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이야기』-11

11 가랑가랑 내리는 빗소리

by 현목

11 가랑가랑 내리는 빗소리



봄비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관성에 의해 걸어가기는 가지만 딱히 어디라고 정해진 데가 없다는 걸 알고는 속으로 당황하였습니다. 이제껏 이 날을 위해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막상 길을 걷다 보니 갈 데가 없었습니다. 세상은 다 자기들끼리 뭉쳐서 그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보였습니다. 가랑가랑 내리는 빗소리에 어느 집의 처마에 매달려서 낙숫물이 되어 떨어지면서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았습니다. 습기가 차고 어둑하며 모든 사람들이 총총 제 집을 찾아가는데 무작정 길을 떠난다는 게 서글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리 대수로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비가 내려서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를 맡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에게도 밝게 또는 당당하게 나설 기회가 없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웬지 그는 이렇게 사는 게 더 좋았습니다. 그걸 취향이라고 한다면 이 세상 다 각자의 취향이 있는 게고 또 그렇게 삽니다. 자신의 모습이 타고 나서 어쩔 수 없듯이 그걸 이제 와서 새삼 고치느니 하면서 수다를 떨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어떤 때는 자신의 모습이 이게 아니었으면 하고 상상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개는 다 공허한 얘기가 되어버리지만 말입니다.


혼자서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창문 안에서 인기척이 났습니다. 뭔가 하고 들여다 보니 누군가가 머리를 싸매고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뭔가 그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 그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제껏 돌아다니면서 안 가본 데가 없지만 다 사는 게 거기서 거기고 짜장 신나게 사는 사람들은 별로 안 되었습니다. 무겁든 가볍든 자기 짐을 지고 갑니다. 이런 말을 하는 봄비는 뭐 안 그런가 하면 자기도 별 수가 없습니다. 바람이라도 사납게 불면 자신도 모르게 지랄을 치면서 비바람이 되어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꼴이 한순간에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누구라도 자신의 장래에 대해 장담할 일이 아니라는 건 세상을 살 만큼 산 자들은 경험적으로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흰머리 앞에서는 머리를 숙이라는 말은 타당한 겁니다. 젊은것들은 힘이 있니까 그걸로 세상을 다 바꿀거라고 생각하지만 천만에, 만만에입니다. 흰머리는 거저 흰머리인 줄 압니까. 봄비도 힘만 믿고 까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게 다 헛된 일이란 걸 세월이 증명해주는데 젊은것들은 그저 자기네 세월이 만고청산이라고 착각하지만 곧 머리를 치고 탄식할 날이 오는 게지요.


그러고 보니 봄비가 남의 걱정을 한 셈이네요. 자기 코가 석자인데도 말입니다. 남의 처마 밑에서 청승을 떠는 것도 한도가 있습니다. 이제는 떠나야 합니다. 목적지를 너무 구애 받을 것도 없습니다. 마음이야 천산산맥을 거니는 심정으로 이 세상을 걸어가지만 그게 또 뭐 대수겠습니까? 그렇다고 그가 뭐 도통하여 모든 것에서 자유한 영혼도 아닙니다. 그저 흘러가다가 누굴 만나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는 게지요. 이제껏 해온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영감을 받기도 하고 온기를 느끼기도 하고 하면 그것이 더 없는 영광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물론 그럴 것입니다.


봄비에게 친구가 없느냐고요? 왜 갑자기 봄비가 처량해 보입니까? 친구가 없다면 없고 이 세상 만물이 다 친구라면 친구입니다. 봄비가 가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기에 누구와도 깊은 우정을 나눈 적은 없습니다. 정들기 전에 떠난다는 것이 봄비가 지켜온 오래된 삶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렇다 보니 남의 눈에는 봄비는 언제나 외톨이었습니다. 외톨이도 지내보면 재미있습니다. 남에 의해 인연이 얽혀서 골치를 썩는 일이 없습니다. 하긴 그 골치 썩는 것이 사는 것이 진수라고는 합디다만 봄비의 짧은 식견으로는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언제나 봄비는 소녀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욕이 되는 건 아니라고 믿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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