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순(耳順)도 훨씬 넘었으면
사천 벌판처럼 달관의 경지가 탁 트일 것도 같지만 청진기를
목에 걸친 젊은 의사가 낙락장송이다 내가 걸은 발자국을
복기(復碁)하기 위해 점심시간마다 벼가 익은 논길을 걷는다
알지도 못하고 놓은 수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폰으로 그 수들을
사진으로 찍고 ‘모야모’ 앱에다가 도움을 청한다 정답이 돌아온다
암호를 풀 듯이 나는 열심히 답을 적는다
개쑥부쟁이, 왕고들빼기, 달맞이꽃, 미국 쑥부쟁이, 큰비짜루국화,
붉은 토끼풀, 울산 도깨비 바늘, 망초, 광대나물, 한련초, 양미역취,
동부, 좀돌팥, 개망초, 서양민들레, 미국가막사리, 싸리, 쑥부쟁이,
횐꽃여뀌, 참취, 개갓냉이, 고마리, 까마중, 봄까치꽃, 명아주,
괭이밥, 털별꽃아재비, 쥐꼬리망초, 주름잎……
새끼 손톱만한 주름잎꽃 하순(下脣) 꽃잎이 하얗게 세 개로 갈라지고
중앙에 두 개의 황색 줄이 있다 상순(上脣) 꽃잎이 보랏빛이 도는
분홍색으로 감싸고 있다 땅바닥을 기면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아, 소리를 냈다 암호가 풀렸다 주름잎꽃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걸 혼자 만들어냈다 먼 산의 낙락장송이 무색한 낮은 아름다움이다