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동행은 말이 필요없다
봄비가 내리는 아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란도셀 책가방을 메고 학교를 가고 있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 소리가 작은 시내물처럼 조잘조잘 흘러갔습니다. 그 옛날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라는 동요를 지금이야 부르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노래가 이런 아침에는 더욱 어울리기는 합니다. 요즘이야 찢어진 우산이야 거의 없지만 말입니다. 찢어진, 그것도 종이 우산이면 더욱 이 아침의 그림에 있으면 금상첨화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 시시한 것을 머리에 쓰고 다닐 그런 유치한 감정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는 세월이 되었습니다. 매끈한 우산 속에 뽀얀 얼굴을 하고 세련된 자태를 뽐내는 것이 일상사가 되어서 처음에는 낯설었습니다. 그것도 일이라고 매년 만나보니 익숙해져버렸습니다.
학교 운동장에도 부티가 나서 별로 마음이 내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찾아가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봄비가 차별하여 내리는 일은 없으니까요. 먼먼 옛날 시냇가에서 학교에 늦든말든지 퍼질고 앉아서 개구리를 잡아서 먹던 그 시절이 그립기는 하지요. 하지만 세월은 그리움만 먹고 사는 게 현실이 아니니까 언제나 기억 속에다 갖다 놓고는 이런 봄비 오는 날에만 끄집어내어 봄비와 함께 세상을 내다봅니다. 그런 기억의 시간으로 날아가는 일도 가능하기는 한지 모르겠습니다. 봄비는 그런 시간으로 돌려보내 주기도 합니다. 그와 함께 길을 가면 됩니다. 그의 말없음에는 참견하지 않고 소리나지 않게 뒤를 따라가면 됩니다.
우선 봄비에게 기대어 같은 보폭으로 걸어야 합니다. 입에는 어떤 소리도 내지 않고 발자국 소리도 없이 같이 따라 걸었습니다. 봄비가 가는 곳은 어딘지 알 수가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그래도 마음은 푸근하여져 갔다는 사실입니다. 야멸찬 것 같은데도 실제 같이 해보면 그 속에서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같이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았습니다. 시간의 터널 속으로 지나오다가 섣불리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다시 돌아갈 것 같아서 말은 못붙였습니다. 그는 어느새 내 손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었습니다.
봄비의 얼굴은 물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봤다면 세상 만사 다 통달한 도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하루 종일 같이 해보면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린아이 같다는 느낌이 더 들었습니다. 그에게 싫은 소리를 해도 다 들어줄 것 같아서 같이 오후 내내 뒹굴었습니다. 내 기분은 더 침잠해지고 그러다 못해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나의 기분에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어디론가 자꾸 가기만 했습니다. 그는 도무지 뒤를 돌아다 보는 법이 없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나는 차마 봄비의 내력을 물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무표정하면서도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그 분위기에 나는 입도 벙긋하지 못하고 무조건 따라만 다녔습니다. 세상은 흐드러져서 싹이 나고 꽃이 피었지만 내 마음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따스함 속에 스산함이 들어 있어서 몸이 오슬오슬 추워왔습니다. 너무 깊은 산으로 들어와 버린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제 도로 걸어온 길을 찾아 도로 돌아나오려고 하니까 길이 없어지고 어둠만 꽉 차있었습니다.
봄비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저만치 가버리고 나만 남았습니다. 나는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둠 속에는 오직 혼자만 남았습니다. 그제야 둘러보니 아무도 없고 봄비도 눈앞에서 언제 사라졌는지 소리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우두커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대충 내가 왔다고 생각되는 방향을 찾아서 더듬으며 앞을 나갔습니다. 생각보다 앞에 걸리는 것이 없어서 그리로만 가면 내가 들어온 입구를 찾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예감이 들었습니다. 발은 갈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로서는 다른 대안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자꾸 앞으로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은 물 속에 잠겨서 이제는 거의 얼굴에 다다르고 머리가 다 잠기려고 했습니다. 생각보다는 숨이 차지 아니한다고 이상하게 느끼는 순간 가까이서 빗소리가 들렸습니다. 내가 오해를 한 것이었습니다. 봄비는 나의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말없이 동행하였습니다. 하도 말이 없으니 그의 존재를 못느꼈다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