 그 기억은 다 날아가버립니다. 홀로 뒤적거리면서 회한에 잠기든 기쁨에 환호하든 그것은 다 그의 몫이고 그의 삶을 부요케 하는 것입니다. 비밀이 많을수록 부자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그러는 봄비는 어떠냐고요. 구태어 봄비의 경우를 들라고 하면 못할 것도 없지만 안 하는 게 낫겠네요. 봄비의 기억은 다 산산히 부서져서 이렇게 비로 내리고 있습니다. 과거는 다 사라지고 아는 것은 이런 가느다란 빗줄기가 되어버렸습니다. 희노애락은 실체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의 정체를 알려면 비를 모두 모아서 붙여봐야 하는데 그게 이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 운명을 오히려 좋아합니다. 오직 봄비에게는 현실 속에서 현재만이 존재하니까요. 피조물 가운데 봄비처럼 축복 받은 존재도 별로 없을 겁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부서진 봄비의 기억으로 하여금 다른 사물에게 다가가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습니다. 그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말하면 거창하겠지요. 그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정도로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봄비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실연하여 자신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연인을 찾을 때는 봄비를 부를 때가 많더군요. 그렇다고 하는 일이 남의 연애사에만 관여하는 것은 아니고요. 하지만 그런 친구들을 볼 때는 재미는 있습디다. 왜냐하면 그들은 되게 자못 진지하더라구요. 세상 다 산 것처럼 인상을 쓰면서 잠 못 이룰 때가 있지만 가면 왠지 다 풀려서 편안해 합디다. 하긴 봄이 되면 그 맛에 나들이를 하는지도 모릅니다. 하긴 이때가 봄비의 대목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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